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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믿을 수 없는 ‘인체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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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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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자 지도의 신빙성 놓고 논란… 과학의 맹목적 환상에 회의적 시각 필요

사진/ 셀레라사와 인간게놈 프로젝트팀 관계자가 지난 2월12일 유전자 지도 완결사실을 발표하고 있다.(SYGMA)
현대 과학기술의 내용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현상은 이전의 근대과학기술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한 가지는 엄청나게 빠른 전파속도이다. 예를 들어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공표했을 때 이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극히 소수였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지금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과학발전의 소식과 그 결과물이 전파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발표된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예와 같이 과학에서는 이제 전 지구적으로 단일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는 근대과학과 달리 현대과학이 자본주의적 속성, 즉 돈을 벌게 하는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발표는 단순히 학문적 의미에서 그 과학적 내용을 알리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그 내용을 모태로 한 결과물을 판매할 수 있는 좋은 선전의 효과까지 겸하고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연구환경이 척박한 나라에서 이른바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 과학’을 하는 연구자들의 고생은 매우 크다. 과학적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은 분명 과학, 문화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과도할 경우에는 엄청난 부작용이 따른다.

그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는데 한 가지는 과학적 사실의 본질에 관한 오해이며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그에 대한 오남용이다. 전자의 오류의 전형적인 예는 과학적 사실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개념을 본질로 오해해 이를 설파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더러의 인문사회학자들이 카오스 이론이나 프랙탈 이론과 같은 내용을 오해해 이를 괴이한 불가지론이나 전혀 새로운 차원의 뉴에이지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우려할 만한 정도이다. 소칼의 사기(Sokal’s Hoax) 사건은 그 전형적인 모습이다. 또는 생물학이나 지질학의 비전문가 그룹들이 나름대로의 아마추어적 지식과 열렬한 신앙의 힘으로 무장해 어이없는 창조과학을 ‘창조’해내는 것 이러한 유의 현상이다.

특히 과학적 내용이 대중에 발표되어 바람몰이를 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전 국내 한 병원에서 인간의 체세포 복제에 성공을 했느니 안 했느니, 외국에서 인정을 하느니 못하느니 등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이 역시, 내용에 비해서 선전이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여하간 매스컴에 의한 선점효과는 과학기술계에서도 매우 유용한 전략이다. 특히 정부주도의 기술개발에서 어떤 위원회를 구성할 경우에는 대부분 실무작업을 하는 선에서 먼저 매스컴이나 신문 지상에 제법 ‘뜨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이런저런 자문을 구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하다보면 아무래도 다소의 편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왜 교수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논문지에 발표하기 전에 먼저 언론에 알리는가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권위있는 연구논문지라는 것이 심사에서 발표까지 짧게는 반년 길게는 3∼5년까지 걸리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새뮤얼 칼린, 유전자 조합 방법론 의문 제기

얼마 전 미국의 셀레라사에서 발표한 인간 유전자의 전체 서열이 완성되었다고 큰 발표가 있었다. 인간의 달착륙에 비교할 만한 세기적인 작업이라느니, 새로운 과학문명의 한획을 긋는 작업이라느니 엄청난 찬사와 기대를 한몸에 받은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정말 올바른 실험이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의구심을 갖지 못한다. 그 수억개의 염기서열이 얼마나 정확한지 판별한 사람을 그 셀레라의 연구원들조차도 사실상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소개된 스탠퍼드대학의 새뮤얼 칼린(Samuel Karlin)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셀레라사에서 발표한 인간 유전자의 전체 염기서열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엉터리라는 것이다. 칼린 교수가 시비를 거는 부분은 셀레라사에서 채택한 순수 샷건(Pure Shotgun)방식이라는 유전자 조합 방법론이다. 셀레라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유전자 서열을 완성할 수 있었든 그 근원적인 배경은 바로 이 샷건 방식에 있다. 이 방식은 전체 유전자를 임의의 크기로 무작위로 잘라서 그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엄청난 용량의 컴퓨터를 통하여 추적하는 기술이다. 이 방식을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같은 호수의 잡지 8권을 구입해서 그것들의 페이지를 각각 임의의 크기로 마구 잘라서 그들간의 일치되는 부분을 봐가면서 다시 잡지의 원래 페이지 순서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실험결과에 영향 끼치는 정치적 판단

칼린 교수는 이미 그 유전자 서열 순서가 잘 알려진 파리의 유전자 데이터를 이용해서 셀레라사가 사용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역으로 재조합해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50% 정도의 유전자는 참을 수 있는 수준의 정확도를 보였지만, 나머지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정도로 부정확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칼린은 이미 구축돼 있는 다른 연구소나 공공의 데이터베이스에 더 심각한 수준의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유전자의 존재여부와 그 위치와 기능은 구체적인 생물실험으로만 밝힐 수 있다. 즉 전체 유전자 서열에서 이 부분이 파리의 눈 형성에 관계된 유전자라는 것은 결국 그 부분을 제거하거나 또는 복사해서 추가로 넣었을 때 눈이 사라지거나 더 생기거나 하는 실험결과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순서이다. 물론 이 방법 역시 완전한 사실이라고 단정하기에 문제가 있지만 여하간 이런 실험을 통하지 않고 단순히 그 서열의 유사한 모양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컴퓨터 실험으로 유전자를 파악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매우 많다. 물론 컴퓨터를 동원하는 것이 실험경비와 시간을 단축해주는 게 사실이지만 아직 실험전체를 대치할 만한 수준은 아니며, 앞으로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다. 또한 셀레라사에서는 그들 역시 자신들이 발표한 일차 유전자 전체 서열이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많은 최종 마무리 작업이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칼린의 주장대로 50% 정도의 유전자 위치에 대한 결과가 엉터리라면 이는 크나큰 문제이며, 이미 샷건방식을 의심없이 채택하고 있는 수많은 연구소의 결과 역시 그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혼란의 근원은 바로 실제로 구성된 유전정보를 인간이 직접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방식은 이런저런 외부적으로 나타난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유전자 구조를 예측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대용량의 컴퓨터가 동원되고 어머어마한 실험장비와 인력이 동원된다고 해도, 최종적인 과학기술의 결과가 구성되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회적 합의와 구성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런 말을 하면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한 실험결과를 두고 그것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결정에는 결국 그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묵시적인 ‘투표’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또는 아주 강력한 지도력이 있는 과학자가 “그것은 이렇게 보아야 하겠지…”라고 해석의 ‘방향’을 지도하는 형식도 사용된다. 과학기술은 실험결과의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이 역시 사회적인 문화변동의 모든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 과학기술은 어느 총명한 과학자의 열정과 노력과 실험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둘러싼 여러 정치체계, 그들 참여연구원들간의 수많은 반목과 협조, 그리고 합의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셈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본질은 그 깊은 내부에 흐르는 정치문화적인 사실까지 고려해서 살펴볼 때만이 비로소 제대로 파악된다고 할 것이다.

<사이언스>가 논문을 발표하지 않는 까닭

사진/ 셀레라사는 순수 샷건 방식으로 인간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밝혀냈다.
우리 사회에서도 새로운 치료법과 신약이 하루가 멀다하고 방송에 소개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전자 서열에 국내 연구진들의 결과물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띄우기식 발표에 앞서 상당한 수준의 검증과 확인작업이 연구자 내부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 역시 “정말 그런가?”라는 건강한 회의적 시각을 항상 견지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띄우기식 발표에 관한 책임은 뭔가 튀는 기삿거리에 목말라하는 방송언론 종사자들이 상당부분 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사실 무근으로 끝난 포르말린 번데기 통조림 사건만 해도 마치 모든 통조림 업자들이 악의적으로 포르말린을 넣고 있는 듯한 식의 보도에 문제가 있었다. 이에 화답하여 검찰이 모조리 업자를 기소해 결국 무죄로 풀려났지만, 이 파동으로 업자들은 완전히 도산했다고 한다. 결국 포르말린에 대한 대중의 비과학적인 판단, 즉 ‘포르말린=시체용 방부제’라는 공식이 빚어낸 비극이다. 해당 업자들의 억울함은 과연 누가 보상해줘야 하는지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내용의 논문을 칼린이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제출했는데 아직 몇달째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이언스>는 칼린의 논문을 묵혀두고 그에 앞서 대대적으로 셀레라사의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아마도 칼린의 내용이 그 위대한 업적에 누를 끼친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간 칼린의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Nature) 411호에 발표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질 셀레라사와 칼린간의 유전자 전쟁이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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