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잡지는 독자에게 ‘생각의 유희’, 즉 자신의 생각을 살찌우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마르틴 되리 <슈피겔> 부편집장.
<슈피겔>이 2002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선보인 ‘부시의 전사들’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왼쪽)과 6년 뒤 <슈피겔>이 다시 내건 ‘부시와 그 패잔병들’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두 표지 모두 세계적인 이목을 끌어모았다.
- 인터넷 시대에 시사잡지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 나는 미래 예언자가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20∼30년 뒤에는 잡지가 사라질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잡지를 읽는 독자가 여전히 부분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에 대응해 <슈피겔>은 지금 아이패드나 아이폰용 슈피겔 애플리케이션 등 크로스미디어를 전사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슈피겔> 전자책 개발도 역점을 두고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각종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시대에 맞춰 콘텐츠를 생산하는 편집국도 바뀌어야 한다. 사실 지금 <슈피겔> 내부에서 편집회의가 너무 많다. 편집과 인쇄 과정에서 의사결정 단위가 위에서 아래까지 너무 많이 계층구조화돼 있다. 이런 비효율적인 낭비 요인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광고시장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 = <슈피겔> 판매부수는 아직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적자로 돌아선 건 아니지만 광고 감소로 인해 수익이 3분의 1가량 줄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업무시간 관리 측면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등 자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단 한 명도 해고는 하지 않았다. - <슈피겔>은 독일어로 ‘거울’을 뜻한다고 알고 있다. <슈피겔>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뭔가. = 사원들이 주식 지분 50.5%를 보유하고 있다(1947년에 루돌프 아우크슈타인 전 발행인이 창간한 <슈피겔>은 사원주주회사다. 아우크슈타인은 1974년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절반을 직원들에게 양도했다). 기자를 포함해 모든 사원이 ‘편집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것이 <슈피겔>의 큰 강점이다. 이는 우리 기자들의 특권이기도 하고, 독자가 <슈피겔>에 뭔가를 기대하는 원천도 된다. 권력에 대한 집요한 비판 등 독자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해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고, 우리 잡지가 성공할 수 있는 핵심 열쇠다. - 250여 명에 이르는 <슈피겔> 기자들은 모두 중도좌파 성향인가. = 좌파 혹은 중도파가 90%에 이르고 10% 정도는 보수적 성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정책 등을 둘러싸고 편집국에서 갑론을박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기자들끼리 무진장 싸운다. 하지만 이런 활발한 토론이 <슈피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슈피겔>이 중도좌파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다수 기자가 동의하고 있다. 독자 쪽을 보면, 과거에는 보수와 좌파 쪽으로 명확히 구분되었으나 최근에는 이런 구분이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사안별로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진보적이었다가 어느 때는 보수적인 가치를 따르기도 한다. 독자를 무조건 묶어놓으려 하면 안 된다. 독자에게 더 많은 선택의 재미를 줘야 한다. 기자들 역시 변하고 있다. 창간 이후 1998년까지는 <슈피겔>에 기자 이름은 전혀 표기되지 않았다. ‘집단적 책임’이란 원칙 아래 동질화를 추구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부터 글을 쓴 기자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젊은 기자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젊은 기자들이 자기만의 글쓰기 스타일을 드러내고 싶어했고, 이를 경쟁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편집장으로서 나는 이런 경쟁 구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은 새로운 독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 최근 <슈피겔>의 진보좌파적 지향이 다소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는데. = 온라인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서 전통적인 종이 시사잡지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 매체 확산과 함께 독자들이 연예오락물 쪽으로 경도되는 흐름은 다소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치·경제 등 무거운 이슈에 대한 수요도 여전히 많다. 다만, 잡지가 중도좌파 도그마에 빠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 비록 보수적 관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참신하고 세련되게 표현될 수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깊게 고민하게 하는 ‘멋지고 훌륭한 글’이라면 <슈피겔> 지면에 언제든지 실릴 수 있어야 한다. 독자에게 ‘생각의 유희’, 즉 자신의 생각을 살찌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잡지가 돼야 한다. -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한 의견은. = 모든 언론매체는 기존 독자와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독자의 수를 늘리기에 앞서 기존 독자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저널리즘이 안고 있는 문제는 소유주로부터 독립성이라고 들어왔다. 언론사 사주로부터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존 독자와의 좋은 관계도 틀어질 수밖에 없다. 글 조계완 기자 경제월간지 창간 준비팀 kyewan@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