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너와 함께〉 〈세상에 부럼 없어라〉(왼쪽부터). 선무의 그림에서 누구는 ‘불온’을 보고, 누구는 ‘화해’를 읽는다.
선무는 이렇게 남한에서 미술작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북한에서의 자신의 삶과 남과 북의 문제를 이미지로 발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다. 하지만 남과 북 사이에는 여전히 ‘선’이 존재한다. 2008년 부산비엔날레에 초청된 그는 전시 오픈 당일 작품을 철수당했다. 김일성을 그렸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선이 없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 선을 인정해야 하는 서글픔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선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탈북’이라는 키워드에 국한된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서 ‘탈북’을 지역적 공간으로 인식한다면 선무는 그냥 ‘북한 출신’이다. 우리 고향이 그러하듯이 선무의 고향이 북한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탈북작가로 보이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탈북’이란 단어 자체가 편견 아닐까 그는 작품을 통해 남과 북 사이의 편견의 선을 없애고자 한다. 2008년 작품 <김정일>은 아주 풍자적이다. 화면에서 김정일은 아디다스와 나이키 신발, 그리고 핑크색 점퍼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다. 북한의 개방을 표현하는 이 작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너와 함께>(2009)에서 코리아(남과 북)의 여학생들이 유쾌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주된 관심사입니다. 그 삶을 통해 남한 사회도 돌아보고 국제사회도 돌아보려 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보는 시각이 각각 다른 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많은 선입견이 들어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러한 선입견들은 당연하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겠죠.” 북한 출신 작가 선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단지 그가 ‘탈북’을 했기 때문에, 북한의 모습을 그림으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북한이 이슈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역사는 기억에 의존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선무,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사적 기억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선무에 대한 관심을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책임감 있는 공적 기억으로 기록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작가 선무는 이념이 만들어낸 선을 넘어서 우리가 기억하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 서 있기 때문이다. 다시 그의 작품을 바라보자. 백곤 스페이스 캔 전시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