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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는 늘 외나무 다리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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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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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글학자 박용수

우리말과 민주화를 향한 끝없는 열정, <겨레말, 외나무…>와 <거듭나기 바라는 꿈…>으로 다시 한번

열일곱살에 앓았던 장티푸스는 그에게서 소리를 앗아갔다. 그 바람에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하는 것으로 정규교육을 마쳐야 했다. 팩스는 그가 바깥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말 대신 글로 사람들은 연락을 해오고, 그는 그 글을 읽고 말한다. 그는 말을 잃지 않기 위해 손짓말도 배우지 않았다. 그 덕에 그는 귀를 먹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을 할 수 있었다. 그에게 말은 그만큼 중요했다. 그리고 평생의 업이 됐다.

한글학자 박용수(67). 한글학자 이전에 시인이고, 동시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80년대 민주화투쟁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이 만들어질 때부터 보도실장을 맡아 그는 반독재 투쟁 현장을 기록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줄잡아 10만장. 소리를 잃은 그에게 빛과 이미지는 세상을 보는 유일한 인식방법이었고, 그런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80년대 후반 이후, 그는 사진보다는 우리 말을 연구하는 이로 거듭났다. 원래부터 시인이었기에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지만, 80년대 초반 장편시 <바람소리>를 쓰던 것이 계기였다. 원고지 2천장을 목표로 쓰다가 800장을 메울 즈음 시에 쓸 우리 낱말이 모자라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겨레말을 쓰기좋게 분류한 사전을 내자고 결심했고 무엇에 홀린 듯 달려들었다. 89년 나온 <우리말갈래사전>이 바로 그 결실이었다. 이 사전을 시작으로 그는 모두 네권의 국어사전을 편찬했다.


그 가운데 93년 펴낸 <겨레말갈래큰사전>은 2천쪽이 넘는 분량에 8만2천여개의 낱말을 담아낸 역작 가운데 역작이다. 다른 사전과 달리 이 사전은 표제어를 사람·생활·문화·사·물자연 등의 갈래, 그리고 그 아랫갈래, 다시 그 아랫갈래까지 모두 104묶음으로 나눠담아 어떻게 말들이 만들어지고 그 갈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준 일대 문화적 사건이었다. 96년 나온 <겨레말용례사전>은 <…큰사전>과 짝을 이루는 또다른 노작. 한글사전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으로 지적돼오던 ‘용례’를 올린 실용사전. 순우리말 예문사전으로서는 처음이었던 이 사전은 6만여 올림말 하나하나 비슷한말, 같은말, 반대말, 큰말, 작은말 등등의 쓰임새를 달아놓아 글쓰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전이다.

그가 해온 일들은 사실 돈도 안 되고, 알아주는 이는 적은 일들이다. 그는 그런 일을 평생 동안 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겨레말갈래큰사전>과 <겨레말용례사전>을 묶는 10권 넘는 대작 <겨레말통일대사전>을 펴내는 것이다. 96년 이후 이 일에만 매달려왔다. 그렇게 칩거하듯 사전 편찬하는 일에만 매달리던 그가 최근 소리소문 없이 책을 냈다. 그것도 두권이나. 하나는 시집 <거듭나기 바라는 꿈 머리맡에 하나 두고>(두리미디어 펴냄)이고, 또 하나는 우리 말글살이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그가 겪었던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운 산문집 <겨레말, 외나무 다리에 서다>(두리미디어 펴냄)이다. 특히 시집 <거듭나기 바라는 꿈…>은 80∼90년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박종철, 이한열, 김세진, 박선영, 김귀정 등의 열사들에게 바치는 추도시들과 자신이 직접 찍은 당시 현장 사진들을 묶었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문학의 열정을 되지핀 것일까. 그를 만나 책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들었다. 글로 쓴 물음에 말과 글로 답하는 인터뷰였다.

사진/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열사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시를 썼다.”(박승화 기자)

-몇년 만에 책을 내셨습니다. 특히 시집은 지난 84년 <바람소리> 이후 7년 만인데다 민주열사들을 노래하셨다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으십니까.

=부채감 때문이에요. 시로 쓴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제가 죽음을 지켜봤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희생했던 참담한 민족사를 외면하기에는 우리들 나이먹은 세대들의 책임이 큽니다. 이 부채감은 시간의 흐름으로 상쇄돼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갚을 날을 기다리다 이제서야 시로서나마 그분들을 되생각해본 겁니다.(80년대 분신 등의 사건이 벌어지면 재야에서는 박 선생이 뛰어갔다. 임종 순간이며 때론 부검 현장까지 따라들어가 그는 사진으로 그 순간들을 기록했다.)

-이제는 재야란 낱말도, 열사란 낱말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재야가 추구했던 가치와 힘은 필요한 것일까요.

=재야란 말이 쓰이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민중을 탄압하던 독재세력이 물러가서라기보다는 재야가 집권을 했기 때문에 재야라는 말을 쓸 대상이 없어진 것으로 봐야죠. 하지만 통치세력으로 올라간 재야가 기대를 저버리고 있어서 민중의 권익을 지켜줄 재야세력의 등장이 요구됩니다.

-지금 정권은 어느 정권 때보다도 많은 재야출신 인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과거 재야에서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지금 과연 잘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지금 정부는 재야세력이 일궈낸 정권이기에 재야인사들이 참여한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이분들이 군사독재와 싸우기에만 정신이 없어서 정치에 대한 경륜을 기를 틈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같은 시행착오를 보이는 겁니다. 물론 과거경력을 팔아 먹고살려는 이들, 줄서는 이들도 있어요. 이런 모두를 과도기적 현상으로 봅니다.

-시집과 함께 내신 <겨레말 외나무 다리에 서다>를 읽으면 아마 어느 누구도 스스로 창피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말과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들, 그리고 배운 사람일수록 우리말보다는 외국말을 좋아하는 현상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말에 대한 무지는 시대적 산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민족의 말은 민중의 생활 속에서 명맥을 이어옵니다. 그러나 민중은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지 못합니다. 일제시대,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부터 노태우까지 독재자들이 통치한 기간이 한 사람 일생에 맞먹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통치자는 범보다 무섭다는 의식을 대물림으로 받은 터라 통치자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피해의식은 자기보호라는 본능을 기릅니다. 이 본능 속에는 범이 으르렁거리며 질러대는 ‘말’을 익히려는 버릇이 도사리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말을 안 쓰는 것을 배운 보람이라고까지 믿기에 이른 겁니다.

-우리말을 잘 쓰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특수사전이 참 부족합니다. 한글문화연구회에서는 이런 특수사전 편찬에 많이 노력해오셨는데 작업중인 <겨레말통일대사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우리말을 잘 쓰고 말하려면 우리말 낱말들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고, 그 갈래가 어떻게 되며 계통이 어떤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언어지식이 풍부해지죠. 사실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런 갈래사전과 낱말의 성상틀을 알려주는 길잡이 사전들이 다 돼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전혀 없어요. 그래서 영어잘하는 사람들은 영어 특수사전으로 말을 찾아 그걸 거꾸로 한글로 다시 푸는 그런 현실이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여러 종류의 사전을 만들 수 있는 데까지 만들어야 합니다.

<…대사전>은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작업을 하는데도 언제 끝날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속할 겁니다. 남북한 말씨의 골을 메울 방향으로 잡고 있는데 끝까지 할 겁니다. 낱말의 수가 한정돼 있어 어느 시기에 이르면 마무리되겠지만 언어환경이 많이 달라져서 좀 늦어질 것 같습니다.

선생의 산문집 <겨레말…>에는 그가 자신을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과연 우리말을 잘 알고 쓰는지 묻는 문제를 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를 미리 확인해 준비하고 찾아간 기자에게 선생은 그 문제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독자들께 문제를 소개한다. 선생이 내곤 하는 문제는 ①내둑 ②냇둑 ③내뚝 ④냇뚝 가운데서 어느 것의 표기가 맞느냐는 것이다. 정답은? 국어사전만 펼치면 쉽게 알 수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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