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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역사는 책에 의해 새로 쓰인다

경술국치·한국전쟁·광주민중항쟁 등 기념일에 펼쳐보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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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22 14:12 수정 : 2010-01-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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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잔잔한 파도에 운율을 맞추며, 까칠한 모래 위에 누워 한줄 한줄 읽어내려갔던 휴식의 시간들. 책이 있어 평온했던 해운대의 풍경과 함께, 나는 해변의 카프카를 꿈꾼다. -supia74 / YES24 ‘책과 함께한 사진’ 공모전에서

해변의 카프카
잔잔한 파도에 운율을 맞추며, 까칠한 모래 위에 누워 한줄 한줄 읽어내려갔던 휴식의 시간들. 책이 있어 평온했던 해운대의 풍경과 함께, 나는 해변의 카프카를 꿈꾼다. -supia74 / YES24 ‘책과 함께한 사진’ 공모전에서

[한겨레21·YES24 공동기획] 책, 희망을 속삭이다/ 2010년 그날의 책

■ 2010년 경인년, 호랑이의 해

팥죽 할멈과 호랑이
2010년 경인년은 호랑이해이다. 호랑이는 맹수다. 맹수답게 설화 속에서도 악역을 맡는 일이 잦다. 그런데 특이한 악역이다. 최고의 악역 구미호보다 무척 어설프다. 곶감에 울고, 토끼에게 속는다. 얼음판에 꼬리가 끼기 일쑤, 가끔 가죽이 훌러덩 벗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구미호 잡을 때 쓰는 요술 삼색 호리병 따위가 없어도 쉽게 잡을 수 있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에서는 눈탱이 밤탱이, 코 물리고 똥침, 멍석말이에 줄 없이 번지 점프 콤보를 3초 만에 해치운다. 교훈이랄 게 있을까? 팥죽 좀 작작 먹어라? 아니면, 뺏어먹지 마라? 어쨌거나 호랑이해라서 그런지 그림책 속 한지 호랑이 인형이 쓰다듬어주고 싶게 정겹다. 호랑이, 아자!

산밭에 아지랑이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어느 봄날이었어. 팥죽 할멈이 팥밭에서 김을 매는데, 아, 글쎄 집채만 한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거야. “어흐엉, 할멈을 꿀꺽 잡아먹어야겠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 펴냄) 중에서

■ 겨울올림픽·월드컵·아시안게임

승리보다 소중한 것

힘찬 호랑이해에 스포츠 행사가 많다. 2월 밴쿠버 겨울올림픽으로 한 해를 시작해서 6월엔 광란의 축구 전쟁 남아공 월드컵을 찍고,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 2·6·11월로 응원 체력 비축 기간도 넉넉하게 주는, 환상의 스케줄이 기다린다.

핸드볼은 반드시 어느 한쪽이 공격하고 있고, 공이 가운데에서 빙빙 도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공수 전환의 속도가 빠르다. …예금통장과 인감을 거머쥔 주부처럼 골문을 사수한다. 골키퍼들의 영혼은 진공 속의 고독한 바위섬이며 육체는 무자비한 공을 맞는 골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핸드볼의 골키퍼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문학수첩 펴냄)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취재했다. 2000년 9월15일부터 10월1일까지 보름 동안 하루에 원고지 30매씩 채웠다. 엄연히 취재기자 신분으로 참석했지만, 아니, 그래서 더더욱 올림픽 관람기는 태만하기 그지없다. ‘지루한’ 개막식은 행사 도중에 나오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경기장에 가지 않는다. 그렇게 책을 엮고,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근사한 제목을 붙였다.

매일 어김없이 채운 원고지에 크게 웃게 하거나, 적어두고 싶거나, 인용할 만한 문구가 넘친다. 이런 것이다. “우리는 승리를 사랑한다. 승리를 평가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기분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깊이’를 사랑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승리하고 때로는 패배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문구가 겨울올림픽 뒤 아사다 마오에 열광하는 일본인을 위한 위로가 되길 바라 마지않는다.

■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

매천야록

100년 전인 1910년 8월3일, 문필로 유명했던 매천 황현이 자결했다. 그날 전남 구례 군청에서 한일합방령을 반포한 것을 알고 아편을 삼켰고 이튿날 운명했다. 그는 유서와 함께 시 네 수를 남겼다. 같은 달 22일에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돼 29일 공표됐다.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흰머리가 되기까지/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했지만 여태 그러지 못했구나/ 오늘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어/가물거리는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매천야록>(명문당 펴냄) 중에서

그의 절명시 네 수 가운데 첫 번째 시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100주년이라고 해서 99주년이나 101주년보다 더 특별한 해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200년, 100년, 10년에 한 번씩 새기고 기억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2010년에 떠올려야 할 사건들의 첫머리는 경술국치여야 하겠다.

<매천야록>은 황현이 정리하거나 기록한 글을 모은 문집이다. 일상사는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일기라고 할 수 없고, 작성 날짜를 기록해두지 않아서 편년체 역사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당시의 주요 기사를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함께 적었다는 점에서 ‘1인 저널’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당할 듯하다.

“근래 왜놈들이 서울과 각 항구에 화투국을 설치했다. 아둔한 양반이나 못난 장사꾼들 중 파산하는 자들이 잇달았다”라는 기사 다음 페이지에 “전 판서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죽었다. 처음 최익현이 도착했을 때 그에게 왜국 곡식으로 만든 죽을 주었는데, 물리치고 먹지 않았다”는 최익현의 자결 기사가 실려 있다. 표지의 황현은 자존심이 센 사람으로 보인다. 그가 본 100년 전의 풍경이 생생해서 더욱 스산하다.

■ 1810년 쇼팽과 슈만, <엘리제를 위하여>의 탄생

누구나 일주일 안에 피아노를 죽이게 치는 방법

1810년은 ‘피아노의 해’라고 할 만하다. 유명한 피아노 소품곡인 <빗방울 전주곡> <트로이메라이>의 작곡가들이 이 해에 태어났다. 1810년 3월1일에 프레데리크 쇼팽이, 6월8일에는 로베르트 슈만이 태어났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 ‘체르니는 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들의 이름이 붙은 연습곡집을 거쳐야 한다.

1810년은 또 다른 피아노 소품곡과도 연관이 있다. <빗방울 전주곡>이나 <트로이메라이>를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있지만, 이 곡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피아노 소품곡을 작곡하고 ‘4월27일, 엘리제의 추억을 위하여’라는 메모를 남겼다. 물론 이 곡이 자동차 후진을 알리는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한다. 아쟁이나 튜바 연주를 잘하는 데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있지만 피아노는 그렇지 않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가장 멋져 보이는 장면은 두말할 것 없이 그가 피아노를 치는 대목이다. <누구나 일주일 안에 피아노를 죽이게 치는 방법>은 제목만으로도 먹히는 책이다.

가수 겸 작곡가인 남자가 한 여자에게 반한다. ‘온몸에서 빛’이 나왔단다. 그는 그녀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엉뚱한 약속을 해버린다. 일주일 안에 피아노를 잘 치게 해주겠다는 것. 소설과 피아노 교본을 한 권에 묶는 시도는 분명히 세계 최초일 것이다. 소설 속에도 피아노 잘 치는 비결이 담겨 있지만, 본격적인 교습은 141쪽부터 시작된다. 첫쨋날 레슨은 ‘무조건 코드’이다.

악보에서 보이는 알파벳은 처음에 C와 F가 보이고 다음으로는 Dm, G, G7, E7이 보입니다. 바로 이 알파벳들을 코드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이 코드들이 바로 죽이는 피아노 세계로 당신을 이끌어줄 엑스터시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다면 당신은 비틀스처럼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일주일 안에 피아노를 죽이게 치는 방법>(에듀박스 펴냄)

이렇게 267쪽까지 7개 강좌가 실려 있다. 하루에 한두 쪽씩 배우는 피아노 교본에 비해 무척 빠른 진도표인 셈이다. 약간의 과장 광고를 감안하더라도 ‘죽이게 치는 방법’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피아노와 순식간에 친해지는 방법으로 추천할 만하다. 또, 이 책엔 다른 재미도 있다. 책 속 사연은 작가의 실제 이야기란다.

■ 1710년 최초의 저작권법 ‘앤여왕법’ 발효

당신은 지금 저작권 침해 중

1710년 앤 여왕 치하의 영국에서 법률이 발효됐다. 근대적인 의미의 저작권을 규정한 최초의 법률이었다. 후에 ‘앤여왕법’(Statute of Anne)으로 불리게 된 이 법률은 학술 진작을 목적으로 저자의 권리를 강화했다. 이전 메리 여왕 시대까지 출판업자들은 저자들에게 한 차례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영구적으로 저작물 출판을 독점할 수 있었다. 저자들은 출판조합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책을 만들 수도 없었고, 책 판매량에 따라 인세를 받을 수도 없었다.

앤여왕법에 의해 저자는 저작권을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됐고, 14년마다 출판권 계약을 갱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출판업자들은 출판된 책을 왕립 도서관 등 9개 도서관에 기증하도록 의무화했다. 책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권리의 범위와 시한을 규정한 것이다. 이때에는 번역·각색 등은 규정하지 않았다.

저작권은 생활 가까이에 있는 권리로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작’은 멀고 먼 이야기이다. 저작권법과 관련한 상황은 도로교통법만큼이나 자주 바뀌고 복잡하다. <당신은 지금 저작권 침해 중>은 그래서, 일종의 경고로 보인다.

책의 첫 장에는 저자의 도장이 찍힌 인지가 붙어 있다. 책의 판매량을 정확히 알기 위해 인지를 붙이는 건 요즘은 거의 하지 않는 일이다. 또 “이 책의 어느 부분도 성안당 발행인의 승인 문서 없이 일부 또는 전부를 사진 복사나 디스크 복사 및 기타 정보 재생 시스템을 비롯하여 현재 알려지거나 향후 발명될 어떤 전기적, 기계적 또는 다른 수단을 통해 복사, 재생하거나 이용할 수 없음”이라고 표기돼 있다. 저작권 소개서답다.

인터넷에 실린 다른 사람의 문서, 신문 기사, 음악, 영화, 게임, 캐릭터, 컴퓨터 프로그램, 설계도면, 사진 등과 같은 저작물을 저작자의 허락 없이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옮겨놓는 것은 저작자의 저작재산권인 복제권 침해에 해당한다. (중략) 취미 삼아 만드는 개인 블로그에 콘텐츠를 옮겨놓는 것처럼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라 하더라도 남의 글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저자명을 올바로 기재해주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저작권 침해 중>(성안당 펴냄)

앤여왕법은 300년 전에 제정됐지만, 한국이 저작권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한국이 국제 저작권 협약에 가입한 것은 1987년이다. 이제 고작 20년 남짓 지난 셈이다. ‘침해하면 고소당할 수도 있음’이라는 경고 문구 때문이 아니라, 에티켓으로 익힐 필요가 있다. 비상등을 켜는 것 정도로 양해가 되는 도로교통법 위반 사항도 있지 않은가.

■ 1610년 허준, <동의보감> 완성

소설 동의보감

1610년 72살의 허준은 25권 25책으로 이루어진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한국 전통의학을 ‘동의’라고 명명해서 중국의학과 다름을 분명히 했다. 제목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한국의학을 집대성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한 책이었다. 중국 약재명이 아니라 우리말 약재명을 적어 민간에 쓰이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노력했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늘의 우리에게 동의보감은 책 제목이라기보다는 일반명사에 가깝다. 방송 프로그램, 생활 정보, 간단한 의료 상식 책에도 모두 이 제목이 쓰인다. 허준 역시 실재했던 인물보다는 드라마 속 인물이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에서 찾을 수 있다.

허준은 소설보다 먼저 드라마로 대중 앞에 등장했다. 작가 이은성이 1975년에 대본을 쓴 <집념>이 그 드라마이다. 일일연속극 <집념>은 136회나 방송됐지만, 작가가 생각했던 결말까지 방송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중도 폐지 압력도 있었는데, 문제는 시청률이었다. 드라마 속에 간단한 생활 정보가 될 만한 한방 처방을 집어넣어 압력을 피해갔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위해 작가는 한의대와 한의사들을 찾아가서 웬만한 침구사 이상의 지식을 갖췄다. 이렇게 취재를 해 드라마를 쓰고서도 소설이 나올 때까지 10년이 더 걸렸다. 1984년 신문 연재를 시작하기까지 몇 차례 출판사 계약금을 돌려주기도 했다. 이렇게 뜸을 들인 허준이 세상에 다시 나왔을 때, 독자는 그 ‘집념’을 이해했다.

이제야 허준의 온몸에 피비린내가 풍겨나기 시작했다. 나흘 밤 사흘 낮 천황곡 빙곡의 바위골에서 맡고 맡고 또 맡았던 스승 유의태의 몸에서 쏟아지던 그 뜨거운 피비린내가… “사람의 위는 목구멍으로부터 한 자 여섯 치를 내려가면 심창골과 배꼽 중간에 각 네 치에 뻗쳐 위치했으며….” 일동이 숨을 삼키기 시작했다.

-<소설 동의보감>(창비 펴냄) 중에서

치료에 실패한 것으로 오해받은 허준이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소설 동의보감>은 완결을 짓지 못했다. 춘하추동 네 편으로 허준의 일대기를 완성할 예정이던 소설은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3권 출간을 마지막으로 결말을 짓지 못했다.

■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4·19, 1980년 광주항쟁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마치 훗날 학생들이 연도 외우기 쉽도록 정한 것처럼,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4·19 민주혁명, 1980년 광주 민중항쟁이 있었다. 이제 각각 60년, 50년, 30년 전의 일들이다. 소설 외에 이 사건들을 다룬 대중서가 드물다. 자료가 아직 남아 있을 때는 말할 수 없었고, 말할 수 있게 됐을 때는 증인도 증거도 사라졌기 때문일까.

“다들 워디 있냐?” “아부지는? 아부지 못 봤어?”

할머니와 내가 붙들고 안은 채 동시에 물었다. 할머니는 엉겁결에 아버지를 따라 뒷고샅 쪽으로 도망치다가 상여바위 앞에서 헤어졌다고 하셨다. 그사이 어머니와 동생이 나타났다. 마을 여기저기서 통곡은 계속 이어졌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그날, 나는 토벌대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죽은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눈빛출판사 펴냄) 중에서

2004년, 소설가 박도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서 한국전쟁의 실상이 담긴 사진 자료들을 발견한다. 40여 일간 수십만 매의 사진 자료를 들춰 480여 장을 엄선해 스캔할 수 있었다. 이렇게 펴낸 사진집을 소설가 김원일·문순태·이호철·전상국에게 원고 청탁과 함께 보냈다. 한국전쟁 체험담을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책이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이다.

인용한 글은 문순태가 겪은 일이다. 이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늘 그 수많은 죽음들에 놀라게 된다. 시장, 도랑, 청계천, 산속, 마을 어귀…. 이 사진집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검으로 사진에 담기지 않았어도, 프레임 밖에 틀림없는 죽음들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더욱 동족이 동족을 어떻게 이렇게 대량으로 처형할 수 있었을까.’ 한국전쟁을 겪었고, 그에 대해 많은 소설을 쓴 김원일의 의문이다. 겪은 사람이나 겪지 않은 사람이나 이 의문은 같다.

혁명과 웃음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은 알고 있다. 진압복을 입고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상명하복’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청년일 뿐이라는 것을. (중략) 1960년 가을, 젊은 만화가 김승옥의 눈에 포착된 제2공화국의 경찰은, 입고 있는 옷과 당장의 임무가 다를 뿐인, 같은 젊은이들이다. 경찰을 그린 만화가의 눈은 여유롭고 낙관적이며 낭만적이기도 하다. 대학생들의 힘이 경찰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혁명과 웃음>(앨피 펴냄) 중에서

김지하는 소설가 김승옥의 젊은 시절을 ‘다재다능함’으로 기억한다. 그 다재다능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서울경제신문>에 연재했던 ‘파고다 영감’이라는 네 컷 만화이다. ‘파고다 영감’은 불문학과 1학년생 김승옥의 2학기 아르바이트였다. 형편이 쉽지 않았던 김승옥은 막 창간한 <서울경제신문>에 연재만화 샘플을 보냈고, 1960년 9월부터 매일 아침 신문사로 출근해서 네 칸 만화를 채워넣었다.

<혁명과 웃음>은 독특한 책이다. 김승옥의 ‘파고다 영감’에서 4·19 혁명 뒤의 사회·정치·문화를 읽었다. 과외를 꼬집고, 정치인과 판사에게 야유를 날리고, 서민의 삶을 담은 네 컷 만화 옆에 당시 사건을 담은 해설을 곁들였다. 만화 가운데에는 2010년 어느 아침 일간지에서 읽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들이 있다. 해설과 함께 담긴 사진 자료가 풍부하다.

한국현대사 산책
계엄령 선포 후, 세상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지만 광주에서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신군부는 특전사 소속 7여단과 11여단 병력을 광주로 내려보냈다. 이른바 ‘충정훈련’으로 이미 ‘인간폭탄’이 돼 있는 병력이었다. 5월17일 오후 광주 상무 전투교육사령부에선 공수부대병력 1천여 명이 작전 개시 준비를 마치고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명령은 ‘화려한 휴가’였다. 그러나 그 ‘휴가’는 차마 필설로 다하기 힘든 ‘인간사냥’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권>(인물과사상사 펴냄) 중에서

<한국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권>에서 강준만이 1980년대 역사의 첫머리에 던지는 질문은 ‘왜 광주가 피 흘려야 했나?’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5월18일 이전의 상황에서 단서를 찾는 데 공을 들였다. 4월에 있었던 사북 탄광 노동항쟁, 언론 통제, 북한 남침설, 학원 민주화 열풍과 같은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 큰 그림을 그린다.

본래 그렇듯, 강준만에게 주저함이란 없다. 언론 보도와 관련자 증언을 통해 진실을 캐내는 것은 그의 전공이기도 하다. 비공식적으로 정전 기간이던 5월22일에 있었던 일도 당시 정보부 전남지부장인 정석환의 증언을 통해 듣는다. 계엄 당국은 김대중을 광주 폭동의 배후라고 발표했고, 전두환은 정석환에게 전화를 걸어 특전사령관에게 격려금 100만원을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1월1일 1710년 앤여왕법(the statute of Anne) 발효

2월12~28일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3월1일 1810년 프레데리크 쇼팽 탄생

3월26일 1910년 안중근 처형 집행

4월19일 1960년 4·19 민주화 혁명

4월21일 1910년 마크 트웨인 사망

4월27일 1810년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작곡

5월18일 1980년 광주 민중항쟁

6월5일 1910년 오 헨리 사망

6월8일 1810년 로베르트 슈만 탄생

6월12일~7월11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6월25일 1950년 6·25 전쟁 발발

8월13일 1910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사망

8월20일 1910년 이상 탄생

8월29일 1910년 경술국치

8월27일 1910년 마더 테레사 탄생

11월12~27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11월20일 1910년 레프 톨스토이 사망

글 YES24 도서팀· 정리 김병희 YES24 도서3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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