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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끄러움을 가르쳐드립니다

귀먹은 세상이 외면한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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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21 19:37 수정 : 2010-01-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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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YES24 공동기획] 책, 희망을 속삭이다/ 올해의 책 2009

소설가 공지영. 한겨레 이정아 기자
“진실을 결코 개들에게 던져줄 수 없어.”

예리한 통찰력과 속도감 있는 문장, 불합리와 모순에 맞서는 당당한 정직함,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뛰어난 감수성으로 우리 문단의 중심에 자리잡은 작가 공지영의 이 역작은 2009년 한 해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경제적 풍요와 성숙한 민주주의를 누리며 산다고 믿어온 우리에게 뜨겁고 아픈 질문을 던지게 만든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분노의, 연민의, 부끄러움의, 감동의 ‘도가니’이다.

주인공을 ‘가장 보통의 존재’로 설정

널리 알려졌다시피 <도가니>는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벌어진 성범죄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진지한 문제의식과 치밀한 취재가 뒷받침돼 끔찍한 범죄의 실상이 드러나고, 그것을 은폐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폭력과 부패한 실상, 그들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한 신출내기 교사의 양심과 갈등이 팽팽한 긴장 속에 펼쳐진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라는 자못 평범할 수도 있는 보편적인 주제가 작가 특유의 힘있는 필치에 힘입어 감동적으로 되살아난다.


가려진 사건의 끔찍한 실상을 알아가는 과정은 가쁜 호흡과 엄청난 흡인력으로 읽는 이를 끌어당긴다. 이것은 곧 주인공 강인호가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의 편에 서서 싸우며 진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착하고도 약한 마음의 소유자, 신출내기 교사에 불과한 ‘가장 보통의 존재’ 강인호는 그대로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다. 정의와 상식을 믿고 근본적으로 성실하고 선한 마음을 지녔으며 불의와 폭력 앞에서 분노하는 보통 사람, 그러나 그 불의와 폭력의 엄청난 힘 앞에서 두려워하고 갈등하는 모습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결말 부분에서 보여주는 강인호의 깊은 번민과 도피, 함께 싸우던 서유진의 엇갈린 행보와 패배는 크나큰 무게로 독자의 가슴을 친다. 내가 강인호라면, 내가 서유진이라면, 그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거짓을 모른 체한다는 것, 진실을 알려 하지 않는 것이 곧 이런 폭력을 방조하는 건 아닌가. 작가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으로 빚어낸 빛나는 문장들 속에서, 질문은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이자 매력이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힘은 결국 사랑

〈도가니〉

현실의 법정 공방이 가진 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끝났듯, 작품 속 강인호들의 분투도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와 절망을 남긴 채 패배로 끝난다. 그러므로 결국 힘의 논리 앞에 굴복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작품은 나직하고 감동적으로 속삭여준다. 강인호의 갈등을 깊이 이해하고, 패배한 자리에 남아 아이들을 보듬어 자활공동체를 만든 서유진의 마지막 편지, 그것을 읽는 강인호의 눈물을 묘사한 간결한 문장을 읽고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는 없다. 진정 귀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는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는 아주 단순하고 자명한 진실을 이보다 감동적으로 전해주기는 어렵다.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할 만큼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과 속도감을 지닌 이 소설은 귀먹은 세상이 차갑게 외면한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거짓과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쏘아올린 용기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세상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다. / 김정혜 창비 문학팀장

<도가니>
공지영 지음/ 창비 펴냄

YES24 올해의 책 득표: 1만1529표, 남성 34.2%, 29살 이하 38.9%

무모한 아름다움- 콸츠(quartz2)

불편한 진실에서 도피하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문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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