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에서 마릴린 먼로까지
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현대적 의미의 향수, 즉 대량생산으로 대중화된 향수가 나온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인류가 향을 즐기기 시작한 건 문명의 시작과 큰 차이가 없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아라비아, 그리스 등 모든 고대 문명국가들의 유적에는 향료의 흔적이 나온다. 이집트는 유난히 향료가 발달한 국가였는데 그뒤에는 클레오파트라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치스럽게 향료를 사용하는 군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향, 장미향 등 갖가지 향료로 치장하길 즐겼던 클레오파트라는 심지어 유람선을 탈 때도 돛대를 온통 장미꽃으로 장식해서 바다 위에서도 향을 즐겼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폭군 네로 황제 역시 향수 소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룻밤의 축제에 오늘날 돈으로 따지면 16만달러가 넘는 분량의 장미기름과 장미수를 손님을 접대하는 데 썼고 두 번째 왕비의 장례식에 사용한 향료의 양은 아라비아 전체의 연간 제조량을 초과했다고 한다.
근대 이후 향수제조의 중심무대가 된 프랑스는 15세기 이후 ‘향기의 궁정’이라고 할 만큼 많은 향수가 소비되기 시작했다. 루이 15세는 전담 조향사를 두어 감정이 격앙될 때나 불안할 때, 권태로울 때에 각기 다른 향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당시 악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가 발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789년 시민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귀족들의 향수 사용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에 반해 전염병이 나돌던 하층민의 구역은 썩은 냄새가 진동하면서 갖가지 냄새들이 뒤엉켰다. 그러한 파리의 풍경은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은 자신의 방에 사향을 너무 진하게 써 시종들이 일을 하다가 종종 기절까지 하곤 했다.
향수의 산업화가 이뤄진 현대에 들어와서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마릴린 먼로와 ‘샤넬 넘버5’다. 인터뷰에서 어떤 잠옷을 입느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마릴린 먼로는 “샤넬 넘버5”라고 짧게 대답해 기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샤넬 넘버5’은 향수 역사에서 신화적 자리에 오른 제품이다. 패션디자이너 샤넬이 자신의 이름이 붙은 향수를 만들기 위해 천재 조향수 에르네스트 보와 손잡아 개발한 이 향수는 기존의 향수시장을 완전히 뒤엎은 혁명적 제품이었다. 당시 가장 값비싼 재스민과 5월의 장미를 찾아내어 원료로 삼은 ‘샤넬 넘버5’는 화학적 합성물질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향수다. 이때 에르네스트 보가 만들어낸 물질 알데히드는 그 이후 향수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요란하고 조악한 향수병이 판을 치던 당시 내놓은 투명한 사각형의 단순한 용기와 백색 케이스 역시 아방가르드적인 예술품으로 인정받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