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허문영.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허문영은 부산 ㄷ고등학교 출신인데, 내가 아는 이 학교 출신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었다(전에 쓴 박덕건도 이 학교 출신이다). 허문영이 군대를 카투사로 가려고 시험을 보기로 했다. 시험장에 주민등록증을 지참하고 가야 하는데 주민등록증이 없었다. 한참 전에 인천에서 술을 마시다가 술값이 없어서 그걸 잡혔던 것이다. 부랴부랴 찾아가보니 술집이 문 닫고 사라졌다. 어쨌건 그는 카투사를 갔고, 제대 뒤 <월간중앙>에 들어갔다. 그 무렵 허문영은 잠시 동안 훗날 소설가가 된 한 여자와 노래 가사처럼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사이로 지냈던 모양이다. 이 여자가 쓴 소설 중에 허문영과 똑같은 인물이 하나 등장했다고 한다. 그 소설이 나왔을 땐 아마도 둘이 ‘우정보다 먼’ 사이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갑자기 남의 소설 안에 들어앉은 자신을 보는 게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닐 거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허문영을 닮은 이 작중 인물을 두고, 저명한 한 문학평론가가 ‘이렇게 멍청한 캐릭터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며 비판까지 했단다. 난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리얼리즘 작가구나. 허문영을 무척 잘 묘사했구나.’ 허문영은 언제부턴가 영화 공부를 했다. 그 언론사에 그런 팀이 있었다. 시네마테크 필름포럼을 운영하는 임재철, <중앙일보> 영화기자를 했던 이영기, 영화와 미술에 관해 글을 쓰는 한창호 등이 허문영과 함께 영화 공부를 했던 이들이다. <씨네21>이 창간되고 몇 년 지나 허문영은 이 잡지 취재팀장으로 왔다. 그의 이직은 내 인생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도 몇 년 뒤 <한겨레>의 영화담당 기자가 됐고, 2002년 허문영이 <씨네21> 편집장이 됐을 때 <씨네21> 취재팀장으로 1년 동안 파견을 갔다. 사람이 참 잘 안 변하지만, 가끔씩 조금은 변하는 모양이다. <씨네21>에 가서 보니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던 그가 눈에 핏대를 세워가며 후배들에게 고함치고 닦달했다. 우유부단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과단성이 생겼다. (그가 고함을 지를수록 잡지가 좋아진 건 사실이다.) 전에는 둘이 있을 때 여자 만난 얘기(별 특별한 건 없었지만)까지 포함해 개인적인 일들을 다 말하더니 언제부턴가 과묵해졌다. 이 글에서 ‘허문영스러운’ 일화를 더 이상 들려주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표가 잘 안 나서 그렇지 전부터 그에겐 지사에 가까운 진지함이 있었다. 사소한 느낌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명징하게 분석해내는 그의 글이, 그의 진지함을 증명하지 않는가. <씨네21>을 그만두고 몇 년 전부터 허문영은 눈에 힘이 풀리고 바보처럼 ‘헤’ 웃는 표정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말수는 적어진 그대로다. 또 요즘엔 자주 보지 않아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시인 김정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글 잘 쓰는 놈은 뭐든 용서가 돼.” 임범 애주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