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왼쪽)와 백현진.LIG아트홀 제공
불이 꺼지고 멤버들의 요청으로 박수를 치지 말아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공연은 시작됐다. 공연은 한 편의 연극처럼 보였다. 영화배우 백종학이 먼저 무대에 올라 “뭉개진다”는 말을 반복하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이 ‘뭉개진다’는 표현은 어어부를 드러내는 불편함, 또는 불협화음과 같은 말들과 일맥상통했다. 그리고 이어 녹음된 문성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탐정 나그네의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어어부는 이 일기의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변칙적인 음악과 무대 세팅을 보여주는 어어부답게 무대는 기존 밴드들이 갖는 구성과는 달랐다. 드럼을 대신해 다양한 타악기들이 자리했고, 기타 대신 피아노나 클라리넷이 주 멜로디를 이끌었다. 가끔씩 장영규는 베이스 기타를 놓은 채 키보드 자리로 가 아예 베이스 기타와 드럼을 배제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공연은 앨범의 수록곡 순서 그대로 진행됐다. 첫 곡으로 들려준 <빙판과 절벽>과 두 번째 곡인 <마음과 뇌>를 연주할 때 백현진은 갖가지 포즈가 동반된 우스꽝스러운 액션을 선보였는데, 그 모습이 (요즘 인터넷 용어로) ‘병신 같지만 멋있었다’(이는 철저히 계획된 연출로 보였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 동작 하나하나도 미리 준비된 동작처럼 보였다. 이런 모습들은 이 공연을 더욱 단순한 음악 공연이 아닌 행위예술이 포함된 한 편의 연극처럼 보이게 했다. 소설인 노래 가사, 번뜩이는 문장 백현진 특유의 위악적인 목소리 역시 여전했는데, 그의 노래(?)는 이제 어느 경지에 올라섰다. 비록 그가 톰 웨이츠의 영향 아래에서 시작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곡의 해석이나 표현력, 그리고 <역지사지>에서 짧게 들려준 허밍은 이제 백현진에서 시작하는 또 하나의 계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품게 만들었다. 작사가로서 백현진의 장점도 자연스레 드러났다. 그처럼 ‘이야기’를 노래로 만드는 이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래 가사가 운문이라면 그의 가사는 산문이고, 대부분의 노래 가사가 시라면 그의 가사는 소설이다. 그래서 그만이 “빵과 우유값 1700원”이라는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가사에 담을 수 있다. 그 와중에 “나는 바람을 마구 가르며/ 예쁜 여자를 귀가시키고 있다/ 나는 바람을 마구 가르며/ 예쁜 여자를 떠나보내고 있다”(<대리 알바>)와 같은 번뜩이는 문장을 들려주기도 한다. 음악은 기존 어어부의 색깔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록 세션을 기반으로 다소 난해한 사운드를 들려줬던 2집 <개, 럭키스타>와 비교적 듣기 편한 음악을 담고 있던 3집 <21c 뉴 헤어(New Hair)>의 절충처럼 들리기도 했다. 프리 재즈, 혹은 아방가르드의 끝을 보여주는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다가도 <역지사지>나 <돈>과 같은 대중친화적(?)인 노래를 들려주기도 한다. 현악기 우쿨렐레가 연주를 주도한 <돈>은 심지어 아기자기하게까지 들렸다. 불편하지만 계속 듣게 만드는 어어부의 마력은 새 앨범에서도 계속 이어질 듯하다. 이 모두는 어어부 음악의 핵심인 장영규의 공이다. 다수의 영화음악과 연극, 현대음악 등의 작업을 하면서 얻게 된 노하우를 이번 앨범에 더욱 세심하게 담아낸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공연장 옆 대형 TV에서 야구 연장전 중계를 하고 있었다. 11회 말 투아웃 만루, 삼성의 공격. 손시헌의 끝내기 실책으로 두산이 지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내 머릿속에는 손시헌이 실책하는 모습보다는 백현진이 무대에서 춤을 추고 마이크 스탠드를 걷어차는 모습이 더 많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들려준, 가장 기괴한 장송곡이 될 듯한 12월26일의 일기 <의뢰인 이창숙씨>가 자꾸 맴돌았다. 뼈아픈 패배를 잊기 위한 도피였을까? 천만에. 그건 인상적인 공연을 보고 난 뒤에 따라붙는 기분 좋은 여운 때문이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