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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은광 마을엔 은제품이 없다

미국 기업이 지어준 볼리비아 산크리스토발 마을에서
미국 기업의 남미 약탈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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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10 13:11 수정 : 2011-02-1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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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에서는 인디헤나(원주민)인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이 되고부터 사회적으로 힘이 없던 인디헤나들의 권리가 급부상했고 많은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십 혹은 수백 년간 억압받던 약자들이 힘을 갖게 되었고 이는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사람들은 모랄레스의 사진이 담기고 ‘rEVOlucion’(혁명)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만들어 관광객에게 팔았다. 남미에서 혁명은 마케팅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의 인기는 인디언 사이에서 ‘체 게바라’를 능가했다.

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라파스(La Paz·평화)로 갔다. 그런데 한국인 친구들에게 소개받아 찾아간 호스텔은 우리를 거부했다. ‘히피 사절’이란다. 우리는 절대 스스로 히피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를 받아주지 않은 호스텔 주인 덕분에 부두(Voodoo·주술) 거리의 뒷골목에서 4개월 전 만났던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지냈다. 부두 거리에선 ‘기분 나쁜’ 물건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한 할머니는 우리에게 안전한 여행과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싸구려 부적을 사라고 매일 졸랐다. 우리는 부적에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꼬부랑 할머니의 귀여운 웃음이 좋아서 속는 척하고 그것을 샀다. 쓸데없는 물건 사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다리오 역시 할머니의 매력에 빠졌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주문을 건 듯했다.

투누파 화산산을 배경으로 장난을 치는 지와 다리오.지와 다리오 제공

볼리비아에 왔으니 우유니 소금사막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여행사를 통해 이 여행을 준비했다. 4일 동안 900km를 이동해야 하는데, 이 정도 거리는 도저히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가장 싼 가격에 흥정한 곳으로 정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은 싼 투어나 비싼 투어나 보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다만, 4일 동안의 음식 메뉴가 달랐다. 우리는 대부분의 투어에서 가지 않는 우유니 소금사막 안의 투누파 화산산에 오르기로 했다. 아침 7시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나는 힘들어 중간에 포기했고, 다리오는 내가 허허벌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재빨리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왔다. 나중에야 투누파 화산산의 정상이 해발 5400m임을 알게 됐다. 거기에 오르려던 나도 미쳤고, 정상에 올라갔다 온 다리오는 더 미쳤다. 무조건 모르는 게 약이다.

우유니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마지막으로 잠깐 들른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보기에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때쯤 되면 가이드들도 피곤해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이 마을이 왜 투어에 끼어 있는지 알 턱이 없는 외국인 여행객은 3일 동안 참았던 소비를 하느라 그 비싼 미제 초콜릿바를 사먹었다. 우리는 마을 중앙에 있는 볼품없는 성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동네 아저씨로부터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은광이 있다. 하지만 은제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은광 개발권을 산 미국 기업은 모든 것을 ‘브루토’(Bruto·스페인어로 ‘과정을 거치지 않은 통째’라는 뜻)로 비밀처럼 미국에 가져가버린다고 했다. 그러니 은광 옆에 사는 사람들도 은 구경을 하지 못하는 셈이다. 미국 기업은 보상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벽돌집도 지어주고 아스팔트 길도 깔아주었다. 주택 신고 개념이 없던 터라 그곳에 살지 않던 사람들도 보상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판잣집을 짓기 시작해, 본래 10가구 정도 살던 곳에 200가구 이상 거주하는 제대로 된 마을이 들어섰다고 한다. ‘기업이 지어준 마을’이라는 것이 투어의 핵심인 듯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마을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소문을 들려주었다. 미국 기업이 사들인 은광에는 은이 아닌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그들이 작은 벽돌집 하나를 갖기 위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볼리비아의 슬픈 현실이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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