취향이 빚어내는 사랑과 상처, 개성과 독단의 사이 <타인의 취향>
취향이 문제다. 젊은 연인은 서로 다른 영화 취향 때문에 극장 앞에서 옥신각신 싸우기도 하고, 부모는 딸자식의 아슬아슬한 패션 취향에 안절부절한다. 맨날 소 닭보듯 하던 직장 동료에게서 공통된 음악 취향을 발견했을 때 갑자기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취향의 문제는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르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취향은 때로 권력이 되어 다른 취향들을 무시하거나 억압하기도 하고, 자신을 절망 속으로 빠뜨리는 깔때기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자우이가 만든 <타인의 취향>은 말 그대로 ‘타인의 취향’에 관한 영화다. 취향의 문제로 미끄러지고 빗나가는 남녀의 관계, ‘지성’으로 포장한 취향이 휘두르는 독재와 상처 등이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취향의 문제도 계급의 문제다라고 말하는 사회학자처럼 정색을 하지는 않는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취향에 손을 들어주거나 자신을 대입시켜보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취향의 문제다”.
취향엔 정답도 오답도 없다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천상 ‘아저씨’인 카스텔라는 부인에게 끌려간 연극 공연에서 주인공 여배우 클라라에게 매료된다. 영어 개인교사를 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보물’을 발견한 그는 클라라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무시당한다. 가난한 예술가인 클라라에게 카스텔라는 무식하고 천박한 부르주아지 돼지일 따름이다. 까스텔라는 클라라를 이해하기 위해 클라라의 예술가 동료들에게 귀기울이고, 그 가운데 한 미술가의 전시회에 갔다가 작품을 사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게 하실 필요까지는 없는데…”이다. 어느 누구도 그림이 좋아서 샀다는 그의 설명을 믿지 않는다. 술집에서 바텐더를 하는 마니는 하룻밤의 사랑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분방한 여자. 그는 10년 전에 같이 잤던 남자 브루노를 우연히 만나서 데이트를 하다가 브루노의 동료 프랑크와 눈이 맞는다. 그에게 사랑은 가볍고 유쾌한 놀이 같은 것. 결혼에 뜻이 없는 프랑크는 마니에게 잘 맞는 상대지만 그들은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는 걸 견디지 못한다. 모든 연애의 결말이 그랬듯 프랑크도 그의 곁을 떠난다. 그는 구속과 간섭을 거부하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랑하듯, 자신의 취향이 선택한 고통스런 결말도 감수해야 한다. 인테리어 코디네이터인 카스텔라의 부인 앙젤리크는 시누이의 새집을 꾸며주면서 끊임없이 마찰을 빚는다. “전문가”인 자신에게 시누이의 취향은 인테리어의 ㅇ자도 모르는 촌스러움에 불과하다. 온통 집안을 꽃무늬와 개사진으로 꾸며놓은 그는 남편이 사다가 벽에 건 현대적 회화를 서슴없이 창고에 처박아둔다. “미치겠군, 이 집에 내가 고른 거 있어?” 항변하고 집을 나가버린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이 가출한 뒤 운전기사 브루노와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간 앙젤리크가 뛰어다니는 자신의 개를 보면서 “개는 위선도 죄도 모르는 순수한 영혼”이라고 말하자 브루노는 “디즈니랜드에나 가보시죠” 냉소한다. 취향의 문제를 정답과 오답의 문제로 보는 그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다. 극장가의 ‘취향 독재’에 반기를? 각본을 쓰고 직접 마니를 연기한 감독에게 영화의 모델이 된 인물들이 영화에서 자신을 알아보더냐는 질문에 감독은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하지만, 항상 자신의 주변사람들은 알아본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취향의 문제는 남의 것일 때 개성으로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것이 될 때는 앙젤리크처럼 독단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취향은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카스텔라를 혐오하던 클라라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듯, 취향은 오랜 오해와 갈등을 거쳐 이해와 합의의 지점을 찾기도 한다. 결국 취향은 서로에게 인내와 배려를 요구하는 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극장가의 여름 시즌은 관객의 취향이 배제되는 계절이다. 블록버스터영화의 도배질 속에서 관객은 스펙터클 취향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갈수록 폭력적인 양상을 띠는 여름 극장가의 취향 독재에 반기를 들고 싶은 관객에게 <타인의 취향>은 유쾌한 저항의 경험이 될 듯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취향의 문제로 미끄러지고 빗나가는 남녀의 관계, ‘지성’으로 포장한 취향이 휘두르는 독재와 상처 등이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천상 ‘아저씨’인 카스텔라는 부인에게 끌려간 연극 공연에서 주인공 여배우 클라라에게 매료된다. 영어 개인교사를 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보물’을 발견한 그는 클라라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무시당한다. 가난한 예술가인 클라라에게 카스텔라는 무식하고 천박한 부르주아지 돼지일 따름이다. 까스텔라는 클라라를 이해하기 위해 클라라의 예술가 동료들에게 귀기울이고, 그 가운데 한 미술가의 전시회에 갔다가 작품을 사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게 하실 필요까지는 없는데…”이다. 어느 누구도 그림이 좋아서 샀다는 그의 설명을 믿지 않는다. 술집에서 바텐더를 하는 마니는 하룻밤의 사랑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분방한 여자. 그는 10년 전에 같이 잤던 남자 브루노를 우연히 만나서 데이트를 하다가 브루노의 동료 프랑크와 눈이 맞는다. 그에게 사랑은 가볍고 유쾌한 놀이 같은 것. 결혼에 뜻이 없는 프랑크는 마니에게 잘 맞는 상대지만 그들은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는 걸 견디지 못한다. 모든 연애의 결말이 그랬듯 프랑크도 그의 곁을 떠난다. 그는 구속과 간섭을 거부하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랑하듯, 자신의 취향이 선택한 고통스런 결말도 감수해야 한다. 인테리어 코디네이터인 카스텔라의 부인 앙젤리크는 시누이의 새집을 꾸며주면서 끊임없이 마찰을 빚는다. “전문가”인 자신에게 시누이의 취향은 인테리어의 ㅇ자도 모르는 촌스러움에 불과하다. 온통 집안을 꽃무늬와 개사진으로 꾸며놓은 그는 남편이 사다가 벽에 건 현대적 회화를 서슴없이 창고에 처박아둔다. “미치겠군, 이 집에 내가 고른 거 있어?” 항변하고 집을 나가버린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이 가출한 뒤 운전기사 브루노와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간 앙젤리크가 뛰어다니는 자신의 개를 보면서 “개는 위선도 죄도 모르는 순수한 영혼”이라고 말하자 브루노는 “디즈니랜드에나 가보시죠” 냉소한다. 취향의 문제를 정답과 오답의 문제로 보는 그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다. 극장가의 ‘취향 독재’에 반기를? 각본을 쓰고 직접 마니를 연기한 감독에게 영화의 모델이 된 인물들이 영화에서 자신을 알아보더냐는 질문에 감독은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하지만, 항상 자신의 주변사람들은 알아본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취향의 문제는 남의 것일 때 개성으로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것이 될 때는 앙젤리크처럼 독단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취향은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카스텔라를 혐오하던 클라라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듯, 취향은 오랜 오해와 갈등을 거쳐 이해와 합의의 지점을 찾기도 한다. 결국 취향은 서로에게 인내와 배려를 요구하는 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극장가의 여름 시즌은 관객의 취향이 배제되는 계절이다. 블록버스터영화의 도배질 속에서 관객은 스펙터클 취향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갈수록 폭력적인 양상을 띠는 여름 극장가의 취향 독재에 반기를 들고 싶은 관객에게 <타인의 취향>은 유쾌한 저항의 경험이 될 듯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