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비리지 않은 겨울의 기억
[KIN]입만 살아가지고 /
고등어 파스타는 따뜻하다
등록 : 2011-01-19 16:15 수정 : 2011-01-20 15:17
“젊은 시절엔 결코 1인칭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 소설가가 있다. 소설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엔 결코 자전적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게 좀더 정확한 인용인 것이다. 어쨌거나 ‘젊은 시절엔 스스로와 심리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 자신의 직업·취향·계급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사물·세상을 최대한 많이 겪고 그것에 대해 쓰겠다’는 결의로 나는 해석했다.
그래서 주제넘게 나도 이 칼럼에 요리 ‘도전기’라는 이름을 달았다. <도문대작> 같은 건 아직 쓸 수 없다. 나는 너무 어리다(허균에 비해 그렇다는 말입니다요). 지방 수령을 지낸 허균처럼 고위직에 올라본 적도 없다. 기생과의 추억도, 산해진미의 맛도 아직 모른다. 게다가 유배당한 적도 없다. 그러므로 기억의 맛이나 맛의 기억 따위에 대해 쓸 게 없다. 파 먹을 게 없다. 한 문장 쓸 때마다, 밑천 후달린다. 나처럼 머리 나쁜 기자에겐 ‘쓰기=몸 굴리기’.
이번은 예외다. ‘고등어 파스타’는 도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어떤 기억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유배당한 것도 아닌데 웬 기억 타령이냐고? 난 유배지에 갇혀 있다. 허균과 똑같다. 영하 15℃의 혹한에 유배돼 있다. 허균의 유배지 집 주변에 가시 울타리가 있었던 것처럼, 들어오면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렵다. 벌써 14번째 서울에서 맞는 겨울인데 적응이 안 된다. 고향이 남쪽인 게 이럴 땐 젬병인 거다.
‘비스트로 달고나’(지하철 6호선 상수역·02-324-2123)에서의 기억이 고등어 파스타를 만들게 했다. ‘달고나’에서는 고등어 파스타를 팔지는 않는다. 이탈리아식 숭어찜을 판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왜 해산물 요리에 종종 화이트 와인을 넣는지 그 이유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맛이다. 비릿하지 않다. 깔끔하다. 그 생선찜을 지난해 여자친구와 먹었다. 문제는 숭어찜 조리법을 알아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고등어 파스타는 생선찜에 대한 기억과 망원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의 타협이었다. 길이 꽁꽁 언 망원시장에서 몸집 작은 고등어 3마리를 3천원에 샀다. 파스타는 단순하다. 그래서 무수한 변주가 가능한 것 같다. 재료 수와 동일한 종류의 파스타가 존재한다. 김치볶음‘밥’이나 비빔‘밥’처럼, 한국의 쌀밥도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파스타만큼 다양하지는 않다. 리조토보다 파스타가 더 다양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고등어를 대충 손질해 뼈를 발라냈다.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볶았다. 손질한 고등어 반마리를 넣자 기분 좋은 바다 냄새가 났다. 고춧가루를 조금 뿌렸다. 생물 고등어를 샀기 때문에 소금간을 했다. 화이트 와인을 숟가락에 부었다. 프라이팬에 뿌리자마자 뚜껑을 덮었다. 잘못했다간 ‘플람베’(화염)가 피어오른다. 플람베는 해산물 요리 등에서 화이트와인을 넣어 불꽃을 일으킴으로써 비린내를 없애는 과정이다. 레스토랑의 플람베는 장관이지만 집에서 그 짓을 했다간 빨래와, 천정과, 바닥에 죄다 고등어 냄새가 밴다.
소금간이 부족했다.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를 파스타와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먹었던 숭어찜 맛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는 맛이라는 점은 똑같았다.
기억 따위에 대해서는 쓰지 않으려 했다(‘추억’이란 말은 남우세스럽다). 이번만 봐주시라. 너무 춥다. 난 겨울에 유배당했다. 여자친구와 ‘달고나’에 다시 가기 전까지 고등어 파스타를 한 번쯤 더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춥다 추워.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