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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오일머니 향한 FIFA의 성공한 도박

한국 2022년 월드컵 개최국 탈락 이유,
시기상조·연평도 포격·최악의 프레젠테이션 모두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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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07 14:28 수정 : 2010-12-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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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러시아와 카타르에 축하를! 만약 당신이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는 축구팬이라면 2018년에는 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게 될 것이며, 2022년에는 반경 25km 안팎에서 모든 월드컵 경기를 치르는 카타르에서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길 것이다. 적어도 지리적 측면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들이 세계 축구팬들에게 지리 공부를 시키기 위해 러시아라는 거대한 대륙과 카타르라는 중동의 소국을 선택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왜 2018년이 월드컵 개최국으로 확실시 꼽혔던(더욱이 데이비드 베컴까지 나섰는데) 잉글랜드가 탈락하고, 2022년이 유력했던(헨리 키신저가 막후 지휘자로 활약했는데) 미국이 탈락했을까.

축구 통한 세계 평화? FIFA는 철저한 이익집단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카타르 국왕,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 총리(왼쪽부터)가 지난 12월2일(현지시각)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월드컵 개최국 선정 발표회 뒤 트로피를 나눠 들고 있다.REUTERS

물론 당장의 급한 질문은 ‘왜 한국이 탈락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호들갑스럽게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들은 ‘공개 프레젠테이션이 최악이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때문이다’ ‘2002년의 개최국으로서 너무 시기가 빨랐다’ 등을 써놓았다. 이 모든 언급은 정답과 아무 관련이 없는 즉흥적인 발상이다.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에 닥쳤을 때는 다음의 격언이 꼭 필요하다.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버려라.’

중요한 것은 FIFA가 어떤 집단이며 올해 들어 FIFA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FIFA가 어떤 조직인가? ‘축구를 통해 세계 평화를 구하려는 조직?’ 천만에. 만일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할 따름이다. FIFA는 노벨위원회도 아니요 유네스코도 아니다. FIFA는 철저히 자기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을 쏟을 뿐이며 그 ‘이익’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FIFA를 좌지094우지하는 집행위원 각자의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이익으로 수렴된다. 이를 ‘권력’이라고 줄여 말한다면, 이 권력은 두 개의 표적을 향하는데, 그 하나는 FIFA 내부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기가 속한 국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FIFA 집행위원들이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 이 회로에서 움직이고 있거니와 그 대표적인 인물로 정몽준 FIFA 부회장을 떠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몽준 부회장만이 도드라지게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FIFA라는 권력기구가 대체로 그 맥락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FIFA 사업의 ‘황금알’이 되는 월드컵 개최국은 바로 이 내부의 권력관계 안에서,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에 걸친 치열한 갈등과 대립과 협상의 산물로 결정난다. ‘프레젠테이션 능력’ ‘평화, 친선, 우애’ ‘대륙별 순회’ 같은 말들과는 무관하게 막후에서 수년에 걸쳐 이뤄지는 대립과 타협의 산물이다. 더욱이 ‘연평도 도발’은, 한승주 유치위원장이 밝혔다시피 “결정적인 패인은 아니”었으며 “연평도 포격 사건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8년 전에 치른 게 더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 공개 프레젠테이션은 현지 취재기자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쉴 정도로 최악이었지만, 이 또한 개최지 결정에 한 줌의 변수도 되지 않는다.

검토해야 할 것은 이번 유치전에서 ‘정몽준 부회장 혼자만 뛰었다’는 분석이다. 사실 ‘혼자만’ 뛰었다. 그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정몽준 부회장은 한국 축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세계 스포츠계의 거물이며 어떤 점에서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축구에 몸을 던진 ‘축구인’이다. 그는 실제로 열심히 뛰었다. 문제는 ‘혼자만’ 뛰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는 양면의 해석이 가능하다. 왜 ‘혼자만’ 뛰었을까. 2002 월드컵 때의 기억을 재현하려는 정치적 욕망을 배제할 수 없다. 그에게 월드컵 유치란 ‘국위선양’이면서도 동시에 비틀거리는 대선가도를 말끔하게 재편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획득한 귀한 과실을 나눠줄 여유까지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국내 정치 역학관계에서도 결국은 그가 독차지할 게임에 끼어들고 싶은 유력 정치인은 거의 없었다. 정몽준 부회장으로서는 억울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월드컵=정몽준=대권’이란 공식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혼자만’ 뛰게 된 것이다.

 

뇌물 스캔들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카드

그렇기는 해도 ‘혼자만’ 뛰었다는 얘기 또한 프레젠테이션이나 연평도처럼 중요한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야 한다. FIFA 내부의 역학관계 말이다. FIFA는 ‘2018년 잉글랜드, 2022년 미국’이 수익 극대화를 꾀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였다. 하지만 잇따른 부패·뇌물 스캔들이 발목을 잡았다.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함정 취재’로 2명의 FIFA 집행위원이 자격 정지를 받았고, 역시 영국의 가 또 다른 FIFA 집행위원 3명이 스포츠마케팅 회사 ISL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제프 블라터 현 FIFA 회장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개최지 결정을 코앞에 두고 블라터 회장이 직접 “뇌물수수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혀야 했을 정도로 다급했는데, 제프 블라터와 그를 따르는 일부 집행위원들은 부패·뇌물 스캔들로 추악하게 전락할 수도 있는 FIFA를 구하기 위해(다시 말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잉글랜드와 미국이라는 최선의 카드 대신 러시아와 카타르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블라터의 도박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발표 당일, 취리히 현장에는 15조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크렘린의 파이프라인’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로만 아브라모치비(현 첼시 구단주)와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카타르의 오일머니 유력자들이 몰려들었으니 블라터로서는 잃을 게 없는 게임이었다.

블라터는 내년 5월 FIFA 회장 4선에 도전한다.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과 동반해 유럽과 아프리카 축구 권력을 손에 넣은 상태다. 이 조건에서 러시아나 카타르 같은 새로운 맹주들을 키움으로써 무시 못할 대항마로 성장한 반대 세력, 예컨대 정몽준 부회장 같은 인물을 위축시키려는 포석이 확연하다. 주식 재산이 3조원에 육박하는 정 부회장은 뇌물 스캔들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FIFA 개혁’이라는 깃발을 들 수 있는 사람이고 실제로 정몽준 부회장은 그 역할을 자임해왔다.

여기에 ‘권력투쟁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교훈을 수년째 입증해온 또 다른 인물이 있으니 바로 카타르 출신의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다. 그가 지난해 5월 아시아 몫 FIFA 집행위원 4선에 출마했을 때 정 부회장은 셰이크 살만 바레인축구협회장을 공개 지원했고, 이에 함맘은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의 목을 따버리겠다”며 저항한 바 있다. 이에 정 부회장은 “정신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반격했는데, 그 국지전에서 함맘은 살만을 2표차로 따돌렸다. 이에 정 부회장은 함맘과 대타협을 이뤄 ‘2022년 아시아 개최’라는 공동의 목표를 세웠으나 그 아시아가 ‘카타르’가 되는 결과에 이름으로써 정몽준 부회장으로서는 FIFA 내의 권력투쟁에서 수세에 몰린 국면이 되었다.

 

2011년, 정몽준 AFC 부회장은 5선 도전

아직 혈투는 끝나지 않았다. 내년 1월6일 AFC 총회가 열리는데 정몽준 부회장은 아시아 몫의 부회장에 5선 도전을 한다. 유력한 상대는 알리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 정 부회장은 한국이 탈락한 가운데 치러진 마지막 결선투표에서 카타르를 찍어 아시아 연대의 약속을 지킨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내년 1월에 함맘이 후세인 왕자 대신 정 부회장을 지지하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이를 위해 한 달 동안 아시아 축구계는 숨 막히는 혈전에 들어간다. 유력 대권후보군 중에서 점차 하위권으로 밀리고 개최지 선정에도 실패한 정몽준 부회장으로서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다. 요컨대 개최지 결정이란 이같은 FIFA 내부의 중층적인 권력관계에 의한 것이므로 ‘프레젠테이션 실력’이니 ‘연평도’니 ‘개정일’이니 하는 얘기는 죄다 귀담아 들을 게 못 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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