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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조던은 제국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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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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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신화를 통해 본 비틀린 자본과 사회의 비틀린 현실, <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

사진/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 세워진 조던 동상. 나이키 신발을 신었다.(SYGMA)
은퇴했던 마이클 조던이 1995년 다시 농구선수로 되돌아왔을 때, 새로 지은 농구장인 시카고의 유나이티드센터 앞에서 그를 맞은 것은 바로 자신의 동상이었다. 평소처럼 훌쩍 공중으로 뛰어올라 한손으로 농구공을 쥐고 림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 그리고 발에는 늘 조던이 신었던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었다.

조던은 과연 최고였나?

마이클 조던. 전 미국 프로농구 선수. 지금은 프로농구 구단주. 선수로서만 보면 소속팀 시카고 불스를 여섯번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컨디션이 정상이면 무조건 득점왕을 거머쥔 선수. 90년대 세계 최고의 농구 선수. 그러나 과연 그가 최고일까? 그가 뛰었을 당시의 시카고 불스가 역대 최고의 농구팀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미국프로농구(NBA)의 역사로만 살펴볼 때 전성기를 가장 오래 지속한 팀은 조던이 몸담았던 시카고 불스가 아니고 보스턴 셀틱스였다. 그리고 통산 최다득점도 2만9227점을 넣은 조던이 아니라 3만837점을 넣었던 카림 압둘자바다. 조던은 미 프로농구사상 통산 득점랭킹 3위다.

지구상에 등장했던 그 어떤 스포츠 스타보다도 마이클 조던은 유명하다. 조던을 대통령으로 뽑자는 인터넷 사이트가 존재할 정도다. 조던처럼 뛰어났던 스포츠 영웅 펠레도, 칼 루이스도, 무하마드 알리도 조던처럼 신화적인 존재는 되지 못했다. 조던은 위대한 운동선수 이상의 존재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고 구축해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조던의 뒤에 그를 모델로 ‘낙점한’ 나이키와, 그가 혀를 내밀고 덩크슛을 꽂아대는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는 ESPN과 같은 스포츠채널이란 창조주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의 동상은 바로 조던과 나이키가 만들어낸 신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던 신화는 겉보기처럼 간단한 구조가 아니다. 조던 신화는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특성, 기업과 스타의 연결 전략, 그리고 대중을 상대로 한 이미지 조작 같은 이 시대 상업문화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미국 코넬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월터 레이피버가 지은 책 <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문학과지성사 펴냄/ 8천원/ 문의 02-338-7222∼3)는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조던 신화를 통해 자본과 사회의 비틀린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다. 레이피버는 너무나 친숙한 마이클 조던이란 소재와 현상을 통해 조던과 조던으로 대표되는 매스미디어시대의 특성을 분석한다. 우리가 바로 지금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이키나 루퍼트 머독, 테드 터너의 미디어제국, 그리고 초국적 기업을 이해해야 하듯이 조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거래’

책은 상당히 미시적이다. 조던에 대한 이야기를 세밀하고 꼼꼼하게 이어간다. 물론 초점은 조던이란 훌륭한 스포츠 스타가 어떻게 자본주의시대의 상징으로 성장했는지, 그리고 조던이란 상징을 통해 미디어와 결합한 초국적 기업이 어떻게 부를 얻어내는지 세밀하게 들여다 보는 데 맞춰져 있다.

지은이는 세계가 19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들면서 그 중심에 조던이 있다고 분석한다. 변화의 핵심은 바로 정보혁명이고, 이 혁명을 추동한 것은 미국 자본과 초국적 기업의 새로운 힘이었다. 나이키는 그 전형적인 예다. 1984년 프로농구에 데뷔한 조던이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바로 그 즈음, 나이키는 때마침 불어닥친 커뮤니케이션혁명을 타고 뉴미디어를 통해 조던이 신는 신발을 전 지구적으로 팔 수 있었다.

조던을 이용한 판매전략은 비단 나이키뿐만이 아니었다. 지은이는 자본이 스타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잘 보여주는 예로 92년 등장했던 맥도널드 광고를 거론한다. 이 광고는 92년 시즌 챔피언 시리즈에서 시카고 불스의 우승을 결정짓는 버저가 울리는 직후의 모습을 그대로 광고로 만들었다. 조던이 팀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광고팀은 코트로 뛰어들어가 조던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그리고는 질문이 나온다. “마이클, 당신은 세번 연속으로 NBA 챔피언을 따냈습니다. 네 번째 우승도 차지하고 싶습니까?” 땀흘리며 웃는 조던의 대답은 뭐였을까. “빅 맥이 먹고 싶습니다.” 광고가 만들어지는 데는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반나절 만에 편집을 마쳤고, 바로 그날부터 텔레비전에서는 이 광고가 전파를 타고 미국 전역을 뒤덮었다.

조던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초국적 자본의 힘은 놀랍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조던은 시상식에 나이키의 라이벌인 리복에서 제공한 미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지 않겠다고 했다.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지만, 조던은 시상대에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올라갔다. 성조기로 리복 마크를 가리는 묘안으로 나이키의 라이벌 상표가 부각되는 것을 막아낸 것이었다. 지은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조던과 나이키가 신화로 포장된 성공 뒤편에 얼마나 상업적인 가치에 몰두하고 있는지를 치밀하게 따져들어간다.

사진/ 조던은 농구로 대표되는 미국식 문화를 세계에 퍼뜨리는 주역이었다.(SYGMA)
<마이클 조던…>은 조던을 통해 미디어와 결합한 범지구적 스타가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갖는지,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세상의 인식을 규정하는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런 신화가 역으로 막대한 부를 거둬들이는 주체들을 옭아매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뉴미디어라는 새로운 혁명 덕분에 조던과 나이키는 세계시장을 장악하며 부와 명성을 누리게 됐지만, 동시에 그들의 잘못과 비극까지 전지구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조던 아버지의 죽음과 도박 파문 같은 조던의 개인적 불행까지 전달될 수밖에 없었고, 나이키 역시 아시아의 하청업체들이 운동화를 만드는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사실이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들의 계약을 ‘파우스트의 거래’로 지칭하고 있다.

미국 패권주의의 또 다른 상징

레이피버 교수는 마지막 부분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마이클 조던은 과연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스타인지, 혹은 교활한 형태의 제국주의인가. 나이키를 통해 새로운 미국식 생활방식을 확산시키는 중심에 바로 조던이 있다는 점에서 조던은 미국 패권주의의 또다른 상징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미래의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암시한다. 미래의 전장은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 혹은 문명 대 문명이 아니라 자본 대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주의가 사회·정치적 문제를 경제로, 문화를 상업적 기획으로 바꾸는 변화의 증거들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 있고, 조던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미국의 가장 든든한 동맹국인 독일에서조차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97년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일찍이 현대사에서 오늘날의 미국처럼 한 나라가 지구를 철저하게 지배한 적은 없었다. 전세계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는 딱지를 달기 전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 거대한 흐름에 개개인들이 맞설 수 있을까. 지은이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변화가 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의 지배가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모든 나라의 문화가 획일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저항과 반대도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화는 분명 거스를 수 없는 대세지만, 지구화 과정은 동시에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다시 국지화를 부르는 역동적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세계인들이 어떤 상상력과 실천을 발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희망은 분명 존재하지만 전세계가 조던을 향해 보냈던 그 열광과 환호를 보면 우려는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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