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자이언트〉와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은 서울 강남 개발사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반추하는 닮은꼴 작품이다. 과거가 쌓은 폐허 더미에서 허덕이는 인간 군상들이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SBS·창비 제공
강남 개발사는 김진과 조필연 같은 ‘자이언트’들로부터 시작된 강남 카르텔의 역사였고, <강남몽>과 <자이언트>는 이 카르텔의 형성 과정을 그린다. 군인 출신 정치가는 개발을 빌미로 정치자금을 모으고, 기업가는 정경유착과 담합으로 부를 축적하며, 깡패들은 정치가와 자본가의 골칫거리를 ‘용역’하며 강남의 유흥업소를 소유한다. 하지만 황석영은 이 폭력과 부패를 먹고 자란 거인들의 카르텔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누군가의 평전을 쓰듯 담담한 문체로 강남의 거인들에 대해 서술한다. 몇 개의 챕터로 나눠져 짧게 서술된 이 ‘강남 거인’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그들에 대한 선악 판단이나 분노를 요구하지 않는다. 평가해야 할 것은 그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 시대의 모습이다. 김진이 부정부패로 쌓은 대성백화점(실제의 삼풍백화점)은 붕괴됐다. 그건 <자이언트>에서 이강모가 조필연에게 “당신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강남이) 좀더 사람 살 만한 곳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조필연 같은 자가 정치자금을 끌어모으지 않았더라면, 대성백화점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이언트>는 이 개발 시대에 자이언트가 되려다 괴물이 돼버린 인간들 개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황태섭은 애초에 좋은 자재를 써서 좋은 집을 지으려는 건설업자였다. 하지만 그는 건설 자금 때문에 자신의 친구가 조필연에게 죽는 것을 묵인했고, 조필연과 유착해 회사를 키운다. 아버지가 죽은 이유를 모른 채 황태섭에게 길러져 건설 수주를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이강모도 마찬가지다. 황태섭의 말대로 “세상은 진흙탕”이고, 성공하려면 “진흙을 묻혀야” 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조필연에게 접근했지만, 점점 더 조필연처럼 폭력에 무감각한 인간으로 변하는 이성모(박상민)는 그 시대의 인간들이 어떻게 도덕을 버렸는지 보여준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착했던 이강모와 이성모의 아버지는 죽고, 형제는 탐욕스러운 아버지들 밑에서 자란다. 그때부터 그들의, 우리의 역사는 뒤틀렸다. 그러나 <자이언트>에서 이강모는 결국 ‘착한 기업가’가 된다. 그는 가족을 지키려는 따뜻한 마음을 지키며 그 자신을 괴물로 만들지 않았고, 2010년에 “좋은 건물을 짓는” 기업가가 된다. 이는 <강남몽>과 정반대의 결론이다. <강남몽>에서 강남 아파트 단지의 파출부를 하는 김점순은 부유한 사람들 중 행복한 가족을 유지하는 경우는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자이언트>는 우리가 어쨌든 부를 쌓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시대를 만들면 된다고 말한다. 진흙탕 같은 세상을 지나온 사람들이 ‘착한 기업가’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강남몽>은 과거가 현재를 붕괴시키는 중이라고 본다. 김진이 건설한 백화점에 그의 정부 박선녀가 깔린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김점순의 딸 임정아가 함께 깔려 있다. 강남 개발로 상징되는 과거의 죄악이 그 설계자와 가족과 그다음 세대까지 압사시키려 한다. <강남몽>이 무너진 시대의 괴물 <자이언트> 파괴된 건물 더미 속에서 임정아 같은 이 시대의 20대는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꼼지락거린다. 자기개발서를 읽고, 끊임없이 스펙을 쌓으면서. 하지만 임정아가 폐허에서 살아난다 해도, 그는 김진이나 박선녀 같은 기회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강남 개발이 한창일 때, 그의 아버지인 막노동꾼 임판수의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올랐다. 그 시절 강남의 부는 권력자와 자본가와 하수인까지 먹여살릴 수 있었다. <강남몽>이 그 시대를 “기묘한 것은 어쨌든 그 기간에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고 서술한 이유다. 하지만 어느새 경제성장은 점점 더뎌지고,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서기 직전이다. 강남에 집중될 부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임판수의 삶은 다시 어려워졌고, 조폭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며, 누군가는 해외로 떠났다. 그리고 정부는 4대강을 ‘개발’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다. 그건 우리에게 지금도 모두 ‘자이언트’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할지 모른다. 물론 그건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폐허 더미에 깔린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면 말이다. 과거가 쌓은 폐허 더미에서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힘겹게 외치는 임정아 같은 이 시대의 ‘사람’들을.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