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같은 남주2
등록 : 2010-07-06 16:21 수정 : 2010-07-08 19:10
하늘 아래 그렇지 않은 것이 있겠냐마는, 드라마야말로 주인공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드물게 진정한 투톱으로 남자주인공이 두 명이거나 여자주인공이 두 명인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으레 한 사람의 비중이 다른 사람보다 크거나 작기 마련이다. 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거시기 하고 그렇지만 주인공은 아닌 사람들을 나는 ‘여주투’(여자주인공 2), ‘남주투’(남자주인공 2)라고 부른다.
요즈음은 비열하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놈 일색이던 남주2가 남자주인공 못잖거나 아예 더 멋있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래서 ‘남주2 때문에 보는 드라마’도 많다. 이렇게 남주2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아예 남주2를 주인공으로 바꾸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그 여름의 태풍>(2005)에서 처음에 주인공이 영화감독인 김한희(정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지하(이재황)였고,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2007)에서는 과연 처음부터 유준석 실장(박시후)이 주인공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남자주인공(백수찬-김승우)과 여자주인공이 맺어지지 않는 세련된 줄거리였던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남주2가 매력적인 것은, 주인공처럼 온갖 문제와 갈등의 요소를 싸짊어지지 않아도 되고, 소쿨하게 “잘 살아. 행복해야 해”와 같은 대사를 쳐주시기 때문이다.
처음에 배우 박용하는 주인공보다는 남주2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고 기억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겨울연가>(2004)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알았는데, 튀지 않으면서 존재감이 큰, 그래서 극을 알차게 하는 ‘남주2의 정말 좋은 예’였다. <겨울연가> 성공 뒤 같은 해 유진과 <러빙유>(2004)를 찍었는데, 재미있기는 했지만 남주2일 때보다는 어색했다. 나는 그것이 배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묘한 수줍음, 특히 한숨 쉬는 것 같은 발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 그 수줍으면서도 쓸쓸하고 밋밋한 듯하면서도 가슴속 불길을 내비치는 것이야말로 그의 진짜 매력이어서, 그것을 잘 알아보고 잡아낸 작품들(2008년 <온에어>, 2009년 <남자 이야기>)에서 빛을 발하더라. 특히 <남자 이야기>의 김신은 나름 사연도 많고 독한 남자였는데, 그 대사들이 그의 입에서 나오면 전편을 보지 않아도 그 외로운 내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 나는 그때 일찍이 <겨울연가>에서 욘하짱을 알아본 일본팬들의 안목을 높이 살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그는 조연에서 ‘남주2가 잘 어울리는 배우’에서, 다시 ‘남주2로 나와도 주인공 같은 남자’가 돼 있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방법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만큼 알지도 못하고, 이런 때 그 이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의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던 팬으로서는 그저 많이 아쉽고 그리울 뿐이다. 영화 <첨밀밀> 리메이크도 많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자기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인, 그래서 남주2가 없는 그 곳에서 편히 쉬시길. 부디.
김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