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약물사랑’
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마약은 나쁜 것인가. 음악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병원에서 국부 마취를 위해 코카인을 흡입하고 두 시간 만에 오페라 아리아 두편을 완성했다. 시인 보들레르는 아편과 대마초의 일종인 해시시에 찌들어 살면서 그 힘으로 <악의 꽃>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써냈다. 비트작가인 윌리엄 버로스는 평생 수십 가지 마약을 하면서 <벌거벗은 점심> 같은 문제작을 냈고 75살까지 살았다. 마약은 좋은 것인가. 약물을 통해 투시력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프랑스 극작가 앙토냉 아르토는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아편을 구걸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갔다. 버로스와 어울렸던 비트작가 잭 케루악은 대마초와 여러 마약에 찌들어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요절했다. 보들레르 역시 견디기 힘든 금단현상을 겪으면서 도취에 대한 찬미를 거둬들어야 했다.
독일학자 알렉산더 쿠퍼의 <신의 독약>(책세상 펴냄)은 선사 이래로 인류와 함께한 약물의 문화사를 살핀 책이다. 작가는 자료의 고증을 통해 고대 동서양의 약물의 등장과 그 변천을 다루면서 역사 속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도취에 빠지고, 그 탐닉이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탐구한다. 고대 이후 18세기까지 약물은 주로 종교나 질병치료, 사교적인 동기로 이용됐다. 아편은 독살예방제로도 널리 이용됐는데 금욕주의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조차 아편중독자였을 정도로 귀족들 사이에서 널리 애용됐다.
인간성뿐 아니라 도취제의 억압기였던 중세를 지나 16세기 들어 약물은 다시 범람하기 시작했는데 값싸게 보급된 브랜디는 민중을 취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비시킬 정도로 폭음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약물의 역사에서 19세기의 낭만주의 사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종교제의나 사교모임 등 집단의 이벤트였던 약물이 철저히 개인적인 도취의 시대에 이른 것이다.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환멸을 느낀 예술가들은 일종의 형이상학적 여행의 방식으로 도취제가 제공하는 기이한 체험에 몸을 던졌다. 젊은 예술가들은 아예 ‘해시시 클럽’ 등의 약물 동아리를 만들어 도취상태에 빠질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예술가들의 약물사랑은 20세기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방가르드운동을 거쳐, 미국의 비트 제너레이션과 플라워 무브먼트, 그리고 사이키델릭 예술에까지 약물은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였다.
독특한 점으로 술 역시 도취약물로 간주해 ‘현대예술과 문학에서의 알코올’이라는 장을 할애하고 있다. 19세기 녹색의 마술이라고 불렸던 압생트를 비롯해 술은 마약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들의 에너지를 자극하고 몸을 망가뜨린 촉매 역할을 했다. 압생트에 중독됐던 빈센트 반 고흐는 <밤의 카페>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다. 화가 모딜리아니나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 역시 술로 자극받고, 몸을 파괴했다.
작가는 현대인이 “도취제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은 모던한 현실과 대결하는 한 가지 형식”이라고 말했다. “약물은 세계를 좀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메시지의 조달자인 동시에 끔찍한 일상 현실을 피하게 해주는 도피의 조력자”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도피를 돕는 약물을 완전히 금지한다는 것은, 인간을 압박하고 불안하게 하는 시간 속에 개인을 무방비상태로 던져넣는 것과 같다”. 쿠퍼의 결론도 김진석 교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조건적인 금지나 완전합법화 같은 안일한 방법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포괄적인 의식세계를 이해하려는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