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예를 들면 특허권이라는 문제가 있다. 의약품의 특허권을 거대 자본이 보호하기 시작하면서, 그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죽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저작권도 비슷하다. 특허권과 저작권은 ‘지적재산권’으로 묶인다. “아이디어는 특허를 받을 수 없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만이 특허가 가능하다”라는 논리에 따라 특허권에서 밀려난 아이디어를 보장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저작권이다. 버터 자르는 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수준에서는 특허가 되지 않는데, 이 아이디어를 글로 적어놓고는 자본의 힘을 빌려 보호하는 것이 저작권이다. 저작권이 자본주의 시스템 내로 들어가자, 저작자마저도 권리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생겨난다. 노벨의학상 수상자 해럴드 바머스가 논문 출판 6개월 뒤 온라인에 자료를 공개하라고 출판사에 요구하자 출판사는 거절했다. ‘도서관 죽돌이’로 지내는 학자들은 학술지에 거의 무상으로 논문을 제공하고, 이 논문은 학술지로 묶여 도서관만 살 수 있는 비싼 가격에 팔린다. 2000년 프랑스에서 출판사들은 도서관이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며 책 대여세를 물리려 했다. 공공재에 ‘소유권’을 부여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자본주의로서는 더 눈이 벌게서 새로운 ‘권리’를 찾아헤맬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운명이다. 금과 화폐는 모두 ‘항문적’ 경제학에서 출발해 인간의 삶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책 제목의 ‘케인즈와 프로이트’ 결합에서 분명해진다. 1920년대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준비하던 시기, 프로이트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그의 책에는 콤플렉스, 리비도, 우울 같은 프로이트 용어가 가득하다. 프로이트의 돈에 대한 성찰은 케인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면, 금과 화폐는 모두 ‘항문적’(발음대로 쓴 것 아님)이다. 비약하자면 자본주의 경제학은 학문이 아니라 항문이다. 여기 다시 죽음도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물신이란 삶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인 죽음까지도 부정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죽는 것도 모르고 똥물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가련한 자본주의 시민에게는 어떤 구제가 있는 것일까. 비관적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