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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드러커 열풍’의 비밀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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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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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는 안목과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지식 르네상스인’의 생애, <피터 드러커 평전>

사진/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을 발명한 사람”으로 불린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공통점은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들 전·현직 대통령이 휴가철 청남대로 떠날 때 가져간 책을 꼽을 수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던 지난 1996년 <미래의 결단>을,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휴가 때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를 들고 갔다. 그리고 이 두 책은 모두 한 사람이 쓴 것이다. 바로 피터 드러커다.

이미 1940년대부터 스타


두 사람 모두 드러커의 책을 좋아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또다른 공통점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드러커의 애독자로 유명하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김 대통령은 서가를 한번 읽을 책, 여러 번 읽을 책으로 구분하는데 일생 동안 읽을 책으로 구분한 책들 가운데 드러커의 <단절의 시대>가 들어 있다고 한다.

190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올해로 아흔두살을 맞은 피터 드러커는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다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경영학자이자 미래학자다. 기업의 최고경영자, 그리고 유명인사들이 꼽는 책에는 그의 책이 빠지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요즘 그의 책은 거의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나온 책을 보면 올해 <변화리더의 조건>을 비롯해 <프로페셔널의 조건>이 다시 번역돼 나왔고, 지난해 <21세기 리더의 선택>, 99년에 <21세기 지식경영>과 <지식자본주의 혁명> 등이 줄줄이 출간됐다. 그가 혼자 쓴 책이 아니라 여러 명과 함께 쓴 ‘피터 드러커 외 지음’ 책까지 합하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드러커는 이미 1940년대부터 스타였다. 20세기를 풍미한 경영학자로서 현대 경영의 이론을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했고, 그를 빼고 경영학이란 학문을 말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이전 세기에는 없었던 경영학이란 학문이 20세기 확고한 위상을 갖게 된 주역이 바로 그였다. 그러나 그런 그가 요즘 들어 다시 각광받는 까닭은 뭘까. 그가 93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쓰면서 경영학뿐만이 아니라 미래학자로서 정확한 예측력으로 한발 앞서 미래를 예측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정책입안자들이나 학자들 가운데 ‘드러커 마니아’들이 생겨나면서 퍼진 현상이기도 하다. 90년대 이후 드러커는 자본주의가 쇠퇴를 향한 전환점에 들어섰고, 지식이 자본과 노동을 대체하는 지식사회라는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예측했다. 한마디로 지식경영론을 통해 새 세기의 경영 방향을 이끌고 있고, 이런 그의 주장이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최근 드러커 열풍이 거센 가운데 드러커의 생애에 대한 책이 새로 출간됐다. 대구대 경영학과 이재규 교수가 쓴 <피터 드러커 평전>(한경BP 펴냄/ 9800원/ 문의 02-360-4595∼7)은 드러커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책으로는 처음이다. 20세기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가운데 한명인 드러커가 어떤 일생을 살아왔고, 그가 끼친 영향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논하는 책이다. 드러커의 책 가운데 상당수를 번역해온 이 교수는 이번에는 자신이 드러커를 직접 만나고 연구해 쓴 이 책에서 드러커를 ‘지식 르네상스인’으로 정의하며 경영현상과 지식을 보는 관점을 바꾼 드러커의 의미를 평가했다.

책은 드러커의 일생을 연대순으로 펼쳐나간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고위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의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드러커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그는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던 프로이트, 슘페터 등 당대의 지식인들을 만나며 감화를 받았다. 청년이 된 드러커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대학을 마친 뒤 모교에서 강사를 하고 있다가 나치의 득세를 피해 1933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은행, 보험회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영국신문사 컨소시엄의 미국 특파원이 됐고, 3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흔 넘긴 나이에도 지대한 영향력

미국에서 대학 강사로 출발한 드러커는 39년 첫 번째 책 <경제인의 종말>을 냈고, 42년에는 베닝턴대학의 철학 및 정치학 교수로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43년에는 그의 첫 번째 현장 경험인 제너럴모터스(GM)에 대한 컨설팅을 맡으면서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게 됐다. 그뒤 드러커는 컨설턴트로도 교수 못지않게 바쁜 활동을 벌였다. 2차대전 이후 경기회복을 꾀한 마셜플랜에도 고문 자격으로 참여했고 1950년에는 뉴욕대 경영학부 교수로 자리를 옮겨 20년 동안 재직한 뒤 71년 이후 지금까지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대학에서 그의 이름을 딴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계속해왔다.

얼핏 보면 순탄하고 화려한 경력의 일생이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의 이런 성과는 모두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과 스스로의 피나는 노력이 바탕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지은이는 드러커를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헛되이 쓰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관리를 통해 아흔을 넘긴 기금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드러커가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사회의 시대적 환경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책은 평범한 평전들과 달리 드러커의 일생, 즉 20세기에 중요했던 경향과 사조, 그리고 주요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전기가 아니라 역사개론서를 읽으며 흐름을 아는 부수효과도 있다. 또한 지은이가 여러 방면에 능통한 재주꾼이기도 한 드러커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니라 미켈란젤로에 비유한 대목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경제, 경영에 대해서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서 드러커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시대에 살면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쉽게 풀이한 책이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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