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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모딜리아니, 진짜냐 가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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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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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엔 인정받지 못한 서른다섯 요절 작가… 진위논쟁 격렬하게 벌어지면서 감정위원회 양립

사진/ 모딜리아니, 1918.
미술품 거래는 곧 가짜와의 전쟁이다. 다른 문화 작품들과 달리 미술작품은 그 자체로 엄청난 재산이 되기 때문에 가짜 미술품은 늘 존재해왔다. 특히 인기좋은 작가의 작품일수록 가짜가 기승을 부린다. 피카소의 경우 피카소가 살아 있었던 당시에도 가짜가 존재했을 정도였다.

피카소도 마티스도 아닌 그가 왜…

전문가들이 아무리 꼼꼼히 검사를 한다고 해도 가짜를 판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정교한 가짜의 경우 세계적 전문가들도 상반된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치열한 진위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진위논쟁이 자주 벌어지고, 가짜 작품이 가장 많이 나도는 작가는 과연 누굴까? 피카소와 마티스처럼 그야말로 유명한 화가들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이들은 아니다. 바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다. 최근 몇년간 세계 미술계에서는 모딜리아니 작품의 진위여부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모딜리아니는 살아생전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서른다섯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화가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긴 얼굴, 긴 코, 긴 목 그리고 작은 입술, 아몬드 모양의 눈, 아래로 약간 처진 작은 어깨를 가진 인물묘사가 특징이다. 특히 그의 그림은 다른 작가들에 비해 등장인물의 얼굴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즈보로스키의 초상,1919.
모딜리아니는 한때 조각가를 꿈꿨지만 조각 작업에서 생기는 먼지 때문에 폐가 상한 뒤 화가로 방향을 틀어 독특한 회화세계를 일궜다. 조각적인 요소들을 2차원 공간인 캔버스의 평면 화면에 적용시켰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평면 조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모딜리아니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림이 거의 팔리지 않았고 그나마 팔린 것들도 굉장히 싼값에 거래됐다. 그런 그가 이제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가 됐고, 그의 작품들은 한점에 최소 수십억원에 팔리고 있다.

문제는 현재 그의 그림이라고 알려진 작품 가운데 상당수가 가짜일 것으로 추정되고, 또 계속해서 가짜 모딜리아니 그림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출판된 모딜리아니에 관한 수많은 서적이나 카탈로그에는 진짜 모딜리아니 작품이 아님에도 버젓이 그의 작품인 것처럼 화보로 실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렇다면 왜 피카소도, 마티스도 아닌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이 유독 가짜가 많은 것일까.

아마도 긴 얼굴, 긴 코, 아몬드 눈을 가진 모딜리아니 작품 속 인물들이 다른 작가들 작품에 비해 표면적으로 모방하기가 쉽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모딜리아니가 살아 있을 때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 데다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숨지는 바람에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모딜리아니 그림을 주로 팔았던 화상인 레오폴드 즈보로스키가 무절제하게 가짜 모딜리아니 작품을 만들어낸 것도 결정적인 이유였다.

사진/ 신랑신부, 1915.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그가 죽은 직후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림값이 수직상승했다. 그러다보니 당시 유일하게 모딜리아니 작품을 취급했던 즈보로스키는 가짜 모딜리아니 작품을 만들어내는 한편 모딜리아니가 생전에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작품을 다른 화가를 시켜 완성한 뒤 시장에 마구 내다팔았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미술시장에 팔린 작품의 수가 워낙 많았고, 오랜 세월이 지나자 그 작품들을 일일이 가려내기가 결코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세계적인 모딜리아니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면서 요즘 모딜리아니를 둘러싼 논쟁이 이례적으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모딜리아니 감정위원회까지 등장했다. 한 작가의 작품 감정위원회가 둘로 양분된 것은 미술계에서는 드문 일이어서 이번 모딜리아니 파동은 과연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탐험가의 정신만이 작품을 볼 수 있다”

논란의 시작은 세계적 모딜리아니 작품 판별가이자 파리의 룩셈부르크미술관 관장인 마크 레스텔리니가 역시 모딜리아니 전문가이자 프랑스 오를레앙 미술대학 교수인 크리스티앙 파리소트를 공격하면서 촉발됐다. 파리소트 교수가 1996년에 쓴 모딜리아니 책에 실린 몇개의 화보가 가짜 작품이라고 판별한 것이다. 이에 맞서 파리소트는 지금까지 행해왔던 모딜리아니 작품 감정 판결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모든 작품을 다시 감정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 파리소트는 기존 모딜리아니 작품 감정위원회와는 다른 새로운 감정위원회를 결성해 현재 세계 미술계와 미술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누드, 1917.
이처럼 모딜리아니 그림의 진위논쟁이 치열해지면서 난처해진 곳은 바로 미술품을 거래하는 중개인들이다. 아직 어느 쪽의 주장이 진실인지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 감정사들 못지않은 감정능력을 지니고 있는 소더비와 크리스티 두 경매회사는 자신들의 감정능력을 믿고 독자적인 감정으로 판단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대처하고 있다.

원래 미술계에서는 “미술작품에 관한 자료파일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그 작품이 진품일 가능성이 적다”는 농담이 있어왔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이와 달리 너무 자료가 없어 문제가 되는 경우라서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짜 그림들은 모두 적발될 수 있을까. 36년에 걸쳐 프랑스 인상파의 거장 모네에 관한 책을 쓴 바 있는 다니엘 빌덴스타인은 그의 책 서문에 “탐험가의 대담한 정신만이 진정한 미술작품의 가치를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즉 미술작품에서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사람마다 이 힘이 다르고, 또한 누구의 안목이 정확한지 알기 힘들다는 데 있다. 그래서 가짜 논쟁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모딜리아니 파동 역시 그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송민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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