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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2010년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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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30 11:13 수정 : 2009-12-3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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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상실의 시대였다. 좋아하고 존경했던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고, 2PM의 재범은 한국을 떠났고, 문화방송 <100분 토론>의 손석희는 TV를 떠났다. 자의처럼 보였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빵꾸똥꾸들’에 의한 것이었음을 안다. 그러니 서울 광화문 화단에 꽃을 심건 스노보드를 타건 구경 갈 시간도 같이 갈 애인도 없는 나로선 “성질이 뻗쳐서!”를 외치면서도 TV 속 남자들, 즉 ‘그림의 떡’을 찾아다니며 눈과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밖에.

2010년의 남자들

그래서 새해에도 활약이 기대되는 남자를 먼저 꼽자면 역시 문화방송 <선덕여왕>에서 비담이라는, 사극 사상 전무후무하게 섹시한 캐릭터를 연기한 김남길이다. 지난가을, 흙먼지 날리는 세트장에서 목소리가 유달리 좋은 그를 인터뷰하고 기사를 쓴 뒤 그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의 부럽다는 전화를 어느 때보다 많이 받았다. 심지어 2월에 엄마가 되는 한 친구는 아이의 태명을 ‘비담’이라고 지었다는데, 회사 일에 지쳐 돌아온 남편의 유일한 낙이 비담을 보는 거였기 때문이란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것처럼 강렬한 남자가 현실에서는 조금 부담스럽다면 SBS <그대 웃어요>에서 소심하지만 책임감 강하고 배려 깊은 남자 강현수를 연기한 정경호도 있다. 초식동물처럼 호리호리한 체격에 착하게 생긴 얼굴이 일상적인 연기와 만날 때의 매력은 어지간한 재벌 2세보다 큰 것이어서,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여사원 몇몇은 소개팅에서 꼭 만나고 싶은 스타일이라며 그를 열렬히 지지했다.

일상 속의 남자들이라면 문화방송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이지훈(최다니엘)과 정준혁(윤시윤)을 빼놓을 수 없다. 부장님 몰래 땡땡이치는 회사원을 연기한 CF로 얼굴을 알렸던 최다니엘은 한국방송 <그들이 사는 세상>에 이어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 그러나 현실에서는 도통 보기 힘든 매력으로 커리어 굳히기에 들어갔고, 20대 중반의 나이에도 고등학생 역이 어색하지 않은 윤시윤은 최근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내 팬티를 누가 빠는가’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존재를 알렸다.

첫 회가 방송된 다음날 사무실 분위기를 마치 H.O.T 데뷔 다음날의 여중 교실처럼 술렁이게 했던 SB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의 차강진(고수) 아역 김수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 제일 매력적인 남자는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의 박성광이라 하겠다. 세상에, 요즘 같은 시절 그것도 한국방송에 나와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 1등만 성공하는 더러운 세상!” 같은 ‘반동적’ 구호를 외치다니 비록 술기운이라도 그보다 더 섹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래, 니들 땅 사라, 땅 부자 돼! 근데 강부자씨는 뭔 강을 사서 강부자냐?”라는 절묘한 유머 감각까지, 2010년에는 세상에 이런 남자들이 좀더 많아지면 좋겠다.

최지은 <텐아시아> 기자·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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