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은 ‘반짝이 추리닝’이다. 얼핏 보면 ‘그쪽이 생각하는 그냥 그런 드라마’를 쓰는 작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수를 놓듯 사랑에 관한 드라마를 한줄 한줄 써내려가는 작가다. “이 드라마 재미있는데?” 싶으면 한 번쯤 추리닝을 뒤집어 브랜드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또 확인하고 나면 “어쩐지 재미있더라” 싶은 그런 작가가 김은숙이다. 김은숙이라는 이름 석 자는 <시크릿 가든>의 성공으로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김 작가는 <태양의 남쪽>(2003)으로 데뷔해 <파리의 연인>(2004), <프라하의 연인>(2005), <연인>(2006), <온에어>(2008), <시티홀>(2009), <시크릿 가든>(2010)까지 일곱 편의 드라마를 썼다. 시청률을 보자. <파리의 연인>은 최고 시청률 57.6%를 찍었다. <프라하의 연인>은 30%를, <연인>은 25%를 넘겼고 <온에어>와 <시티홀>도 각각 마지막 회 시청률이 25.8%와 19.6%를 기록했다. <시크릿 가든>도 18회까지 20% 후반대를 달리는 중이다. 이 정도면 전교에서 놀 만한 시청률 성적표라고 할 만하다.
 대중성과 동시에 김은숙 작가는 그만의 예술성을 지녔다. 예술성은 주로 여성의 심리를 기막히게 잡아내거나 드라마 안팎을 넘나들며 뛰어놀 때 드러난다. 김 작가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상대다. 뻣뻣하고 무뚝뚝한 남자들은 평범하거나 결점투성이인 여자들과 사랑에 빠지고, 그 남자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슬그머니 무너진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자칫하면 뻔해지는 대사와 설정을 살짝 뒤집고 흔들어 뻔하지 않게 만드는 솜씨는 가히 예술이다. 이전 드라마에서 쓴 대사와 인물을 다음 드라마에서 비틀고 패러디하거나 드라마 속에 다른 드라마를 집어넣으면서 시청자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실력도 노련하다. 작가가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수다를 떨며 TV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파리의 연인>부터 <시크릿 가든>까지 6년 동안 시청자는 시청자대로, 작가는 작가대로, 인물은 인물대로 조금씩 자라왔다. 변치 않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파리의 연인> 기획의도 첫째 줄에 등장하는 ‘사랑은 꿈이고 환상이다. 그리고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대한 도전이다’. 수많은 20~40대 여성 시청자의 부러움을 사면서 꿈같은 사랑을 했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깨어나고 싶지 않은 사랑이라는 그 꿈이 얼마나 달콤한지.
 어느 겨울날 오후, 로엘백화점 김주원 사장의 자택 거실. 영화 시나리오작가인 강태영과 ‘흥행불패’ 드라마작가 서영은, 인주시장 신미래가 흰색 소파에 앉아 있다. 저 멀리서 스턴트우먼 길라임이 커피잔을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걸어나와 소파에 앉는다.
 김 작가는 <태양의 남쪽>(2003)으로 데뷔해 <파리의 연인>(2004), <프라하의 연인>(2005), <연인>(2006), <온에어>(2008), <시티홀>(2009), <시크릿 가든>(2010)까지 일곱 편의 드라마를 썼다. 시청률을 보자. <파리의 연인>은 최고 시청률 57.6%를 찍었다. <프라하의 연인>은 30%를, <연인>은 25%를 넘겼고 <온에어>와 <시티홀>도 각각 마지막 회 시청률이 25.8%와 19.6%를 기록했다. <시크릿 가든>도 18회까지 20% 후반대를 달리는 중이다. 이 정도면 전교에서 놀 만한 시청률 성적표라고 할 만하다.
 대중성과 동시에 김은숙 작가는 그만의 예술성을 지녔다. 예술성은 주로 여성의 심리를 기막히게 잡아내거나 드라마 안팎을 넘나들며 뛰어놀 때 드러난다. 김 작가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상대다. 뻣뻣하고 무뚝뚝한 남자들은 평범하거나 결점투성이인 여자들과 사랑에 빠지고, 그 남자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슬그머니 무너진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자칫하면 뻔해지는 대사와 설정을 살짝 뒤집고 흔들어 뻔하지 않게 만드는 솜씨는 가히 예술이다. 이전 드라마에서 쓴 대사와 인물을 다음 드라마에서 비틀고 패러디하거나 드라마 속에 다른 드라마를 집어넣으면서 시청자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실력도 노련하다. 작가가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수다를 떨며 TV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파리의 연인>부터 <시크릿 가든>까지 6년 동안 시청자는 시청자대로, 작가는 작가대로, 인물은 인물대로 조금씩 자라왔다. 변치 않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파리의 연인> 기획의도 첫째 줄에 등장하는 ‘사랑은 꿈이고 환상이다. 그리고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대한 도전이다’. 수많은 20~40대 여성 시청자의 부러움을 사면서 꿈같은 사랑을 했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깨어나고 싶지 않은 사랑이라는 그 꿈이 얼마나 달콤한지.
 어느 겨울날 오후, 로엘백화점 김주원 사장의 자택 거실. 영화 시나리오작가인 강태영과 ‘흥행불패’ 드라마작가 서영은, 인주시장 신미래가 흰색 소파에 앉아 있다. 저 멀리서 스턴트우먼 길라임이 커피잔을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걸어나와 소파에 앉는다.
 
 
 #1. 그 여자들, 세다.
 길라임: 멀리서들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커피들 드세요. 제 커피에 라벤더 향이 있단 소리 종종 들어요. 
 신미래: 커피 향이 참 좋네요. 제 커피 철학 알죠? ‘사람들은 커피를 통해 마주 앉은 사람과, 또 세상과 말 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리필도 되죠? (웃음)
 서영은: 길라임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모임 ‘482’(사랑으로 팔자 고친 이들의 모임) 신입회원이 된 것도 축하하고. 그런데 라임씨는 씩씩해서 좋긴 한데 옷이 아직도 영~ 언밸런스다. 그래도 김주원 사장이 사랑하는 여자니까, 오케이 패스!
 강태영: (녹음기를 들고 중얼거리며) 스턴트우먼인 길라임씨가 신입회원이 되었다. 그녀가 끓인 커피에서는 라벤더 향이 난다. 근데 어떻게 커피에서 라벤더 향이 나지? 이상한데? 정말 그런가? 커피 향만 나는데?
 미래:: 태영씨, 뭘 그렇게 구시렁대. 그런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다들 기가 너무 센 거지.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참 백수로 놀다가 기적처럼 10급 공무원이 됐잖아요. 나 싫다고 떠난 전 남자친구 카드빚까지 대신 갚아주다 보니 서른여섯이나 먹었더라니까요. 제가 의리 하나는 있는 편이어서 동네 일을 다 맡아서 하다가 덜컥 시장까지 됐죠. 아, 밴댕이 아가씨 얘기를 빼먹었네. 제가 얼굴값을 하는 여자거든요. 또 한 거죠, 에잇, 장한 년. 
 영은:: 저야 쭉 시청률 잘 나오는 작가였죠. 나쁜 대본에 좋은 배우 없고, 좋은 대본에 나쁜 배우 없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건방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시작한 김에 건방 좀 더 떨게요. 제가 올드한 건 정말 싫어했거든요. 뭐든 고품격이 좋잖아요, 제 미모처럼. 제가 성격 이상하단 소리는 자주 들어도 얼굴 못생겼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어요. 다만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이혼한 다음 우리 준희를 혼자 키운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죠.
 태영:: 저는 파리에 있을 때 꽤 힘들게 지냈어요. 영화를 공부하러 파리에 가긴 했는데 집세가 3개월 넘게 밀려서 쫓겨났지, 프랑스어는 도대체 늘지 않지, 아르바이트도 잘렸지, 뭐 하나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없더라고요. 그야말로 백조나 다름없었죠. 한국에 와보니 더 난리가 난 거죠. 한국에 있는 작은아버지는 빚만 지고 잠적했지, 살던 집은 역시 집세가 밀려 있지, 조카는 돌봐야지. 그래도 ‘아자! 아자!’ 하면서 파이팅했어요.
 라임:: 저는 고등학교 때 소방관이셨던 아버지가 순직하시고 혼자 살아왔어요. 물론 제 옆에는 친구 아영이가 있었고, 액션스쿨에서 함께 먹고 자는 동료들이 있었죠. 스턴트를 하면서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힘들기도 하지만 저는 제 일이 좋아요.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데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저를 기억하는 동료들 때문이에요. 이 일을 할 때 심장이 제일 뜨겁거든요.
 미래:: 정말 다들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올곧은 반평생이구나. 고집도 있어 보이고, 성격도 있어 보이고. 뭐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랄까? 
 
 #2. 그 남자들, 만만치 않다.
 태영:: 라임씨가 만나는 김주원 사장 보니까 어쩜 기주씨랑 너무 비슷한 거 있죠. 기주씨와 길거리에서 자동차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져서 처음 봤는데, 만나자마자부터 ‘이 사람 참 차갑구나’ 싶었어요. 저는 제가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집 주인인 줄도 모르고 실수를 하나 했는데, 그랬더니 글쎄 하는 말이 “당신 해고야!”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누구에게 허리를 굽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죠. 
 라임:: 김주원은 더해요. 오해로 만나게 됐는데 하는 소리가 “여자랑 호텔룸 올라가는 거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이에요”였어요. 위아래 없이 그렇게 일관성 있게 ‘싸가지’ 없는 인간은 처음 봤다니까요. 말끝마다 자기가 백화점 사장이라는 걸 꼬박꼬박 강조하고 얼마나 돈이 많은지 매번 직간접적으로 알려줘요. 제가 온정을 배풀어야 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라나, 뭐라나. 게다가 상대를 꼭 ‘그쪽’이라고 부른다니까요. 
 태영:: 어머, 기주씨도 그래요, ‘그쪽’이라고! 부잣집 남자들은 다 그렇게 말이 짧은가, 아님 둘만 그런가. 하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여튼. 
 미래:: 우리 국이, 아니 조국 후보님은 제가 넘어지는데 받쳐주다가 손을 놓아버린 적도 있다니까요. 그래서 뭐 바닥에 ‘꽝’ 했죠. 빈정대는 말투에 꼬박꼬박 말을 받아치는 솜씨가 대단했어요.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동시에 패스해 사람들이 천재 관료라고 했거든요. 머리면 머리, 얼굴이면 얼굴, 몸이면 몸 완벽하다고 해서 ‘르네상스맨’이라는 별명까지 있어요. 딱 한 가지 없는 게 있어요. ‘싸가지’. 
 영은:: 무뚝뚝한 걸로는 이경민 감독도 누구한테 지지 않을걸요. 빈말 절대 못하고 말도 별로 없는데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그대로 다 얘기해요. 처음에는 웃는 얼굴을 못 봤다니까요. 서울대 법대 나와 학벌도 좋은데 성격이 까칠해 동기들보다 조연출을 더 오래 했어요. 그러다 저를 만나 처음으로 연출을 맡게 된 거예요. 같이 드라마 <티켓 투 더 문> 하면서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3. 사랑에 빠지다.
 라임:: 서로 알게 된 다음부터 김주원이 뻔질나게 액션스쿨을 드나들었어요.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제가 자꾸 떠오른대요. 제가 전화 끊고, 찾아오면 화내고, 가끔은 폭력도 썼더니 하는 소리가 “너무 이상하니까 그런 댁이 얼떨떨하고 신기해” 그러는 거예요. 한번은 액션스쿨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다가 대뜸 뭐라는 줄 아세요? “길라임씨 몇 살 때부터 그렇게 예뻤나? 작년부터?” 그게 미친 소리인 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제 마음 한구석이 움직이더라고요. 
 태영:: 나도 그랬어요. 한국에 와서 다시 기주씨를 만났는데 제가 미안하다는 소리나 고맙다는 소리나 제대로 하라고 화를 냈거든요. 그러다 옆 테이블 커플과 시비가 붙었는데 한기주 그 사람이 갑자기 저를 “애기야!”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다음부터 제가 사는 동네로 몇 번 불쑥 찾아오더니 이러더라고요. “너란 여자, 내가 연애하고 싶고 내가 좋아한다구.” 마음이 찡했어요. 그 사람 앞에만 가면 웃음이 막 나오는데, 그 모습에 반했나? 
 영은:: 근데 왜 남자들은 그렇게 여자 집으로 쳐들어오는 거야? 대체 왜? 이경민 감독은 같이 드라마 기획회의 하자고 짐을 싸들고 아예 작업실로 들어왔다니까요. 그렇게 자꾸 주변을 빙빙 도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 대본에 인쇄된 제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고 제 대본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먼저 읽고 싶다는 거예요. 한번은 서점 구석에 앉아 책을 보는데 옆자리에 스윽 앉더라고요. 그러더니 키스를 하는 거 있죠!
 미래:: 조국, 이 남자는 화를 내도 달콤하더라고요. 내가 좀 상상하면 깊이 가는 스타일인데, 계속 상상할 거리를 던지는 거야. “우리 다음 진도는 뭘까 궁금하지 않아요?” 이러면서. 내가 밴댕이아가씨 선발대회 때문에 1인시위를 하다가 옷이 찢긴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 여보가 와서 재킷을 허리에 묶어줬어요. 그때 알았지. 사람들 앞에서는 나를 막 다루는 것 같지만, 둘이 있을 때는 따뜻하구나. 이렇게 고백했죠. “처음엔 넌 쉬운 여자였는데, 이용하고 버리면 되는 여자였는데, 내가 어쩌다 내 인생까지 걸게 됐는지 돌겠다구.”
 영은:: 문제는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더라는 거예요. 밤에 혼자 나간 산책길에 뒤따라와 걷는 길에 플래시를 비춰주는 남자를, 우리 엄마한테 예쁨받겠다고 회식 자리를 엄마 식당으로 잡는 남자를 어떻게 밀어낼 수 있겠어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
 라임:: 저는 얼마나 버텼는지 몰라요. 흔들리지 않으려고. 그런데 액션스쿨 MT까지 따라와 자고 있는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그 남자에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속으로 얘기했죠. 내 꿈속으로 내일도 모레도 오라고. 이 남자, 제가 뇌사에 빠졌는데 자기가 저 대신 죽겠다고 위험한 짓까지 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이 남자, 사랑해야겠다고.
 태영:: 맞아요. 제가 긴 하루를 보냈다고 하니까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남자를, “강태영아, 너 나하고 그냥 살자” 하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미래:: 우리 국이도 그런 남자예요. 연설도 섹시하게 하는 남자, 가로등 아래 실루엣이 멋진 남자, 나 때문에 울어본 적 있는 남자.
 
 #4. 장벽을 넘다.
 라임:: 그런데 사랑이 다가 아니잖아요. 김주원은 처음부터 해피엔딩 따위는 없다고 했어요. 인어공주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 거품처럼 사라져달라고. 나중에는 자기가 제 인어공주가 되겠다는 소리도 했어요. 결국 누구 하나 거품 만들자는 소리잖아요. 자기가 다 버리고 나를 선택한다고 해도 그 행복이 얼마나 갈 것 같냐고 그래서 “니 말 다 맞아. 근데 이 바보야. 세상 어떤 여자도 끝을 내놓고 사랑을 시작하진 않아. 우린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우린 답이 없어”라고 했죠.
 영은:: 쌍팔년도 쉰데렐라 여주인공 얘기는 재미없지만, 인어공주 얘기는 또 너무 슬프다. 한마디로 갖고 논 거네? 그럼 복수를 해야지! 그럼 너무 저품격인가? (웃음)
 태영:: 저도 그랬어요. 처음엔 불편해도 좋으니까 쓰겠지만, 나중엔 버리고 싶어지지 않겠느냐고. 저는 그 사람 친구들 앞에서 모욕을 당해도 떳떳하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랬더니 화를 냈어요.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구.” 라임씨, 집안 반대도 있었죠? 저는 기주씨 아버님께 몇 번이나 불려갔는지 몰라요.
 라임:: 말도 마세요. 김주원 어머니는 드라마에서 늘 그렇듯 저에게 물을 부으시려는데 제가 습관처럼 몸을 피한 거예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다시 가겠습니다”라고. (웃음) 김주원이 저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려고 한 걸 안 다음에 이 남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시 갔죠, 어머님께. “아드님 저 주십쇼!”
 미래:: 저는 정치인이었던 그 남자 아버님이 협박도 하시데요. 제 주변 사람들을 걸고. 우리 여보가 저를 보호하려고 힘든 시간을 보냈죠. 자기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아픔까지도 제가 다 안아주려고요. 제가 조국의 ‘숨은 의미’거든요. 
 
 #5. 사랑은 □다.
 태영:: 한 번쯤 이런 사랑을 꿈꿨는지도 몰라요. 기주씨처럼 어마어마한 재산에 능력까지 갖춘 까칠한 남자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와 사랑에 빠지는 사랑을. 친절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남자보다 차갑고 도도한 남자가 나에게만 무릎을 꿇을 때, 나로 인해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더 행복해지니까요.
 영은:: 저에게 사랑은 설렘이에요. 누군가 내 어두운 밤길에 플래시를 비춰주는, 희미하지만 따뜻한 설렘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미래:: ‘대한민국 대표 노처녀’였던 저를 알아봐줬어요, 이 남자는. 저도 모르고 있던 저를 일깨워준 거죠. 이 남자의 착해빠진 구석을 발견한 것도 저였고요. 우린 서로로 인해 더 큰 사람이 된 거예요. 이것만큼 기분 좋은 사랑이 또 있을까요?
 라임:: 저에게 사랑은 환상이고 기적이에요. 믿을 수 없겠지만, 저와 그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면서 우린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보았죠. 김주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김주원도 제 눈으로 세상을 봤어요. 남녀 두 사람 사이에 기적이 있다면, 그건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거겠죠. 그 기적 같은 사랑을 한 거예요, 우리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1. 그 여자들, 세다.
 길라임: 멀리서들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커피들 드세요. 제 커피에 라벤더 향이 있단 소리 종종 들어요. 
 신미래: 커피 향이 참 좋네요. 제 커피 철학 알죠? ‘사람들은 커피를 통해 마주 앉은 사람과, 또 세상과 말 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리필도 되죠? (웃음)
 서영은: 길라임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모임 ‘482’(사랑으로 팔자 고친 이들의 모임) 신입회원이 된 것도 축하하고. 그런데 라임씨는 씩씩해서 좋긴 한데 옷이 아직도 영~ 언밸런스다. 그래도 김주원 사장이 사랑하는 여자니까, 오케이 패스!
 강태영: (녹음기를 들고 중얼거리며) 스턴트우먼인 길라임씨가 신입회원이 되었다. 그녀가 끓인 커피에서는 라벤더 향이 난다. 근데 어떻게 커피에서 라벤더 향이 나지? 이상한데? 정말 그런가? 커피 향만 나는데?
 미래:: 태영씨, 뭘 그렇게 구시렁대. 그런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다들 기가 너무 센 거지.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참 백수로 놀다가 기적처럼 10급 공무원이 됐잖아요. 나 싫다고 떠난 전 남자친구 카드빚까지 대신 갚아주다 보니 서른여섯이나 먹었더라니까요. 제가 의리 하나는 있는 편이어서 동네 일을 다 맡아서 하다가 덜컥 시장까지 됐죠. 아, 밴댕이 아가씨 얘기를 빼먹었네. 제가 얼굴값을 하는 여자거든요. 또 한 거죠, 에잇, 장한 년. 
 영은:: 저야 쭉 시청률 잘 나오는 작가였죠. 나쁜 대본에 좋은 배우 없고, 좋은 대본에 나쁜 배우 없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건방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시작한 김에 건방 좀 더 떨게요. 제가 올드한 건 정말 싫어했거든요. 뭐든 고품격이 좋잖아요, 제 미모처럼. 제가 성격 이상하단 소리는 자주 들어도 얼굴 못생겼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어요. 다만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이혼한 다음 우리 준희를 혼자 키운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죠.
 태영:: 저는 파리에 있을 때 꽤 힘들게 지냈어요. 영화를 공부하러 파리에 가긴 했는데 집세가 3개월 넘게 밀려서 쫓겨났지, 프랑스어는 도대체 늘지 않지, 아르바이트도 잘렸지, 뭐 하나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없더라고요. 그야말로 백조나 다름없었죠. 한국에 와보니 더 난리가 난 거죠. 한국에 있는 작은아버지는 빚만 지고 잠적했지, 살던 집은 역시 집세가 밀려 있지, 조카는 돌봐야지. 그래도 ‘아자! 아자!’ 하면서 파이팅했어요.
 라임:: 저는 고등학교 때 소방관이셨던 아버지가 순직하시고 혼자 살아왔어요. 물론 제 옆에는 친구 아영이가 있었고, 액션스쿨에서 함께 먹고 자는 동료들이 있었죠. 스턴트를 하면서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힘들기도 하지만 저는 제 일이 좋아요.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데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저를 기억하는 동료들 때문이에요. 이 일을 할 때 심장이 제일 뜨겁거든요.
 미래:: 정말 다들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올곧은 반평생이구나. 고집도 있어 보이고, 성격도 있어 보이고. 뭐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랄까? 
 
 #2. 그 남자들, 만만치 않다.
 태영:: 라임씨가 만나는 김주원 사장 보니까 어쩜 기주씨랑 너무 비슷한 거 있죠. 기주씨와 길거리에서 자동차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져서 처음 봤는데, 만나자마자부터 ‘이 사람 참 차갑구나’ 싶었어요. 저는 제가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집 주인인 줄도 모르고 실수를 하나 했는데, 그랬더니 글쎄 하는 말이 “당신 해고야!”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누구에게 허리를 굽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죠. 
 라임:: 김주원은 더해요. 오해로 만나게 됐는데 하는 소리가 “여자랑 호텔룸 올라가는 거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이에요”였어요. 위아래 없이 그렇게 일관성 있게 ‘싸가지’ 없는 인간은 처음 봤다니까요. 말끝마다 자기가 백화점 사장이라는 걸 꼬박꼬박 강조하고 얼마나 돈이 많은지 매번 직간접적으로 알려줘요. 제가 온정을 배풀어야 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라나, 뭐라나. 게다가 상대를 꼭 ‘그쪽’이라고 부른다니까요. 
 태영:: 어머, 기주씨도 그래요, ‘그쪽’이라고! 부잣집 남자들은 다 그렇게 말이 짧은가, 아님 둘만 그런가. 하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여튼. 
 미래:: 우리 국이, 아니 조국 후보님은 제가 넘어지는데 받쳐주다가 손을 놓아버린 적도 있다니까요. 그래서 뭐 바닥에 ‘꽝’ 했죠. 빈정대는 말투에 꼬박꼬박 말을 받아치는 솜씨가 대단했어요.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동시에 패스해 사람들이 천재 관료라고 했거든요. 머리면 머리, 얼굴이면 얼굴, 몸이면 몸 완벽하다고 해서 ‘르네상스맨’이라는 별명까지 있어요. 딱 한 가지 없는 게 있어요. ‘싸가지’. 
 영은:: 무뚝뚝한 걸로는 이경민 감독도 누구한테 지지 않을걸요. 빈말 절대 못하고 말도 별로 없는데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그대로 다 얘기해요. 처음에는 웃는 얼굴을 못 봤다니까요. 서울대 법대 나와 학벌도 좋은데 성격이 까칠해 동기들보다 조연출을 더 오래 했어요. 그러다 저를 만나 처음으로 연출을 맡게 된 거예요. 같이 드라마 <티켓 투 더 문> 하면서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3. 사랑에 빠지다.
 라임:: 서로 알게 된 다음부터 김주원이 뻔질나게 액션스쿨을 드나들었어요.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제가 자꾸 떠오른대요. 제가 전화 끊고, 찾아오면 화내고, 가끔은 폭력도 썼더니 하는 소리가 “너무 이상하니까 그런 댁이 얼떨떨하고 신기해” 그러는 거예요. 한번은 액션스쿨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다가 대뜸 뭐라는 줄 아세요? “길라임씨 몇 살 때부터 그렇게 예뻤나? 작년부터?” 그게 미친 소리인 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제 마음 한구석이 움직이더라고요. 
 태영:: 나도 그랬어요. 한국에 와서 다시 기주씨를 만났는데 제가 미안하다는 소리나 고맙다는 소리나 제대로 하라고 화를 냈거든요. 그러다 옆 테이블 커플과 시비가 붙었는데 한기주 그 사람이 갑자기 저를 “애기야!”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다음부터 제가 사는 동네로 몇 번 불쑥 찾아오더니 이러더라고요. “너란 여자, 내가 연애하고 싶고 내가 좋아한다구.” 마음이 찡했어요. 그 사람 앞에만 가면 웃음이 막 나오는데, 그 모습에 반했나? 
 영은:: 근데 왜 남자들은 그렇게 여자 집으로 쳐들어오는 거야? 대체 왜? 이경민 감독은 같이 드라마 기획회의 하자고 짐을 싸들고 아예 작업실로 들어왔다니까요. 그렇게 자꾸 주변을 빙빙 도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 대본에 인쇄된 제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고 제 대본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먼저 읽고 싶다는 거예요. 한번은 서점 구석에 앉아 책을 보는데 옆자리에 스윽 앉더라고요. 그러더니 키스를 하는 거 있죠!
 미래:: 조국, 이 남자는 화를 내도 달콤하더라고요. 내가 좀 상상하면 깊이 가는 스타일인데, 계속 상상할 거리를 던지는 거야. “우리 다음 진도는 뭘까 궁금하지 않아요?” 이러면서. 내가 밴댕이아가씨 선발대회 때문에 1인시위를 하다가 옷이 찢긴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 여보가 와서 재킷을 허리에 묶어줬어요. 그때 알았지. 사람들 앞에서는 나를 막 다루는 것 같지만, 둘이 있을 때는 따뜻하구나. 이렇게 고백했죠. “처음엔 넌 쉬운 여자였는데, 이용하고 버리면 되는 여자였는데, 내가 어쩌다 내 인생까지 걸게 됐는지 돌겠다구.”
 영은:: 문제는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더라는 거예요. 밤에 혼자 나간 산책길에 뒤따라와 걷는 길에 플래시를 비춰주는 남자를, 우리 엄마한테 예쁨받겠다고 회식 자리를 엄마 식당으로 잡는 남자를 어떻게 밀어낼 수 있겠어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
 라임:: 저는 얼마나 버텼는지 몰라요. 흔들리지 않으려고. 그런데 액션스쿨 MT까지 따라와 자고 있는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그 남자에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속으로 얘기했죠. 내 꿈속으로 내일도 모레도 오라고. 이 남자, 제가 뇌사에 빠졌는데 자기가 저 대신 죽겠다고 위험한 짓까지 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이 남자, 사랑해야겠다고.
 태영:: 맞아요. 제가 긴 하루를 보냈다고 하니까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남자를, “강태영아, 너 나하고 그냥 살자” 하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미래:: 우리 국이도 그런 남자예요. 연설도 섹시하게 하는 남자, 가로등 아래 실루엣이 멋진 남자, 나 때문에 울어본 적 있는 남자.
 
 #4. 장벽을 넘다.
 라임:: 그런데 사랑이 다가 아니잖아요. 김주원은 처음부터 해피엔딩 따위는 없다고 했어요. 인어공주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 거품처럼 사라져달라고. 나중에는 자기가 제 인어공주가 되겠다는 소리도 했어요. 결국 누구 하나 거품 만들자는 소리잖아요. 자기가 다 버리고 나를 선택한다고 해도 그 행복이 얼마나 갈 것 같냐고 그래서 “니 말 다 맞아. 근데 이 바보야. 세상 어떤 여자도 끝을 내놓고 사랑을 시작하진 않아. 우린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우린 답이 없어”라고 했죠.
 영은:: 쌍팔년도 쉰데렐라 여주인공 얘기는 재미없지만, 인어공주 얘기는 또 너무 슬프다. 한마디로 갖고 논 거네? 그럼 복수를 해야지! 그럼 너무 저품격인가? (웃음)
 태영:: 저도 그랬어요. 처음엔 불편해도 좋으니까 쓰겠지만, 나중엔 버리고 싶어지지 않겠느냐고. 저는 그 사람 친구들 앞에서 모욕을 당해도 떳떳하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랬더니 화를 냈어요.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구.” 라임씨, 집안 반대도 있었죠? 저는 기주씨 아버님께 몇 번이나 불려갔는지 몰라요.
 라임:: 말도 마세요. 김주원 어머니는 드라마에서 늘 그렇듯 저에게 물을 부으시려는데 제가 습관처럼 몸을 피한 거예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다시 가겠습니다”라고. (웃음) 김주원이 저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려고 한 걸 안 다음에 이 남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시 갔죠, 어머님께. “아드님 저 주십쇼!”
 미래:: 저는 정치인이었던 그 남자 아버님이 협박도 하시데요. 제 주변 사람들을 걸고. 우리 여보가 저를 보호하려고 힘든 시간을 보냈죠. 자기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아픔까지도 제가 다 안아주려고요. 제가 조국의 ‘숨은 의미’거든요. 
 
 #5. 사랑은 □다.
 태영:: 한 번쯤 이런 사랑을 꿈꿨는지도 몰라요. 기주씨처럼 어마어마한 재산에 능력까지 갖춘 까칠한 남자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와 사랑에 빠지는 사랑을. 친절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남자보다 차갑고 도도한 남자가 나에게만 무릎을 꿇을 때, 나로 인해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더 행복해지니까요.
 영은:: 저에게 사랑은 설렘이에요. 누군가 내 어두운 밤길에 플래시를 비춰주는, 희미하지만 따뜻한 설렘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미래:: ‘대한민국 대표 노처녀’였던 저를 알아봐줬어요, 이 남자는. 저도 모르고 있던 저를 일깨워준 거죠. 이 남자의 착해빠진 구석을 발견한 것도 저였고요. 우린 서로로 인해 더 큰 사람이 된 거예요. 이것만큼 기분 좋은 사랑이 또 있을까요?
 라임:: 저에게 사랑은 환상이고 기적이에요. 믿을 수 없겠지만, 저와 그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면서 우린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보았죠. 김주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김주원도 제 눈으로 세상을 봤어요. 남녀 두 사람 사이에 기적이 있다면, 그건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거겠죠. 그 기적 같은 사랑을 한 거예요, 우리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레드 기획
1) 2)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김정은)과 한기주(박신양), 3) 〈온 에어〉의 서영은(송윤아), 4)〈시티홀〉의 신미래(김선아)와 조국(차승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