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0월호
세계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의 얇디얇은 경계를 ‘힘 들어간 프랑스 경찰’ 기사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사회·경제 문제를 은폐하려고 치안 문제를 부각시키다 끝내 군사화된 개입 방식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다. 총기에 대해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음향대포’의 안전 검사가 필요없다”고 말하는 조현오 경찰청장은 군사적으로 시민을 다룬다. 규율 준수는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다. 일자리조차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 기대는 배반당한다. 게다가 경찰의 군사적 개입이 더해지면, 시민들은 더 큰 일탈을 저지를 뿐이다. 일생을 통틀어 쇠락만 거듭해온 프랑스 농부의 일대기는 한국 ‘채솟값의 잔혹사’와 함께 읽어야 한다. 마르틴 뵐라르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은 “곡물가의 급등은 자연재해보다 투기(자본)로 인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고 했는데, 세 기사를 함께 읽으면 붕괴하는 농업의 세계적 동시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간을 굶주리게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언론계에 관심이 있다면, 꼭 챙겨야 할 기사가 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크리스텐센 교수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문서를 공개해 화제가 된 ‘위키리크스’를 분석했다. 그는 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유투브 등 이른바 ‘소셜 미디어’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비판한다. 현실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민족국가 단위의 법 질서고, 이에 대항하는 (기존) 저널리즘이다. 위키리크스의 성공은 법 체계와 저널리즘 구조를 현명하게 활용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정보)기술이 아니라, 국가와 (기존) 언론에 주목해야 자유의 출구가 생긴다. 한국호 특집은 한국 사회의 불안 구조 마침 세르주 알리미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은 (기존) 저널리즘에 대한 변함 없는 지지를 당부한다. 그는 ‘우리의 투쟁’이라는 글에서 “독자와 기부자 등의 도움으로 올해 비로소 손익 균형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결과 “독립성과 독창성, (그리고) 대다수 기사와 차별화된 우리만의 기사를 선물로 주게 됐다”고 한다. 그 선물을 한국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도 함께 전한다. 특권층·중산층·빈곤층을 가로지르는 한국 사회의 ‘불안 구조’를 분석한 한국호 특집기사는 바로 ‘우리만의 기사’다. 안수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