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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저렴한 가격은 매혹인가 해악인가

할인의 시대, 대형마트가 부른 일상의 변화와 저가 정책의 허와 실을 폭로하는 <완벽한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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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3 20:55 수정 : 2010-07-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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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생을 지속하려면 무언가를 사야 한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로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산자이자 노동자이면서도 소비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소비라면 어떤 방식으로 지갑을 열어야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걸까? 싼 물건을 산다? 싸고 좋은 물건을 산다? 싸고 좋고 오래 쓸 수 있어서 더 이상의 소비를 부르지 않는 구매를 한다, 면 좋겠지만 모두 틀렸다. <완벽한 가격>(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의 저자 엘렌 러펠 셸(미국 보스턴대학 과학저널리즘학 교수)은 말한다.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 싸고 좋고 오래 쓰는 튼튼한 물건은 더더욱 없다. 싼 건 비지떡이다.

염가 판매 제품에 바치는 돈·시간·에너지

〈완벽한 가격〉

종종 대형 할인마트들은 출혈 경쟁을 한다. 무참히 가격을 깎아내리면서 다른 업체와 차별화를 선언할 때 소비자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진짜 콧노래를 부르는 건 누구일까? 당장 필요가 없는데도 마치 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난 것처럼 염가 판매되는 물건을 사재는 소비자는 자본주의 논리와 최첨단 마케팅 기법으로 견고하게 무장한 대형마트를 아마도 이길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통해 ‘싼 가격’에 휘둘리는 소비자가 대형마트의 쇼핑 카트를 밀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을 전하기로 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싼 가격’이라는 개념을 통해 얼마나 극적인 성장과 쇠퇴를 경험하고 있는지”를 꼼꼼한 시각으로 분석한다.

앞서 말했듯 싼 가격은 ‘싸면서 좋은’ 것이 아니기에 양화가 아니다. 싼 가격은 때때로 소비자를 우롱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로 살아 움직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로운 가격이면 대체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싼 가격의 유혹에 쉬이 넘어간다.

가격이 소비자를 우롱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쉬운 예는 아웃렛. 아웃렛은 소비자가 손에 쥐고 싶었던 각종 브랜드의 물건을 파격적인 가격에 그것도 대량으로 제공한다. 많은 양의 물건을 쌓아놓으려면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웃렛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그래서 소비자가 아웃렛을 이용하려면 기름을 써서 매연을 뿜으며 차를 타고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소비자에게 할인이란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 멀리까지 온 게 아쉬우니 많이 산다. 싼 물건을 사러 나와 많은 돈을 쓰는 것이다. 시간은 어떤가. 오가는 시간, 쇼핑하는 시간을 합치면 반나절은 훌쩍이다. 아웃렛에 고인 싼 가격의 물건들은 매 주말 이렇게 우리를 꾀어내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게 한다.

싼 가격은 다음과 같이 우리 삶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소비자를 한곳으로 불러모으는 힘을 가진 대형마트의 싼 제품들은 지역의 자영업자와 소상인의 붕괴를 부른다. 싼 가격은 ‘본질적으로는 노동자’인 소비자에게도 해악이다. 돈을 적게 받고 파는 물건을 만들려면 생산원가를 낮춰야 한다. 생산 현장 노동자들의 임금도 자연스레 낮아진다. 먹을거리는 어떤가. 저렴한 중국산 먹을거리를 들여오기 위해 자동차와 배는 숱한 분진을 하늘에 날리며 공기를 흐린다. 싼 가격은 이렇게, 많은 이들의 직장을 앗아가고 임금을 베어감과 동시에 환경을 오염시켜 인간의 숨통을 조인다.


적당한 가격이 돌아와야 한다

저자는 역사, 사회학, 마케팅, 심리학, 경제학 등 각 분야의 최신 이론과 새로운 학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싼 가격에 대한 총체적인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폭로한다. “10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글로벌 경기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인간의 비이성적이며 탐욕적인 욕구가 만들어낸 것이며, 그 원인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표본이 대형 유통업체들의 저가 전략”이라고.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당한 가격’이 돌아와야 한다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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