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이 도입한 시스템은 한국 축구에 뿌리를 내려 청소년에게 전해질까. 지난 4월28일 인천에서 열린 행사에서 인천디자인고 선수들과 만난 히딩크. 사진 연합 하사헌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결별 소식 역시 ‘아름다운 마무리’와는 거리가 먼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주의 소식들. 서울의 한 고교 야구부 감독과 담당 부장교사가 횡령, 촌지, 성접대에 휘말리는 낯 뜨거운 뉴스가 전해졌고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선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48.0%가 운동을 시작한 뒤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얼핏 화려해 보이는 우리 스포츠 문화의 이면은 여전히 어두컴컴한 상태인 것이다. 지도자는 죽어서 시스템을 남긴다 도대체 ‘4강 신화’의 히딩크 감독이 남긴 메시지는 무엇이었던가. 그는 시스템을 강조했다. 그리고 적어도 그의 재임 기간에 시스템에 의한 훈련과 실전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가 부임한 뒤 가장 먼저 선수단의 대화 문화를 독려한 것은 잘 알려진 일. 식사 시간에 선후배가 서로 섞여서 밥을 먹도록 자리를 배치했고 누구나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라고 했다. 훈련과 실전에서도 대화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 정도라면 명성 높은 감독의 독특한 캐릭터나 스타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대화는 소통의 한 방식이지 소통 그 자체는 아니다. 만약 대화만 앞세운다면 대단히 인자하지만 천성적으로 과묵한 감독은 소통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비칠 것이다. 그러니까 감독 개인의 캐릭터와 스타일로 소통이니 부재니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나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혹은 성남 일화의 신태용 감독 등이 수시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상명하복의 예전 양상보다는 훨씬 아름답고 권장할 만한 덕목이지만, 대화 그 자체로 소통이 이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시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예의 ‘히딩크 효과’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선수들과 부지런히 대화만 나누다가 느닷없이 신화를 창조하고 훌쩍 떠난 게 아니다. 그는 혼자서 동아시아에 오지 않고 유럽의 선진 축구 문화, 그 시스템을 가지고 들어왔다. 기존의 코치진에 더해 전력분석관, 피지컬트레이너, 언론담당관 등이 그것이다. 각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들이 이 시스템 속에서 저마다의 지식과 경륜으로 의견을 제시하면 히딩크 감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반드시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핌 베어벡 코치는 세부 훈련 프로그램을 모두 기획했을 뿐만 아니라 예비선발 명단 및 특히 경기 중 교체선수 판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히딩크는 그저 핌 베어벡 개인을 믿은 게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정확한 분석과 판단을 존중하는, 바로 그 시스템을 신뢰했던 것이다. 이것이 구축되면 그 당사자가 퇴임을 해도 시스템이 작동하게 된다. 여러 명의 감독이 경질되는 과정에서 축구대표팀의 시스템이 실종되는가 싶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은 그것을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했다. 레이먼드 베르하이옌 피지컬 트레이너가 단적인 예. ‘저승사자’로 불리는 이 체력 담당 코치는 대표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을 주도면밀하게 체크했고 허정무 감독은 23명의 최종 엔트리 선발과 11명의 실전 베스트 일레븐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삼았다. 시스템 없이 소통 없다 이 지면의 연재를 마치는 이 순간에 나는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우리 스포츠 문화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필사적으로 강조하고 싶다. 그 시스템은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각 종목의 과학적 지도 방침이 있는가 하면 올해 초 국회 교과위에 상정되었다가 물거품이 된 ‘학교체육진흥법’(공부하는 학생선수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을 어떤 방식으로든 중요한 의제로 재설정하는 것, 이에 기반해 스포츠 선진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프랑스·일본 등)이 정교하게 만든 폭력 및 성폭력 방지 방안(폭력에 대한 기본 방지책은 물론 원정경기 떠날 때 버스의 좌석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같은 세부 사항까지 적시하는)을 마련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구현 없이 명장이니 덕장이니 지장이니 하면서 소통을 언급하는 것은 공허한 캐릭터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