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라현에 위치한 사찰 호류지의 금당. 고구려 승려 담징의 금당벽화로 유명하다.
한국어 표지판 ‘사슴 돌진 주의’ 궁 복원 현장 뒤로 이어지는 것은 일종의 사찰 순례다. 일본 전체의 불교를 관할하는 사찰이었다는 도다이지(東大寺)부터 담징의 금당벽화가 있는 호류지(法隆寺)까지 차로는 5분 거리, 걸어서는 30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사찰들이다. 거대한 불상과 오래된 목조건축이 인상적이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찾겠다면 목조좌상과 담징의 금당벽화가 단연 으뜸이다. 고후쿠지(興福寺) 국보관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목조좌상들은 일본 역사에 등장하는 유명 승려들을 형상화한 것으로 12세기 전후에 만들어졌다. 목재 조각의 섬세함이 살아 있는 일본 국보다. 재미있는 것은 인자함이나 여유로운 표정이 없다는 것이다. 승려 개인의 인생까지 담아놓은 듯한 표정은 “솔직히 말해서 수행은 쉽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고통스러운 표정은 오히려 익살스럽기도 하다. 그 생생함에 관람객은 발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렀다. 사찰 탐방의 하이라이트였던 담징의 금당벽화도 인상적이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 물론 호류지 금당이 아닌 박물관에서 만난 것은 아쉬웠지만. 일본 최초의 사찰 아스카지(飛鳥寺)는 다른 절과 달리 소박하다. 호랑이부터 ‘공부의 신’까지 각종 숭배물이 등장하는 일본 사찰의 요란함을 진정시키는 것은 절의 소박함이다. 나라의 사찰을 돌면서 공통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나는 사슴이고, 나머지는 쇼토쿠 태자다. 나라에서 사슴은 3천 마리가 방목되고 있다. 모두 시내를 활보한다. 주의할 점은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매료돼 먹을 것을 건네주면 순식간에 사슴 떼가 몰려든다는 것이다. 나라현에 아주 드문 한국어 안내판 가운데 ‘사슴 돌진 주의’가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다. 옷자락을 물거나 엉덩이를 살짝 들이받으면서 놀라게 한다. 몰려든 사슴들 사이로 ‘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우물 같은 눈망울로 똥을 누는 사슴도 볼 수 있다. 저 많은 사슴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해 가만히 살펴보면, 있는 듯 없는 듯 길가에 앉아 있던 청소부가 소리 없이 다가와 쓱쓱 똥을 담아간다. “나라 사슴은 원래 똥을 싸지 않아요”라고 말할 듯 담담한 표정이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차가 서행할 정도로 거리의 사슴은 존중받는다. 예로부터 사슴은 일본에서 신을 맞이하는 매개로 여겨왔다. 이번 헤이조 천도 1300주년 행사의 마스코트인 ‘덴도쿤’의 머리에도 사슴뿔이 달려 있다. 물론 길거리 음식에 기웃거리는 사슴은 가차 없이 쫓겨난다. 사슴 못지않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은 ‘쇼토쿠 태자’라는 이름이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에서 국가의 기틀을 잡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으며, 두 살 때 천자문을 뗐습니다. 벌어지는 전쟁마다 죄다 승리를 거뒀어요. 게다가 얼마나 효자인지 열일곱 살 때는 부모를 위해 등불을 들고 거리를 돌며 공양을 드렸답니다.” 들어보면 황당한 전설이지만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백제나 신라도 개구리를 타고 강을 건너는 유의 영웅신화는 다 있지 않은가. 규모와 속도의 영향을 비켜간 마을, 나라마치 사찰 순례가 주목적이 아니라 한국인 관광객의 손을 타지 않은 일본 그 자체를 보고 싶다면 ‘나라마치’라는 전통 마을 방문은 필수다. 전통 마을이라고 해도 우리로 말하면 서울 종로구의 북촌 한옥마을 정도다. 사찰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시내에 자리잡고 있다. 안드로이드 로봇이 떡방아를 찧는 인위적인 풍경 대신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가 “비켜!”라고 소리치는 생생함을 만날 수 있다.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영감을 받았다는, 중정(중간 정원)을 가진 일본의 전통 가옥에 직접 방문할 수도 있다. 중정 한쪽에서 건너편 안방을 바라보면 공간을 미시적으로 분할해 미를 덧입힌 그들의 지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정에 앉아 언제부턴가 규모와 속도에 집착하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면 덤으로 얻는 수확이다. 나라(일본)=글·사진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