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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책 먹는 여우가 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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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22 15:42 수정 : 2010-01-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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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녀여름날…주택가 골목길을 돌아서니, 책 한 권에 웃음을 머금은 여학생을 만났다. 담벼락의 책 읽는 소녀와 함께 한낮의 더위를 잊는다.- bo2un / YES24 ‘책과 함께한 사진’ 공모전에서
책 읽는 소녀
여름날…주택가 골목길을 돌아서니, 책 한 권에 웃음을 머금은 여학생을 만났다. 담벼락의 책 읽는 소녀와 함께 한낮의 더위를 잊는다.- bo2un / YES24 ‘책과 함께한 사진’ 공모전에서

책을 좋아하시나요? 아, 책을 많이 읽는다고요. 그러면 어떤 종류의 책을 읽으시나요? 또 다 읽은 책은 어떻게 처리하시나요? 새해 벽두부터 웬 쓸데없는 질문을 하느냐고 나무라실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책을 너무나 사랑해 책을 먹어버리는 여우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읽는 여우>라는 책입니다. 간단하게 내용을 소개해드릴게요.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여우가 있었답니다. 여우는 책을 너무나 좋아해 다 읽은 책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어버리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돈이 없어 전당포에 물건을 맡겨 얻은 돈으로 책을 사서 읽고 먹던 여우는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자 도서관의 책까지 먹어치웠답니다. 그러나 읽은 책을 먹어치우는 여우가 당할 일은 당연히 ‘도서관 출입 금지’조치겠지요. 도서관에 갈 수 없는 여우는 거리에서 ‘광고지’와 ‘싸구려 신문’ 등을 뒤져 책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다가 병에 걸리고 맙니다. 결국 서점을 털다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여우의 책 먹는 버릇은 감옥에서도 계속되고, 이런 여우는 감옥에서도 ‘독서 금지’라는 징벌을 받게 됩니다. 책 없는 감옥에서 여우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냅니다. 자신이 직접 글을 쓰는 것이지요.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온 여우는 이미 상당한 지식을 갖추었고 이러한 지식은 글 쓰는 힘으로 나타나고, 여우는 결국 유명 작가가 되어 책을 훔치지 않아도 되는 부자가 됩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이솝 우화를 연상시키는 <책 먹는 여우>는 책이란 무엇인가를 넘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책들은 또 어떻게 보상해주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여우는 책을 먹기 전에 꼭 소금과 후추로 양념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여우의 이런 행위는 책 읽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러줍니다. 사전은 책을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그림 등으로 적거나 인쇄한 여러 낱장을 묶어 만든 것’으로 정의합니다. 한 권의 책에는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사상과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등장인물과 배경 등을 더하면 책이 담고 있는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합니다. 이 무궁무진한 것을 그냥 날로 먹다간 배탈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소금과 후추는 책에 담긴 무수한 정보를 자기에게 맞게 가공하는 조미료인 셈입니다. 이야기 속 여우는 길거리의 잡다한 인쇄물들을 먹다가 병에 걸립니다. 작가는 아마도 책을 가려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새해 첫머리에서 <한겨레21>은 인터넷서점 YES24와 함께 책을 소개하는 별책 부록을 만들었습니다. <책 먹는 여우> 이야기를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으로도 책은 지식을 저장하고 나누고 배우는 매우 중요한 매체로서 지위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정보가 디지털로 치환되는 정보화 시대에 책은 사라질 운명에 처한 올드 매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책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책의 형식은 바뀔지언정 ‘사상이나 감정을 담는 책의 기능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책은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책의 변화 방향은 늘 지식의 대중화 과정과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책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론을 들여다보면 책의 본질보다는 형식에 치우친 ‘산업’ 측면이 강조됐다는 걸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종이가 전자장치로 바뀐다고 해서 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식을 보관하고 전달하며 나누는 데 책만큼 좋은 매체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의 등장과 대중화로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책을 비롯해 책을 둘러싼 환경도 많이 변했고 변화하고 있습니다. 골목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던 동네 서점이 사라져갔고, 사이버 세상에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둥지가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저 독자의 자리에서만 머물던 일반인이 출판 권력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또 한 마리의 ‘책 먹는 여우’입니다. 책 먹는 여우는 결국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책으로 나눔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이 읽으실 이 별책 부록은 바로 사이버공간에서 열심히 지식 나눔을 실천해온 수많은 책 먹는 여우들의 합작품입니다.

부록이 소개하는 총 24권의 2009년 ‘올해의 책’은 YES24 회원을 비롯한 네티즌의 투표로 선정됐습니다. 올해로 7회를 맞은 ‘올해의 책’ 행사는 네티즌이 직접 좋은 책을 가려 뽑음으로써 일부가 독접해온 출판 권력을 공유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혹시 새해에 책을 읽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셨다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24권의 책은 여러분을 또 한 마리의 책 먹는 여우로 변신시키는 가이드가 돼줄 겁니다. 또 많은 이들이 함께 읽는 책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어떠한 사상과 감정으로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똑똑한 책 먹는 여우가 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여우는 책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글을 쓰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워가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별책 부록의 앞부분은 출판계에서 이름깨나 알리는 이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2010년을 이끌 트렌드를 키워드로 정리해 소개합니다. 또 출판사들이 준비하고 있는 2010년을 빛낼 출간 예정작도 소개해두었습니다. 2010년을 알차게 살아내고 싶은 분을 포함해 새롭게 독서 계획을 세우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는 곧 권력입니다. 진정한 권력은 하나를 위할 때가 아니라 모두를 위할 때 나오듯, 정보도 독점할 때가 아니라 나눌 때 가치가 높아집니다. <한겨레21>과 YES24가 함께 펴낸 이 별책 부록이 정보를 나누는 첫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0년의 첫 선물이 독자 여러분을 ‘책 먹는 또 한 마리의 여우’로 변신시키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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