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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건축계는 지금 개판 5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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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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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건축계의 도발자’ 이종건 교수

겉으로는 잘 나가지만 속은 텅 빈 대가들 난타… 문화운동의 관점에서 건축비평하겠다

사진/ “지금 우리 유명 건축가들은 건축을 선도할 수준이 못 된다.”이 교수의 비판은 거침이 없다.(이정용 기자)
‘건축은 예술’이라는 명제는 이제 상식이다. 비록 아직도 건축에 대한 인식은 다른 예술과는 다른 실용장르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건축은 서서히 어엿한 예술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건축비평은 그동안 전무했다. 건축전문지에 비평이 등장한 것은 불과 몇년 지나지 않는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건축비평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우리 건축비평은 짧은 연조만큼 아직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전문 비평가가 거의 없고, 그나마 나오는 비평도 칭찬 위주의 ‘주례사 비평’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한 비평가가 바로 이종건(46)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다. 이 교수는 지금 활동하는 건축비평가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누구나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모시는’ 김수근·김중업 두 작고 작가는 물론 요즘 최고의 ‘스타’로 비평을 초월한 존재처럼 비평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승효상, 민현식씨 등에 대해서도 직설적인 비판을 쏘아대왔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이 교수에 대한 건축계의 평가는 극단으로 나뉘는 편이다. 주류 건축계로부터는 “스타를 공격함으로써 스타가 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젊은 건축학도들과 지지자들에게는 “속이 후련하다”, “할말을 잘한다”는 응원을 받고 있다.

건축계의 도발자인 이 교수가 최근 비평집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이석미디어 펴냄/1만2천원/문의: 02-519-6520)을 펴냈다. 이 책에서도 이 교수는 평소의 신랄한 비판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건축은 개판 5분 전”이라는 신랄한 비판과 함께 포폄이 분명한 비평들이 가득하다. 과연 이 교수는 도발을 위한 도발을 하는 것일까. 이 교수가 이처럼 우리 건축계의 구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유는 뭘까. 그가 보는 우리 건축계의 문제점, 그리고 건축비평의 역할은 무엇인지 직접 만나 들어봤다.


-다른 비평가에 비해 비판의 강도가 센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축은 삶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삶의 진솔성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현실과 직접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건축은 놀이에 그쳐버립니다. 건축가의 이상과 현실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실제 우리 건축계에서 그런 집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좋은 건축이 드물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죠.

-지금 우리 건축비평은 어떤 단계에 올랐다고 보십니까.

60년대는 김수근, 김중업 두 작가 중심의 파벌이 마피아처럼 공고했고, 두 세력이 건축계의 모든 것을 장악하니까 비평이 존재할 수 없었죠. 최근에서야 유학파들이 자리잡고 건축계 내부에서는 젊은 비평가 그룹들이 등장하며 그 힘이 만나면서 건축비평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비평은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저는 비평가의 책무가 절대화되고 우상화된 속성, 그리고 그것이 끼치는 영향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경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건축비평을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승효상씨와 민현식씨라면 지금 가장 유명한 건축가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건축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4·3그룹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는데 어떤 점 때문입니까.

대가들을 비평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금 가장 잘 나가는 건축가니까 당연히 비평 대상이죠. 그분들을 비평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중요한 점은 잘 나가서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잘 나가는데 속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사유와 건축방식이 우리나라를 선도하는 수준이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삶을 진실되게 반영하기보다는 건축가가 건물에 살 사람의 거주방식을 강제로 정해주는 거만한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건축계에도 이른바 ‘권력’이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김수근 김중업 두 거장이 세상을 떠난 뒤 4·3그룹이 또다른 권력, 최고의 권력으로 등장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권력이기 때문에 비판하고, 두 번째로는 권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해야 주류로 편입될 수 있고, 이들이 주장하는 미학을 따라야 이들이 심사하는 설계경기에서 당선되는 현실은 분명 문제입니다. 사실 건축계 내부에서는 누구나 알면서 구태여 말하지 않는 사실을 제가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건축계를 개판 5분 전이라고 신랄하게 꼬집었는데 무엇이 가장 큰 문제입니까.

그런 발언조차 나오지 않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비판이 없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죠. 건축은 그동안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정권이 내놓는 과실을 따먹어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풍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채 친정치적인 건축가들, 그리고 소수 학교 위주의 파벌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건축계의 소외계층이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워지고, 치열한 작업들이 소외되고 있습니다.

-김수근·김중업 두분은 건축계에서는 비평을 초월하는 존재로 자리잡아왔는데 비판하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두 거장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이들이 남긴 업적 못잖게 폐해도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두분은 자의건 타의건 파당적 문화를 만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끊임없이 비판할 겁니다.

-결국 건축이 대중들과는 유리돼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건축가가 예술가가 아니고서는 건축에 대한 희망은 없습니다. 건축가는 모름지기 시대를 거머줘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가령 박정희 기념관 문제만 해도 그 문제에 대해 자기 소견이나 의견을 내는 건축가가 있기나 합니까.

-우리 건축이 문제인 것은 건축가보다도 건축주들의 탓이 커 보입니다. 건축주가 건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건물의 경제성만 따지다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건축이란 작업과 이에 대한 건축비평은 동시대 대중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문제를 자기 자신에게 돌려보자는 겁니다. 일단은 건축가가 자기반성하자는 거죠. 흔히 건축가들은 자신의 잘못 이전에 건축주가 문제라고만 주장합니다. 비겁한 행동 아닙니까? 삼성이 종로 화신백화점 자리에 짓는 건물을 외국 건축가에게 맡긴 이유가 삼성이 외국 건축가를 선호했기 때문일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솔직히 그 정도 작업을 해낼 건축가가 우리나라에 거의 없기 때문인데, 그걸 솔직히 인정하자는 겁니다.

-지금 우리 건축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어떤 거라고 보십니까.

상상력의 복원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칭찬이 아닌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과 키우기 의식이 무서울 정도로 만연해 있습니다. 건축잡지에서 제게 비평을 맡기면 저를 거부하고 자기를 칭찬하는 비평가로 바꾸는 건축가들도 몇번이나 경험했습니다. 그런 주례사 비평은 건축과 건축비평의 수준을 깎아내릴 뿐입니다.

-건축에 대해 무관심한 일반 대중들의 인식도 아직은 아쉽습니다.

사람들이 참 이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자기 몸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최고, 최신 패션을 좇아가며 정말 잘 꾸미고 다닙니다. 하지만 자기 몸을 담는 집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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