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축구인생’ 히딩크 감독 허진 대변인, 언제나 월드컵 개최지에서 일하고 싶다
조건: 영어능통. 수준높은 국제감각.
자격: 축구에 미친 남자.
임무: 한국 축구국가대표 언론담당.
외모: 상관없음.
허진씨는 위의 항목을 모두 통과한 사나이다.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했고 평생의 취미가 축구이니 최고의 적격자. 올해 초에 네덜란드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두달 전부터 대한축구협회에서 국가대표팀의 대 언론 창구를 맡고 있다. 네덜란드 근무 시절부터 히딩크와 안면 그는 최대한의 접촉을 원하는 기자들과 최소한의 노출을 원하는 선수단 사이에서 적정선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특히 언론은 히딩크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는 네덜란드 근무 시절 이미 히딩크와 안면이 있는 사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마디로 성격이 확실한 사람이지요. 의견이 안 맞으면 그 자리에서 표시를 하고 말아요. 뒤가 없어요.” 감독은 지금 휴가중. 항간에서는 지금이 어느 땐데 하면서 그가 ‘여유’를 부린다고 서운해한다. “그의 계약서에 명시된 정식 휴가”라며 허 담당관은 “한국축구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한 부담을 감독보다 더 크게 느끼는 이가 누구겠느냐”고 묻는다. 약한 팀과 싸워 쉽게 이기기보다는, 힘겹더라도 우리보다 강한 팀과 겨루며 기량을 늘리겠다고 한 대표팀의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허 담당관은 당부한다. 히딩크는 왜 한국말을 안 배우느냐, 김치를 먹을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주문은 16강 진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덧붙여 말했다. “그 전까지는 감독이 직접 받아야 하는 전화만 해도 하루에 수십통이었어요. 이번 경기전술은 뭐냐, 선수는 어떻게 쓸 거냐 등등 어떨 때는 꼭두새벽에도 전화를 해요.” 월드컵 이후라도 한국 축구발전을 위해서 국가대표팀 언론 담당관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한다. 국내 기자들에게 대표팀에 대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브리핑해주고, 월드컵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신기자들에게는 한국축구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즐거이 한다. 축구에 관한 외교채널을 그가 맡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소속은 여전히 외교부. 파견근무중이다. 공무원들은 승진에 지장이 될까봐 대개 파견근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데 (청와대 파견근무는 예외일 거다), 그는 덥석 받아들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축구 역사상 이보다 더 중요한 시기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고 싶어서’다. 조국의 축구발전을 위한다면 아낄 게 무에 있으랴. 그는 올해 외교업무 15년차를 맞는다. 그의 근무지는 축구공을 따라 간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당시, 독일에서 연수중이었다. 모은 돈을 몽땅 쏟아부어 독일 응원단에 묻혀 로마로 갔다. 1994년 미국월드컵, 현지에 있었고, 네덜란드와 벨기에 공동개최인 ‘유로2000’을 보려고 예멘 근무를 마치고 네덜란드로 자원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월드컵을 기다리며 서울에 있다. 가능하면 2006년 독일월드컵을 위해 다음 근무지를 독일로 소망하고 있다. 2010년 어디 있을지는 그도 모른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다음 개최지를 아직 발표하지 않았으니까. 에릭 칸토나 젤 좋아하는 축구광 그는 각 나라 선수의 이력과 특징, 각 클럽축구의 역사 등을 훤하게 꿰고 있다. 어지간한 시간을 경기장과 TV 앞에 바치지 않으면 얻기 힘든 지식들이었다. “외무고시 공부할 때 외국 나가면 축구를 많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게 사실입니다.” 그에게 축구는 무엇인가? “인생의 전부라면 심한 표현일 테고 한 절반 된다고 하면 맞는 말이겠지요.” 최근 한 이탈리아 국가 대표선수는 이렇게 말했다가 사회문제화되는 바람에 아주 죽을 뻔했다. 어떻게 된 인간이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닐 수 있느냐, 이거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고 배신당한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축구를 좋아했다. 외국생활을 하니 조기축구회 같은 활동을 할 수 없다. 어느 게임에서든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드. ‘정식선수’인 적은 없었지만 기량은 준프로급이라고 자평한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뛰지만 몸이 마음과 따로 논다고 투덜거린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라 카믄 암니꺼?” 진짜 알 수 있겠느냐고 다짐받듯 묻는다. 나도 알 만큼은 안다. ‘펠레!’ 그는 외교적으로 싱긋 웃더니 말한다. “나는 에릭 칸토나가 젤로 좋슴니더.” 프랑스 출신인 칸토나 선수가 영국 프로팀에서 뛰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이별을 슬퍼한 영국 팬들이 흘린 눈물로 도버해협이 넘치는 것을 나도 보았다. 그는 마라도나를 두 눈으로 “봤다”고 주장했다. 중학생 시절 일본에 있을 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온 그 신의 아이를 자기 눈으로 직접, 진짜, 정말 목격했다는 얘기다. “…” 그 말에 전혀 감동받지 않은 나를 놀라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그는 생각났다는 듯이 우리 축구문화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축구만큼 저변확대가 필요한 스포츠도 없습니다. 국민 모두가 지지해줘야 크는 거거든요. 국민들이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면 일단 노동시간이 줄어야 해요. 봉급쟁이들 대부분 토요일에도 오후 4시가 넘어야 퇴근하지요, 그것도 회식 안 걸려야 그렇잖아요. 주말에는 아이들 데리고 놀이터라도 갈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한민국 남자들 결혼해서 자기 부인과 아이와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어요? 삼성, 현대 축구클럽 만들지만 직원들 오래 붙들어놓으면 별 효과 없는 겁니다.” 주 5일제 근무해야 하는 이유 중에 ‘축구문화 육성’도 포함시켜야겠다. “브라질 국가대표 선수들은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혀요. 그 나라 국민들은 노란 유니폼 입은 국가대표가 경기장에서 뛸 때는 신이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요!” 자유로운 사고의 힘 한국외교부에서 ‘축구’ 하면 그의 이름이 바로 나온다. 대한민국 외교업무에 그의 축구는 어떤 도움을 주는가? “하하하…, 도움은 무슨… 그런데 남미쪽으로 가면 재미있어요. 그곳 외교관들은 환갑을 지난 대사들도 축구를 아주 잘해요. 축구를 알면 훨씬 친해지기가 쉽지요.” 스페인 근무하던 그의 선배 한 사람은 워낙 주위가 썰렁해서 주말마다 열심히 축구 공부를 했단다. 마침내 아는 척을 했더니 사람들이 “헤이, 아미고” 하면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정보 주고, 그리고 축구구경도 같이 가고. 국위선양이 따로 없다. “축구가 거기 있으니 축구를 좋아한다”는 그는 “축구경기장에 가면 인생의 모든 것이 보인다”고 사뭇 비장하게 말한다. 인간의 희로애락, 인류의 역사와 지혜, 용병술과 끈기 그런 것들이 응축되어 있는 장, “경기장에 가면 오히려 마음이 안정된다”고 고백한다. 아마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열정을 축구에 녹여 조금씩 조금씩 생의 자양분으로 삼는 지혜를 그는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부모님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세상에는 국·수·사·자 일제고사말고도 재미있는 일들이 하늘의 별만큼 많다는 것을 알았다. 축구는 열정의 덩어리이다. 외교관의 덕목은 침착, 중용, 신중이다. 이 두 선을 조화롭게 끌고온 비결은 아마 자유로운 사고의 힘일 것이다. 그는 요즘 나날이 즐겁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매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축구가 있는 한 즐거운 내 인생”이다.

허진씨는 위의 항목을 모두 통과한 사나이다.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했고 평생의 취미가 축구이니 최고의 적격자. 올해 초에 네덜란드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두달 전부터 대한축구협회에서 국가대표팀의 대 언론 창구를 맡고 있다. 네덜란드 근무 시절부터 히딩크와 안면 그는 최대한의 접촉을 원하는 기자들과 최소한의 노출을 원하는 선수단 사이에서 적정선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특히 언론은 히딩크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는 네덜란드 근무 시절 이미 히딩크와 안면이 있는 사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마디로 성격이 확실한 사람이지요. 의견이 안 맞으면 그 자리에서 표시를 하고 말아요. 뒤가 없어요.” 감독은 지금 휴가중. 항간에서는 지금이 어느 땐데 하면서 그가 ‘여유’를 부린다고 서운해한다. “그의 계약서에 명시된 정식 휴가”라며 허 담당관은 “한국축구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한 부담을 감독보다 더 크게 느끼는 이가 누구겠느냐”고 묻는다. 약한 팀과 싸워 쉽게 이기기보다는, 힘겹더라도 우리보다 강한 팀과 겨루며 기량을 늘리겠다고 한 대표팀의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허 담당관은 당부한다. 히딩크는 왜 한국말을 안 배우느냐, 김치를 먹을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주문은 16강 진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덧붙여 말했다. “그 전까지는 감독이 직접 받아야 하는 전화만 해도 하루에 수십통이었어요. 이번 경기전술은 뭐냐, 선수는 어떻게 쓸 거냐 등등 어떨 때는 꼭두새벽에도 전화를 해요.” 월드컵 이후라도 한국 축구발전을 위해서 국가대표팀 언론 담당관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한다. 국내 기자들에게 대표팀에 대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브리핑해주고, 월드컵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신기자들에게는 한국축구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즐거이 한다. 축구에 관한 외교채널을 그가 맡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소속은 여전히 외교부. 파견근무중이다. 공무원들은 승진에 지장이 될까봐 대개 파견근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데 (청와대 파견근무는 예외일 거다), 그는 덥석 받아들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축구 역사상 이보다 더 중요한 시기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고 싶어서’다. 조국의 축구발전을 위한다면 아낄 게 무에 있으랴. 그는 올해 외교업무 15년차를 맞는다. 그의 근무지는 축구공을 따라 간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당시, 독일에서 연수중이었다. 모은 돈을 몽땅 쏟아부어 독일 응원단에 묻혀 로마로 갔다. 1994년 미국월드컵, 현지에 있었고, 네덜란드와 벨기에 공동개최인 ‘유로2000’을 보려고 예멘 근무를 마치고 네덜란드로 자원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월드컵을 기다리며 서울에 있다. 가능하면 2006년 독일월드컵을 위해 다음 근무지를 독일로 소망하고 있다. 2010년 어디 있을지는 그도 모른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다음 개최지를 아직 발표하지 않았으니까. 에릭 칸토나 젤 좋아하는 축구광 그는 각 나라 선수의 이력과 특징, 각 클럽축구의 역사 등을 훤하게 꿰고 있다. 어지간한 시간을 경기장과 TV 앞에 바치지 않으면 얻기 힘든 지식들이었다. “외무고시 공부할 때 외국 나가면 축구를 많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게 사실입니다.” 그에게 축구는 무엇인가? “인생의 전부라면 심한 표현일 테고 한 절반 된다고 하면 맞는 말이겠지요.” 최근 한 이탈리아 국가 대표선수는 이렇게 말했다가 사회문제화되는 바람에 아주 죽을 뻔했다. 어떻게 된 인간이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닐 수 있느냐, 이거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고 배신당한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축구를 좋아했다. 외국생활을 하니 조기축구회 같은 활동을 할 수 없다. 어느 게임에서든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드. ‘정식선수’인 적은 없었지만 기량은 준프로급이라고 자평한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뛰지만 몸이 마음과 따로 논다고 투덜거린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라 카믄 암니꺼?” 진짜 알 수 있겠느냐고 다짐받듯 묻는다. 나도 알 만큼은 안다. ‘펠레!’ 그는 외교적으로 싱긋 웃더니 말한다. “나는 에릭 칸토나가 젤로 좋슴니더.” 프랑스 출신인 칸토나 선수가 영국 프로팀에서 뛰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이별을 슬퍼한 영국 팬들이 흘린 눈물로 도버해협이 넘치는 것을 나도 보았다. 그는 마라도나를 두 눈으로 “봤다”고 주장했다. 중학생 시절 일본에 있을 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온 그 신의 아이를 자기 눈으로 직접, 진짜, 정말 목격했다는 얘기다. “…” 그 말에 전혀 감동받지 않은 나를 놀라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그는 생각났다는 듯이 우리 축구문화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축구만큼 저변확대가 필요한 스포츠도 없습니다. 국민 모두가 지지해줘야 크는 거거든요. 국민들이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면 일단 노동시간이 줄어야 해요. 봉급쟁이들 대부분 토요일에도 오후 4시가 넘어야 퇴근하지요, 그것도 회식 안 걸려야 그렇잖아요. 주말에는 아이들 데리고 놀이터라도 갈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한민국 남자들 결혼해서 자기 부인과 아이와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어요? 삼성, 현대 축구클럽 만들지만 직원들 오래 붙들어놓으면 별 효과 없는 겁니다.” 주 5일제 근무해야 하는 이유 중에 ‘축구문화 육성’도 포함시켜야겠다. “브라질 국가대표 선수들은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혀요. 그 나라 국민들은 노란 유니폼 입은 국가대표가 경기장에서 뛸 때는 신이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요!” 자유로운 사고의 힘 한국외교부에서 ‘축구’ 하면 그의 이름이 바로 나온다. 대한민국 외교업무에 그의 축구는 어떤 도움을 주는가? “하하하…, 도움은 무슨… 그런데 남미쪽으로 가면 재미있어요. 그곳 외교관들은 환갑을 지난 대사들도 축구를 아주 잘해요. 축구를 알면 훨씬 친해지기가 쉽지요.” 스페인 근무하던 그의 선배 한 사람은 워낙 주위가 썰렁해서 주말마다 열심히 축구 공부를 했단다. 마침내 아는 척을 했더니 사람들이 “헤이, 아미고” 하면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정보 주고, 그리고 축구구경도 같이 가고. 국위선양이 따로 없다. “축구가 거기 있으니 축구를 좋아한다”는 그는 “축구경기장에 가면 인생의 모든 것이 보인다”고 사뭇 비장하게 말한다. 인간의 희로애락, 인류의 역사와 지혜, 용병술과 끈기 그런 것들이 응축되어 있는 장, “경기장에 가면 오히려 마음이 안정된다”고 고백한다. 아마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열정을 축구에 녹여 조금씩 조금씩 생의 자양분으로 삼는 지혜를 그는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부모님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세상에는 국·수·사·자 일제고사말고도 재미있는 일들이 하늘의 별만큼 많다는 것을 알았다. 축구는 열정의 덩어리이다. 외교관의 덕목은 침착, 중용, 신중이다. 이 두 선을 조화롭게 끌고온 비결은 아마 자유로운 사고의 힘일 것이다. 그는 요즘 나날이 즐겁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매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축구가 있는 한 즐거운 내 인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