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쇼트트랙 사태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 지난해 12월28일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앞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릉실내빙상장에서 트랙을 돌고 있다. 연합
코너링보다 더 복잡한 쇼트트랙 진실게임 특히 ‘경기장 바깥의 규칙’이 경기장의 기반을 흔들어버리는 일이,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한국의 스포츠 현실을 보라. 말 그대로 스포츠계의 폭력·위계·기만·성폭행·협잡·이간질 따위는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없던 일이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랠프 앨리슨의 ‘인비저블’) 곳에 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보이게 된 것뿐이다. 몇 년 전 유소년 축구 경기를 관전한 적이 있는데, 한쪽 아이들이 제대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함께 그것을 관전한 어느 축구인이 “출출한데 뭐 먹을 거 없나?” 하는 정도의 심드렁한 어투로 말했다. “저놈들, 졸라 빠다 맞겠구만.” 좀더 ‘구체적’인 사안으로 우리는 최근 불거진 쇼트트랙 선수들의 상황을 살필 수 있다. 지금 이 사안은 ‘진실게임’으로 급속히 코너링하고 있다. 링크 밖에서, 이해·관심을 달리하는 연맹 수뇌부와 감독과 코치와 선수들과 가족들이 벌이는 다툼은, 그들이 링크 안에서 펼쳤던 코너링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니폼 색깔을 똑같이 한다면 과연 우리 편이 누구고 안톤 오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 쇼트트랙의 계주처럼, 현재 이 ‘진실게임’은 어느 한쪽을 심정적으로라도 지지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앞서 언급한 카유아의 근심, 즉 직접적인 이익, 냉소주의, 모든 규범의 부정이 어린 선수들이 링크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그 한 줌의 순정성마저 지배해버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국민적 관심사’인 쇼트트랙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보이는’ 영역으로 밀려 올라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바깥에,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영역에 얼마나 지독하고 끈질긴 병폐와 폭행과 위계와 협잡이, 어느 특정 개인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라 거의 ‘네트워킹’ 차원에서 미만해 있을지, 그 점이 걱정이다. 우리는 얼마 전 대학 축구팀과 심판의 충격의 네트워킹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때에, 굼브레히트의 다른 관점에서 ‘스포츠를 찬양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하는 한숨은 결국 우리 몫이 되고 만다. 학술적 개념 이전의 상태, 그러니까 개념으로서 ‘문명성’이니 ‘야만성’이니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야만적인 상태가 사법적 차원에서 횡행하는 것이 한국 스포츠의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경기장 바깥의 일을 말끔히 잊고 경기에만 몰입하고 찬양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사고를 윤리의 진공 밀폐용기에 넣어두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격을 함양하겠다면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 이는 어쩌면 장외 ‘관전자’의 한가로운 객담일 것이다. 채널을 돌리면, 국경 바깥의 스포츠 혹은 스포츠 바깥의 유희가 지속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그 역시 또 다른 의미의 ‘락앤락’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에잇 까짓,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하면서 그 심각한 네트워킹을 의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정말로 그 어린 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폭력과 협잡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킹의 소도구(또는 미디어가 피상적으로 읊어대는 ‘피해자’)였다가 이제는 ‘진실게임’이라는 링에 직접 뛰어들어 사건 당사자가 돼버린 상태! 앞으로 우리는 그 선수들이(혹은 그들의 후배가) 강렬하고도 매혹적으로 코너링을 할 때, 당연히 그들의 질주에 동반해 환호하면서도 혹시 저 속도에 ‘편승’한 은밀하고 추악한 네트워킹은 없는가, 문득 생각할 것이다. 진위를 다투는 사법의 문제고 어린 선수들의 명예와 영혼이 담긴 문제인데,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러니까 한가로운 관전자의 입장에서도, 한국 스포츠의 열정적인 한순간을 이제는 맘껏 환호하거나 몰입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앞서 굼브레히트의 <매혹과 열광>은 사려 깊게 읽을 경우 밑줄 그어둘 만한 문장이 없지 않다고 했는데, 그런 지적 바탕 없이도 단번에 밑줄을 그을 만한 문장이 있다. 그가 인용하기를,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어느 다이빙 코치는 자기 삶의 거의 모든 것을 바친 스포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한다. “인격을 함양하고 싶으면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