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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축구 귀족’이라 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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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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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지로 치솟은 A급 선수들의 몸값… 피구의 최고 이적료는 누가 깰 건가

사진/ 지단과 함께 최고의 몸값 대결을 벌이고 있는 호나우두.(SYGMA)
‘테리우스’ 안정환이 1년 동안 활약한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1부 리그) 페루자 구단과의 임대계약이 6월 말 만료되는 시점에서 완전이적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은 많지만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면 ‘돈’이 문제다. 안정환의 원래 소속 구단인 부산 아이콘스는 ‘1년 임대 뒤 완전이적시 이적료 210만달러’라는 계약조건을 그대로 지킬 것을 주장하고 페루자는 100만달러로 액수를 낮춰 안정환의 이적을 원하고 있다.

100만달러, 또는 210만달러. 안정환의 몸값으로 거론되는 이 액수는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에서는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 한마디로 너무나 미미한 액수이다. 평범한 선수의 이적료에나 미칠까. 정상에 있는 A급 선수들이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선수들은 으레 몇천만달러를 호가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2001 아르헨티나 세계청소년(20살 이하)선수권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청소년대표팀의 스트라이커 하비에르 사비올라(아르헨티나 리버플레이트)는 19살의 어린 나이지만 스페인의 명문구단 FC바르셀로나에서 2600만달러에 이적제의를 받고 있다.

비에리가 이적료 5천만달러시대 열어


사진/ 축구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옮긴 루이스 피구.(SYGMA)
그렇다면 세계 무대에서 뛰고 있는 A급 선수들의 몸값은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포지션별로는 어떤 선수들이 ‘축구 귀족’의 지위를 누리고 있을까.

유로2000(유럽축구선수권대회)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처음으로 포르투갈을 4강으로 이끈 루이스 피구는 대회가 끝난 뒤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5600만달러의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기록했다. 이 액수는 2000∼2001 시즌 최고는 물론 축구사상 최고 이적료의 고액이다. 이에 앞서 2000∼2001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라치오로 이적하면서 아르헨티나의 헤르난 크레스포가 5500만달러로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피구가 기록을 바꿨다.

2000∼2001 시즌 전까지는 99∼2000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 라치오에서 인터 밀란으로 옮긴 이탈리아대표팀의 스트라이커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5천만달러가 최고액이었다. 세계 특급스타들의 몸값은 90년 이탈리아의 ‘말총머리’ 로베르토 바조가 피오렌티나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하면서 130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고액시대’를 활짝 열었고, 96년 잉글랜드의 앨런 시어러는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 블랙번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팀을 옮기면서 2330만달러의 이적료로 ‘2천만달러’시대를 열었다. 이후 97년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인터밀란에 입단하면서 2790만달러, 98년 브라질의 데니우손이 3500만달러로 이적료 최고액은 계속 상승해, 비에리가 5천만달러를 돌파한 뒤에도 끝없는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8월 시작하는 유럽 프로축구 2001∼2002 시즌을 앞두고 현재 스타들의 이적을 둘러싼 트레이드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 지난해 루이스 피구의 최고 이적료도 곧 깨질 전망이다. 그 주인공은 만약 팀을 옮긴다면 프랑스 ‘아트사커’의 지휘관 지네딘 지단이 된다. 지난해 피구의 이적을 성사시킨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에는 지단에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적료 5천만달러에 선수 3명까지 끼워주는 조건으로 이미 지단의 소속팀인 이탈이아 유벤투스에 이적 제의를 했다고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이에 유벤투스는 “지단과의 계약은 2005년까지”라며 이적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에 이적료와 루이스 피구를 요구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적료 6800만달러에 5년간 연봉 3750만달러까지 줄 수 있다는 외신보도까지 있어 거래가 이뤄지면 지단의 가치는 사상 최고인 1억달러를 넘어선다.

2000년 FIFA 올해의 선수 지단이 팀을 옮기고 싶다는 자신의 의지와 달리 대리변호사의 말처럼 유벤투스에 그대로 남는다면 브라질대표팀의 ‘왼발의 마술사’ 히바우두가 최고 이적료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 99년 FIFA올해의 선수인 히바우두는 이탈리아 라치오의 영입대상 선수이다. 라치오는 지난해에도 히바우두를 스카우트하려다가 막판에 실패했는데 올해에는 피구의 이적료를 뛰어넘는 1500억리라(약 880억원)라는 거절하기 힘든 액수를 바르셀로나에 제의하면서 공세를 펴고 있다.

지단의 이적료 1억달러 넘어설 듯

사진/ 1억달러의 이적료를 기록할 것을 보이는 프랑스 아트사커의 지휘관 지네딘 지단.(SYGMA)
트레이드시장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몇몇 선수들은 고액의 몸값으로 새 팀, 새 유니폼을 찾아 둥지를 옮겼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프랑스의 철벽수비를 이끄는 중앙 수비수 릴리앙 튀랑이다. 그는 5년간 3천만달러에 이탈리아의 AC파르마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하는 계약을 지난달 19일 마쳤다. 이 액수는 수비수로는 이례적인 고액연봉. 수비수 역대 최고 이적료이고 전체에서도 7위에 해당한다. 98 프랑스월드컵과 유로2000에서 프랑스 우승의 주역이었던 튀랑은 이탈리아 라치오와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끈질긴 제의를 뿌리치고 유벤투스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유벤투스는 튀랑의 영입으로 내년 시즌 지단을 그대로 보유한다면 트레제게-지단-튀랑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대표선수로 구성된 공수라인을 갖게 된다.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서 이동국과 함께 뛰어 한국팬들에게도 익숙한 페루 출신의 공격수 클라우디오 피사로는 독일의 명문구단 바이에른 뮌헨으로 지난달 8일 이적했다. 지난 시즌 브레멘에서 19골을 터뜨린 피사로는 700만달러에 4년간 계약했다. 브라질의 차세대 골잡이로 주목받는 지오반니(21·크루제이루)는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해 유럽무대로 진출했다. 바르셀로나는 지난달 2일 이적료 1800만달러, 연봉 100만달러에 이후 매년 연봉 10만달러씩을 추가 지급하는 조건으로 5년간 계약했다. 계약금 270만달러는 별도이다.

파트리크 음보마와 함께 아프리카네이션스컵, 시드니올림픽 우승을 이끌며 ‘불굴의 사자’ 카메룬의 투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는 사무엘 에투는 임대로 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마요르카에 완전 이적했다. 마요르카는 에투의 전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 622만달러를 지불했다. 튀랑의 예외적인 예가 있긴 하지만 스타들의 몸값은 포지션에 따라 스트라이커에서 골키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낮아진다. 고액 이적료 기록의 대부분은 공격수들이 차지하고 있다. 역대 고액 이적료 순위를 보면 10위 내에 수비수는 얼마 전 이름을 올린 튀랑이 유일하다. 1위 피구와 5위 데니우손이 공격형 미드필드이고 나머지 7자리는 모두 스트라이커다. 크레스포, 비에리, 아넬카(프랑스), 바티스투타(아르헨티나)에서 최근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옮긴 루드 반 니스텔루이(네덜란드)까지. 골키퍼는 50걸에도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일본 선수들, 국제 무대에서 손짓

사진/ 거액의 이적료를 제의받고 있는 왼발의 마술사 히바우두(사진 가운데).(GAMMA)
다시 눈을 한국의 안정환에게 돌리면 한국축구의 ‘저렴한’ 위상이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자존심마저 상하는 노릇이다. 제3회 컨페더레이션스컵이 끝난 뒤 준우승한 일본 선수들에 대한 높은 이적료의 유럽 이적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탈리아 AS로마에서 뛰고 있는 나카타 히데토시는 500억리라(280억원)선에서 파르마 이적설이 설득력 있게 얘기되고 있다. 나카타는 99년 페루자에서 AS로마로 옮기면서 2500만달러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오노 신지도 네덜란드 페예누르드로 이적설이 나돌면서 배번 10번과 최고급 주택, RV 자동차, 개막전 헬기 수송 등 특급대우를 약속받고 있다. 심지어 골키퍼인 가와구치까지 이번 시즌에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로 승격한 볼턴 원더러스로부터 이적료 3억엔, 연봉 7천만엔의 조건에 이적제의를 받고 있다. 돈이 움직이는 세계축구에서 한국축구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

박정욱/ 스포츠서울 축구팀 기자 jwp94@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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