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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십자군과 사탄의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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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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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대학살의 진실을 들추는 황석영의 <손님>… 한국전쟁기에 기독교는 마술적 신념체계였는가

황석영의 신작장편인 <손님>을 읽으면서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떠오른 것은 종교를 인류의 위대한 망집(妄執)이자 신경증 체계로 파악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프로이트의 언설이었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현세에 대한 공포가 초월성과 완전성의 욕망으로 전환되면서, 거기에 구원의 메시지가 가미되고, 다시 이것이 세속적인 차원에서의 선민의식을 작동시키면서, 세계를 빛과 어둠의 이원적 세계로 분류하는 관념의 만능이 그것이다. 세계사적 비극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역사상의 숱한 종교전쟁들과 현재에도 지구마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적·민족적 갈등이 결합된 피의 살육들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종교가 또다른 형태의 ‘마술적 신념’으로 언제든지 전락할 수 있다는 고통스런 현실의 확인일 것이다.

손님마마, 적대와 공포의 메타포

황석영의 <손님>을 읽으면서 내가 마술적 신념으로서의 종교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은, 이 소설 속에서 표출되고 있는 기독교와 마르크시즘간의 적대적 대립이 한국전쟁 기간중 벌어진 민족 내부 구성원간의 상호학살의 주요한 작동기제로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50년 황해도 신천에서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사건은 북한의 정사(正史) 속에서는 미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기술되고 있으나, 작가는 이것이 민족구성원 내부의 상호학살이었으며, 학살을 추동시킨 지배적인 작동기제가 기독교로 상징되는 마술적 신념과 마르크시즘의 적대적 대립 때문이었다는 독특한 해석을 가하고 있다.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을 적대적인 신념체계로 규정한 뒤 이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소설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김은국의 <순교자>와 같은 작품을 통하여 이미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의 대립은 작중인물의 신앙적 순수성을 좀더 강렬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배경으로서만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 뿐, 그것이 분단현대사에 깃들여 있는 역사적 비극의 원천을 구명하는 계기로 기능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의 대립을 신앙적 순수성의 차원을 넘어 역사적 국면에서 검토하고 있는 <손님>은 그 시각 자체가 매우 새로울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기간중 기독교가 담당하고 있었던 비극적 역할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로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작품이다.

황석영은 작중인물을 통해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을 “서쪽나라 오랑캐병”, 즉 “손님마마”로 명명하고 있거니와, 이때 ‘손님’이란 민중이 겪어야 했던 재앙과 살육의 현실을 강렬하게 환기시키면서 동시에 자생적이며 주체적인 역사발전을 불가능케 했던 외세에 대한 적대와 공포의 메타포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현기영의 <해룡(海龍)이야기>에서의 ‘해룡’이 수탈과 살육을 자행하였던 침략세력의 메타포로 사용되었던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손님>이 특징적인 것은 이 재앙과 살육의 일차적인 행위자가 외세가 아닌 민족구성원들 자신이었다는 시각을 강렬하게 피력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 민족구성원 내부에서 벌어진 상호살육의 출발점을 작가는 토지개혁을 둘러싸고 날카롭게 표출되었던 계급(계층)적대에서 찾고 있거니와, 그것은 작품 속에서 마르크시즘과 기독교의 대립구조로 치환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작가가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한국적 기독교의 배타적 멘탈리티인데, 그것은 가령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내가 왜 용서를 빌어? 우린 십자군이댔다. 빨갱이들은 루시퍼의 새끼들이야. 사탄의 무리들이다.” 신천 대학살의 가해자였던 작중인물 류요한이 참회와 회개를 요구하는 동생 류요섭에게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류요한의 이러한 발언을 통하여 우리는 기독교사상에 내포된 빛(십자군)과 어둠(사탄)의 이원적 대립관념이 어떻게 현실 역사 속에서의 살육을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자기 신념의 절대화를 마술적으로 승인하게 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황석영은 <손님>을 통해 한국전쟁 와중에 기독교가 어떻게 학살을 정당화하는 마술적 신념체계로 전환되었으며, 민족사적 비극의 한축으로 작동되었는가를 냉정하게 밝히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화해와 민족대단결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가신 넋들의 고백을 통해 장엄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이제 우리의 분단문학은 비극의 원천에 대한 탐구와 화해의 모색을 정서적인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관념과 사상의 차원에서도 높은 수준에서 고민할 수 있는 국면에 도달한 것 같다.

이명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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