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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뒷심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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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25 21:48 수정 : 2010-05-2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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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부른다〉
드라마에는 등장인물이 빛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줄거리가 탄탄해서 재미난 것도 있고, 화면이나 소품 또는 배경음악이 멋있어서 좋은 것도 있다. 수많은 후보 중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지상파) 편성’의 벽을 뚫고 ‘온에어’되는 드라마는 대부분 상당한 완성도를 가졌고, 이렇게 각자의 ‘재미난’ 이유가 있으니 ‘테순이’들은 늘 볼 게 있어 좋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떤 드라마가 시작될 때 ‘이걸 봐야지!’ 하고 마음먹는 기준, 첫째 작가를 보고 기대치를 높이거나 낮춘다(영화는 감독의,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둘째 출연하는 그·그녀의 선구안을 믿고 따라간다.

하지만 어차피 ‘종합’예술인지라 ‘역시!’보다는 ‘에구머니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고, 등장인물이 당최 일관된 캐릭터라는 게 없어서 잘 가다가 봉창을 때려주시는 센스(?) 때문이다. “아니, 저 주인공이 저런 성격이었어?” 하는 순간, 드라마는 한 회 안에서도 어느새 ‘시즌2’가 되거나 ‘액자소설’이 돼버린다. 주인공의 캐릭터 고수는 커트라인이 되는 셈이다.

한편 어떤 드라마가 극본 공모전 수상작이라면 대충 3할대 이상 타자는 되지만, 연속극 공모는 전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시놉시스)와 2∼4회분까지만 낸다고 하니 역시 뒷심이 흐물흐물한 경우가 많다.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방송의 2009년 당선작 <부자의 탄생>도, 끝까지 보기에는 인내심이 달렸다. 같은 해 공모로 뽑힌 <국가가 부른다>를 기다리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말자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도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를 거의 일드 원작만큼 재밌게 만든 실력을 보여준 김정규 감독님과, 믿음직한 선구안이라면 몇 손가락 안에 들 그 남자, 김상경이 주연이라는 말에 은근 기대를 걸어보았다. 4회까지 방영된 지금(누가 내 평에 신경이나 쓰겠느냐마는), 시청률을 보증한다는 이병훈표 사극에 기죽어 맥 빠지지 않았으면 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요즘처럼 웃을 일 없는 때 비실비실 웃게 하는 대사의 맛이 좋고, 강신일·이기열·양금석의 연기가 든든하다.

그리고 여주인공 오하나(이수경) 순경. 앞으로 몇 주 동안 당연히 그녀도 조금씩 변하겠지만 나중에 턱없는 애국심이나 사명감으로 트랜스포머해서 헉 소리 나게 하지 않으면 더 좋겠다. 현실 속에서 만난 국정원 아저씨들과는 완전 다르지만, 아직까지는 사람 냄새 나서 좋은 정보국 사람들을, <아이리스> 언니·오빠들처럼 ‘삐리릭 뾰로록 척척’(웬 CSI?)으로 만들지 않으면 고맙겠다.

물론 부잣집 아들이면서 엄청난 사명감으로 나랏일 하는 남자 주인공이 정보기관을 선하고 바람직한 곳으로 보여준다는 설정이 많이 불편하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때 ‘국가가 부른다’는 제목이 계속 거슬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맛보기로 보여준 유머 감각을 믿어본다, <개그콘서트> 드라이클리닝 버전으로. 니가 말한 ‘국가’가 이따위 ‘국가’는 아니겠지?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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