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란성 쌍생아가 동일한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단순히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질병에 걸릴 확률을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REUTERS/ SETH WENIG
다발성 경화증에 관한 쌍생아 연구 일란성 쌍생아 연구는 유전학의 꽃이다. 일란성 쌍생아와 이란성 쌍생아는 환경 요인을 차단하고 유전적 요인만을 분석할 수 있는 최적의 비교연구 대상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21세기 초엽부터 이런 기반을 뒤흔드는 예외가 발견됐다. 예를 들어 일란성 쌍생아들의 DNA 메틸화 패턴이 어릴 때는 비슷하지만 성장하면서 점차 달라지고, 그래서 표현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성격이나 심리 상태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일란성 쌍생아 연구를 유전자결정론의 대표적인 예로 만드는 것은 유전적 질병 때문이지만, 일란성 쌍생아가 동일한 유전병에 걸릴 확률조차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단순히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질병에 걸릴 확률을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이 대표적인 예다. 다발성 경화증은 환경적 요인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알려진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으로 면역세포가 신경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인 ‘수초’를 외부 물질로 인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 집단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이 질병에는 제대로 된 치료제가 없다. 올해 <네이처>에 한 명은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고 한 명은 그렇지 않은 일란성 쌍생아의 유전체를 해독한 결과가 보고됐다. 환경 요인이 중요하다고 알려진 질병인 다발성 경화증에 대한 기존 연구결과들은 혼란스러웠다. 과거의 일란성 쌍생아 연구들은 분명히 일란성 쌍생아라 할지라도 이 질병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하지만 유전학자는 기어이 다발성 경화증에서 차이를 보이는 일란성 쌍생아들의 유전체에서 유전적 차이를 찾아냈다. 다발성 경화증에 유전적 요소가 결정적인지 아닌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번에 <네이처>에 실린 연구는 다발성 경화증에서 차이를 보이는 여성 일란성 쌍생아의 유전체를 완전히 해부한 결과다.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RNA의 발현 패턴, 메틸화 패턴, 단일 염기의 다형성(SNP) 등 현재의 기술로 조사할 수 있는 대부분의 유전체적 변화가 분석됐다. 150만 달러가 들어간 이 연구의 결론은 허무하다. 연구진은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쌍생아와 그렇지 않은 쌍생아 간에 아무런 유전적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유전적 차이뿐 아니라 현재까지 알려진 DNA 메틸화 패턴에서도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고, 유전자 발현 패턴도 다르지 않았다. 연구진이 무엇을 의도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다발성 경화증의 유전적 기반을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유전적 요인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유전적 요인이 다발성 경화증을 유도하려면 환경적 요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이 감염에 의한 것인지, 식습관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유전자는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유전학은 결정론’이란 결정론에 빠진 철학자 후성유전학 연구는 급속하게 성장 중이다. 2006년에만 2500여 개 논문이 발표됐다. 암과 관련된 후성유전학 연구도 활발하다. 유전학은 유전자라는 확실한 실체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후성유전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생물학은 후성유전학이라는 학문에 의해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기존 관점들이 재고되고 있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외치던 모호한 사회과학자들의 변명은 그들이 증오하던 분자생물학자에 의해 연결고리를 찾아가고 있다. 분명히 환경은 중요하다.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을 닮았다는 이유로 많은 철학자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후성유전학적 변이의 대물림이 얼마나 안정적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과학자들은 DNA 메틸화를 측정하는 방법론이 완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를 주저하고 있다. 분명 염기서열의 변화로는 설명되지 않는 대물림 현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분자적 기제로 가장 적합한 것은 후성유전학적 변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존재한다고 해도 얼마나 일반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상식적인 과학자들이 언제나 논문의 말미에 적어두듯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분자생물학은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오해와 환원주의라는 오해 속에서 성장해왔다. 이제 그 결정론자이자 환원주의자인 분자생물학자가 우리의 유전체 속에서 비결정론적 현상을 발견했건만, 철학자는 별반 관심이 없다. 분자생물학자는 여전히 환원주의자로 남아 있지만, 점차 비결정론에 물들어가고 있다. 생물학은 이렇게 발달하고 있는데, 철학자는 ‘분자생물학은 환원주의적 결정론’이라고 바라보는 과거의 굴레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과학에 대한 판단을 철학자에게 맡기기 어려운 이유다. 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초파리유전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