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유럽리그 한국축구 기상도

365
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크게 작게

설기현 ‘맑음’, 안정환 ‘흐림’, 이동국 ‘비’… 일본에 비해 초라한 몸값

사진/ 이적료가 대폭 깎인 안정환. 부산 아이콘스는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본인은 페루자 잔류를 고집하고 있다.(news.photoro.com)
설기현 ‘맑음’, 안정환 ‘흐림’, 이동국 ‘비’. 2001∼2002시즌을 앞두고 재계약 및 이적을 모색하고 있는 유럽진출 한국스타 3총사의 엇갈린 기상도다.

‘설바우도’ 설기현(22)은 벨기에 주필러리그 로열 앤트워프에서 우승팀 안더레흐트로 이적하는데 합의해 얼굴이 활짝 폈다. 한국 선수로는 지난해 이탈리아 세리에A에 첫발을 내디뎠던 ‘테리우스’ 안정환(25)은 고생 끝에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 결과 페루자구단으로부터 재계약의 입장을 통보받았지만 이적료가 약속보다 절반이 깎여 세리에A 무대 연착륙에 구름이 드리워 있다. ‘라이언 킹’ 이동국(22)은 아예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과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돼 비바람 속에 자신을 보듬어줄 새 우산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다. 더구나 일본이 2001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으로 한국 선수들보다 월등히 높게 매겨진 몸값으로 유럽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들이 이적협상에서 겪고 있는 애로는 더욱 커 보인다.

안정환 ‘바겐세일’


통상 이적료로 따지는 몸값부터 살펴보자. 세리에A 챔피언 AS로마에서 파르마와 잉글랜드 아스날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나카타 히데토시의 이적료는 2650만달러까지 치솟아 있다. 98년 330만달러의 이적료로 페루자에 입단했다가 지난해 1600만달러로 로마로 건너간 것과 비교하면 또다시 엄청난 상승이다. 잉글랜드의 볼튼과 페루자구단은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단 1실점을 기록한 GK 가와구치 요시가쓰(요코하마 마리노스)에게 300만달러선으로 손짓을 하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입단에 합의한 오노 신지(우라와 레즈)의 이적료는 400만달러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병역문제로 장기계약을 할 수 없어 몸값이 실력보다 낮게 평가된다. 우선 안정환의 몸값부터 살펴보자. 이탈리아의 <투토 스포르트>지는 시즌이 끝난 뒤 세리에A 전 선수들의 적정 몸값을 발표했다. 안정환은 40억리라, 즉 200만달러로 평가됐다. 팀의 주전 공격수 사우다티(180억리라), 브리자스(110억리라)보다는 크게 낮지만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의 주전 윙백으로 활약한 팀 동료 제 마리아(25억리라)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안정환은 바로 이 몸값 때문에 이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세리에A에서 지난 시즌 15경기에 출전해 4골(1도움)을 기록한 안정환에 대해 페루자구단이 제의한 이적료는 100만달러. 연봉은 40만달러부터 매년 5만달러씩 올라가는 조건이다. 이는 지난해 7월 부산 아이콘스에서 페루자로 옮기면서 맺은 계약조건보다 이적료 110만달러가 적다. 지난해 페루자구단은 우선 1년 임대로 안정환을 데려다 쓰면서 임대료 40만달러, 연봉 35만달러를 지급했다. 그리고 1년 임대가 끝나는 시점에 완전이적을 시키려면 페루자구단이 210만달러의 이적료를 내야 한다는 옵션을 달았다.

결국 110만달러라는 차액 탓에 부산 구단은 “헐값에 팔 수 없다”며 안정환의 페루자 완전이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6월18일 안정환의 에이전트인 안종복 (주)이플레이어 대표와 만난 곽동원 부산단장은 “100만달러 안은 당초 계약과 다르고 최근 페루자가 제안했다는 일본의 GK 가와구치의 이적료 300만달러에 비해서 지나치게 헐값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구단이 직접 유럽 내 제3의 클럽으로의 이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안종복 대표는 “일본 선수들의 이적료가 높은 것은 유니폼, 관광상품 판매 등 마케팅 수익이 크기 때문”이라며 “재정형편이 취약한 페루자구단으로선 이적료 100만달러에다 연봉 40만달러, 그리고 세금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200만달러를 부담하는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결국 부산과의 담판은 결렬됐다.

안정환은 ‘바겐세일’에 개의치 않고 페루자에 남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나타내고 있어 부산구단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 20일 귀국한 그는 “초반에 8개월 동안 못 뛴 것은 그만큼 이탈리아 무대에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방증이다. 페루자는 구단 구조나 전술이나 매우 독특한 팀이다. 또다른 팀에 가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 이왕 적응했으니 부산구단이 선처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적문제가 매듭지어질 때까지 이혜원(22)씨와의 결혼은 물론 공식행사 참가 등 모든 일정을 미뤄놓고 있을 만큼 페루자 잔류의지가 강하다.

부산구단은 구단의 재산인 선수를 헐값에 팔 수 없다는 현실론과 월드컵에 대비한 우수선수 경기력 향상이라는 명분론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페루자와의 계약기간은 6월30일이 만료다. 이날까지 이적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안정환은 지난해 작성된 조건대로 국내프로축구선수 최고 연봉(현재 김도훈 3억3500만원)으로 부산에 복귀해야 한다.

입단테스트 관문, 괴로운 이동국

사진/ 브레멘과의 재계약이 무산된 이동국. 유럽에 남으려면 입단테스트를 받는 길밖에 없다.(news.photoro.com)
만약 안정환이 복귀를 거부한다면 부산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임의탈퇴선수로 등록해 30일 동안 자격을 정지시킨 채 설득할 수 있다. 또 부산이 ‘뜨거운 감자’로 전력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할 때는 해외구단이나 국내의 다른 팀으로 이적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유럽에 어렵게 진출한 선수를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 불러들인다는 모양새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부산구단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동국은 안정환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이동국은 지난 1월 임대료와 연봉 각 10만달러씩의 조건으로 베르더 브레멘으로 6개월 임대됐다. 그러나 지난 시즌 7게임에 출전해 한골도 신고하지 못했다. 그 ‘실적’ 때문이라도 팀 잔류는 불투명했다. 더구나 지난 22일 알롭스 단장이 등 통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동국이 월드컵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재계약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발표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는 브레멘의 당초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6월 초 브레멘은 임대료 20만달러, 연봉 30만달러에 1년 재임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포항구단은 6개월만 연장하자고 수정제의했고, 브레멘구단은 반년 정도로는 이동국에게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2∼3년 계약해도 투자가치를 뽑기 어려운 데 교체멤버 정도로 기용할 임대선수를 1년도 아니고 반년밖에 쓰지 못한다면 ‘자선(?)’밖에 안 된다는 냉엄한 현실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제 이동국은 유럽에 남기 위해선 그토록 받기 꺼려 하던 입단테스트 관문과 맞서야 한다. 포항구단은 그동안 타진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구단들이 입단테스트를 요구하는 바람에 브레멘 잔류카드를 택했으나 이제는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는 길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일단 마음을 비우면 이동국을 잘 아는 분데스리가의 2부팀에서 주전으로 뛰며 활로를 찾을 수도 있다.

설기현, 빅리그의 꿈을 찾아

사진/ 설기현은 벨기에 최고 명문클럽 이적에 합의하며 빅리그 진압의 교두보를 마련했다.(news.photoro.com)
설기현은 벨기에 최고 명문클럽인 안더레흐트로의 이적합의로 빅리그 진입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로열 앤트워프에서 데뷔 시즌 27게임에 출전해 팀내 최다골인 11골을 넣어 벨기에리그 여러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중 그를 잘 보살펴준 반에이커 감독이 리르스로 옮기면서 “같이 가자”고 제의해 리르스행이 유력했지만, 영국의 협상 대행사인 KAM의 교섭으로 지난 시즌 우승팀인 안더레흐트가 막판에 뛰어들어 파격적인 대우로 설기현을 붙잡았다.

이적료 75만달러에 연봉 25만달러. 앤트워프에서 첫해 받은 대우(이적료 25만달러, 연봉 10만달러)나 리르스의 영입조건(이적료 45만달러, 연봉 15만달러)보다 월등한 조건이다. 6월 말 안더레흐트와 정식 사인에 앞서 계약기간을 2∼3년으로 했다. 하지만 1년 뒤 이적료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지 이적할 수 있다는 옵션을 넣었다. 아무리 소속팀이 리그 챔피언이라도 설기현의 목표가 벨기에 무대는 아닌 탓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빅리그로 진출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유럽에서의 ‘개근’ 출장을 대표팀 발탁의 제1요건으로 삼는 히딩크 감독의 용병전략에 딱 맞는 선수로 꼽히는 설기현. 이번 시즌 이적팀인 안더레흐트가 유럽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기 때문에 자신의 진가를 유럽 전역에 알릴 수 있는 기회까지 잡았다.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이 80년대 유럽축구연맹(UEFA)컵을 두 차례 제패하면서 ‘차붐’의 명성을 유럽대륙에 알릴 전례가 있다. 그도 지금 그 꿈을 꾸고 있다.

김한석/ 스포츠서울 축구팀 기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