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과의 대담 실은 <사회비평>의 도발적 문제제기 “마약은 범죄가 아니다”
문신과 피어싱, 술과 담배, 극단적 다이어트, 자살. 이것들과 마약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몸을 가해한다는 사실이다. 차이점은? 전자들은 하는 데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반면 마약을 하는 것은 ‘치명적인’ 범죄행위다. 왜 그럴까? 마약은 반사회적인 범죄를 유발하며 건강뿐 아니라 인격까지 파괴시키는 위험물질이니까. 정말 그럴까?
“위험하다”는 의학적 판단은 순수한가
계급문제, 인종문제, 동성애를 포함한 성문제 등 수백년, 수천년 동안 지켜져왔던 성역들이 활짝 또는 살짝 열린 21세기에도 처벌과 치료책을 제외한 마약논의는 금기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마약이 기호품으로 널리 사랑받았음을 상기한다면 오늘날 마약이 살인만큼이나 명백하고 부정적인 판단을 내포하는 단어가 됐다는 사실은 놀랍다. 최근 발간된 계간 <사회비평> 여름호는 매우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마약 사용, 범죄가 아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마약사범’으로 네번의 전과기록을 가지고 있는 가수 전인권씨와 김진석 교수(인하대 철학과)의 대담이다. 평소 인터뷰에서 “다시는 안 하겠다” 정도로 마약문제를 넘어갔던 전씨는 처음으로 마약에 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마약은 좋은 건 아니지만, 필요할 수는 있다”고 말한 전씨는 “국가가 개인의 외로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외로움을 달랠 권리를 가지고 있느냐”는 목소리를 높였다. 전씨는 또한 대마초나 필로폰 흡입을 중단했던 사이 술 때문에 오히려 음악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마약을 사용해서 최소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이걸 범죄로 생각할 하등의 필요가 없다”는 김 교수의 지적에 이어 “(마약을 했다는 사실보다) 마약을 하고 무슨 짓을 했는가를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전씨의 주장은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개인의 자유가 우선시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김씨는 대담을 잇는 글 ‘통제 및 치료권력의 구조’에서 불과 한 세기 동안 만들어진 마약의 ‘신화’를 벗겨내는 시도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약과 비슷한 각성작용을 일으키는 술과 담배 등은 무제한 허용되면서 단지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만으로 마약은 금지하는 것이 마땅한가. 그렇다면 왜 남을 죽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 자동차나 많은 사람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돈은 통제되지 않는가. 이 글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김씨는 법적제도나 관습이 관리해온 규제와 금기들이 느슨해지고 있는 추세와는 반대로 갈수록 마약에 대한 통제가 강해지는 이유로 치료권력의 문제에 주목한다. 마약 이외에도 개인의 안전과 건강을 망가뜨릴 수 있는 문제들은 도처에 깔려 있음에도 “마약이 가장 위험하다는 논리는, 아무리 그것이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모양을 하더라도 많은 부분 허구적”이라는 게 김씨의 지적이다. 근대 이후 개인의 통제방식으로 병원 또는 치료권력의 부상을 읽어낸 미셸 푸코의 분석처럼, 김씨는 “‘위험하다’는 의학적 판단이 순수하게 과학적인 차원에서 내려지기보다는 정치적인 맥락을 띤다”고 힘주어 말한다. 여기서 ‘위험하다’는 것은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의미다. 처방마약의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
치료기술의 엄청난 발전 이후 의학적 권위는 생명 연장이나 치료의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개인의 육체에 해를 끼칠 위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유포시켜왔다. 예를 들어 20세기 이후 시작된 암 연구와 치료는 그 성과보다 음식물, 자외선, 흡연 등 암을 유발시키는 위험물질에 대한 불안감을 더 크게 키웠다. 그 결과 개인들은 약품 사용에 대한 선택권을 전부 의사의 판단에 넘겨주게 됐고, “의학적 지식의 절대적 권한은 바로 정치적 통제와 같은 궤적에 있다”는 것이다. 마약중독자들이 순수한 ‘환자’가 아닌 범죄자에 가까운 환자로 강제적인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의학적 제도가 정치적 통제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의사나 치료권력은 마약의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여기서 남용이란 “의학적-약학적 권위에 의해 조절되거나 통제되지 못하는 사용”을 의미한다. 만약 의사가 마약 ‘남용’을 막는 역할을 한다면 처방마약 역시 감소해야 할 텐데 현실은 반대라는 게 김씨의 반박이다. 예를 들어 근본적으로 향정신성 약물이라는 점에서 마약과 유사한 항우울제인 프로작의 96년 미국 내 판매율은 궤양약과 고혈압약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마약에 대한 통제가 엄해질수록 처방마약의 수요는 늘어난 셈이다. 결국 마약금지는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제도적 통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약이 국가의 억압적인 정책만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의 자발성도 일정 정도 기여하는데 여기에는 형식적인 도덕주의의 잣대가 적용된다. 형식적인 도덕주의의 잣대는 원조교제와 미성년매춘은 묵인하면서 소설가 장정일과 영화 <거짓말>을 법정을 세운다. 사실 마약의 해악은 계몽돼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마약 ‘남용자’는 사회가 생산하는 도덕적 희생의식의 희생양”이라는 김씨의 분석이다.
법적제도가 ‘범죄’로, 의학적 기구가 ‘위험한 병’으로, 사회적 도덕주의가 ‘타락’으로 옭아맨 마약은 제대로 인식되기보다는 “주술적인”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이런 현실은 남용을 부추긴다. 그리고 단속에 의해 적발되는 것은 당연히 이미 주목받고 있는 요주의 인물과 계층들이다. 그 결과 더 많은 마약사범이 양산되고 처벌은 더욱 가혹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근절’, ‘퇴치’ 등의 극단적 표현 없애자
하지만 김씨는 마약의 사용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에만 맡긴다거나 금지한다거나 하는 단순한 결론이 가지는 위험성도 지적한다. 마약사용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질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환경의 개선에 대한 노력없이 맹목적인 금지나 처벌만을 강요한다면 결국 재기 불가능한 범죄자들만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마약에 빠져들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이 개선되고 개인의 자율성이 성숙돼도 마약이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약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근절’, ‘퇴치’ 등의 극단적 표현을 없애는 것이다. 마약문제는 모기나 바퀴벌레를 잡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씨가 분석한 대로 마약문제는 개인과 권력에 관한 복잡한 그물망으로 얽혀 있으며, 이것은 바로 개인과 한 사회의 철학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마약사범’으로 네번의 전과기록을 가지고 있는 가수 전인권씨와 김진석 교수(인하대 철학과)의 대담이다. 평소 인터뷰에서 “다시는 안 하겠다” 정도로 마약문제를 넘어갔던 전씨는 처음으로 마약에 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마약은 좋은 건 아니지만, 필요할 수는 있다”고 말한 전씨는 “국가가 개인의 외로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외로움을 달랠 권리를 가지고 있느냐”는 목소리를 높였다. 전씨는 또한 대마초나 필로폰 흡입을 중단했던 사이 술 때문에 오히려 음악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마약을 사용해서 최소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이걸 범죄로 생각할 하등의 필요가 없다”는 김 교수의 지적에 이어 “(마약을 했다는 사실보다) 마약을 하고 무슨 짓을 했는가를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전씨의 주장은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개인의 자유가 우선시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김씨는 대담을 잇는 글 ‘통제 및 치료권력의 구조’에서 불과 한 세기 동안 만들어진 마약의 ‘신화’를 벗겨내는 시도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약과 비슷한 각성작용을 일으키는 술과 담배 등은 무제한 허용되면서 단지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만으로 마약은 금지하는 것이 마땅한가. 그렇다면 왜 남을 죽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 자동차나 많은 사람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돈은 통제되지 않는가. 이 글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김씨는 법적제도나 관습이 관리해온 규제와 금기들이 느슨해지고 있는 추세와는 반대로 갈수록 마약에 대한 통제가 강해지는 이유로 치료권력의 문제에 주목한다. 마약 이외에도 개인의 안전과 건강을 망가뜨릴 수 있는 문제들은 도처에 깔려 있음에도 “마약이 가장 위험하다는 논리는, 아무리 그것이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모양을 하더라도 많은 부분 허구적”이라는 게 김씨의 지적이다. 근대 이후 개인의 통제방식으로 병원 또는 치료권력의 부상을 읽어낸 미셸 푸코의 분석처럼, 김씨는 “‘위험하다’는 의학적 판단이 순수하게 과학적인 차원에서 내려지기보다는 정치적인 맥락을 띤다”고 힘주어 말한다. 여기서 ‘위험하다’는 것은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의미다. 처방마약의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

사진/ ‘마약전과 4범’전인권의 콘서트 모습. 그는 “국가가 개인의 외로움을 달랠 권리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