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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검사는 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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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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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지능 등 소인검사 과학적 근거 논란… 유전자 발현은 복잡한 상호작용의 산물

사진/ “당신의 유전자로 천생배필을 만날 수 있다.” 유전자분석회사는 다양한 유전자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이정용 기자)
최근 인터넷에서는 심심치 않게 유전자검사를 권유하는 바이오벤처 업체들의 광고를 접할 수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어떤 유전자 소양이 있을까? 요즘 들어 갑자기 늘어난 체중이 걱정되는 엄마. 작심삼일! 항상 금연계획만 거창한 아빠는 혹시 중독성? 남보다 지능이 뛰어난 게 분명해보이는 똘망똘망 우리 아이. 치매가 걱정스러운 노부모님까지 간단한 유전자검사 한번은 어떨까요? 유전자검사. 바로 생활 속에 있습니다….” 얼마 전 한 바이오벤처 업체가 5월 가정의 말을 맞이해 유전자검사 이벤트를 홍보한 글이다. 이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일반인들이 관심을 끌 만한 비만, 중독성, 지능, 치매를 한번의 유전자검사를 통해 모두 알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 결혼정보 회사에서는 이런 광고문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본 시스템은 DNA분석 전문회사와 제휴해서 자신의 DNA를 분석하여 자신과 어울리는 최적의 이성을 찾아드리는 첨단 매칭 서비스입니다. 회원들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DNA검사를 하면 회원이 가진 체력, 성격, 지능, 질병 등의 유전자에 대한 정보의 확인이 가능한데… DNA정보를 활용,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본인에게 적합한 이성을 찾도록 커플 조화도 분석이 가능한 것 이외에….” 이 글은 질병에 대한 정보를 비롯해서 체력, 성격, 지능과 같은 이른바 질병 외 특성에 대한 정보도 DNA분석을 통해 알 수 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이 정보를 기초로 천생배필을 찾을 수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구와 검사의 구분이 필요


한 시민단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현재 약 450여개에 이르는 바이오벤처 업체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약 13개 업체가 각종 유전자검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검사에는 질병 관련 유전자검사와 질병 외 특성을 검사하는 이른바 소인검사 그리고 친자확인 등의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식별 검사가 있다. 질병 관련 검사도 아직까지 질병에서 유전적 요인이 차지하는 역할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사의 유용성과 연관해서 많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소인검사이다. 현재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소인검사는 체력, 호기심, 신장(롱다리), 장수, 비만, 인성, 지능, 적성, 중독(알코올, 골초) 등 많은 항목들을 포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업체들은 어떤 근거로 이런 검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사진/ 유전자검사로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긴 힘들다. 한 연구원이 유전자 샘플을 검사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지난 6월8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마련한 ‘유전자검사와 유전정보 이용규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바이오벤처쪽의 토론자도 참석해서 유전자검사의 근거와 유용성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바이오벤처 업체들은 이러한 검사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연구를 계속하면 바이오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업체쪽이 제시한 과학적 근거를 둘러싸고 바이오벤처의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전문가들은 큰 이견을 드러냈다.

이날 논란이 된 문제는 먼저 벤처쪽이 일부 외국 과학잡지에 실린 소인 유전자연구를 근거로 제기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에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많은 연구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음은 연구와 검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의협쪽은 설령 유전자와 소인의 연관성이 부분적으로 밝혀졌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당장 보편적인 검사로 활용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가령 키와 관계되는 유전자라고 선전하고 있는 이른바 롱다리유전자는 왜소증(난장이)을 일으키는 터너증후군에 관여하는 유전자이다. 따라서 이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아이의 미래 키가 어느 정도 될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체력유전자라고 이야기되는 유전자는 순환기의 혈압조절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이다. 물론 이 유전자가 고협압이나 운동 적응력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유전자의 유무를 통해 그 사람의 미래 체력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능, 장수, 비만 등의 특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연구는 그러한 특성들과 유전적 차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초보적인 연구에 지나지 않으며, 논문에서 이러한 연구결과를 곧바로 일반인들에 대한 검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연구자는 아무도 없다.

지난 6월20일 <사이언스데일리>라는 과학 웹진에는 “당신은 롤러코스터를 즐겨 탑니까? 아니면 두려워합니까? 거기에는 여러분의 유전자가 관계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이 기사가 근거로 삼은 <미국심리학회 저널>에 실린 논문은 336쌍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특정한 성향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부분적으로 유전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다룬 연구이다. 제임스 올슨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은 워낙 깊이 연관되어 있기에 유전적 요인을 완전히 분리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게다가 유전적 요인이 결코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유전적 요인은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현재 일부 바이오벤처 업체들이 광고하고 있는 키, 지능, 체력, 성격 등의 특성은 거기에 유전자가 관여하는지 여부에 대해 이제 막 기초적인 연구가 시작되고 있는 수준에 있을 뿐이다. 지난 2월 완성된 게놈프로젝트는 유전자의 숫자가 대략 3만개 정도라는 사실을 알아냈을 뿐, 아직 그 유전자들의 기능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더구나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설령 앞으로 유전자의 기능이 알려진다 하더라도 키나 지능과 같은 상위의 특성과 직접 연관되는 개별, 혹은 소수의 유전자를 가려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유전자의 발현은 수많은 유전자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환경과의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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