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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386 세대의 추억 놀이

클로버문고를 복원하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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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26 11:05 수정 : 2009-11-2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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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문고의 향수〉. 임재헌 제공
“30여 년 만에 친구를 만나 가슴이 벌렁거립니다.”(chk1327) ‘오십을 바라보는 대머리 아저씨’를 순식간에 아이로 만들어버린 건 다름 아닌 <클로버문고의 향수>(한국만화영상진흥원 펴냄)라는 책 한 권. 클로버문고 각권에 대한 정보와 창간 당시의 발간사, 표지, 내지 그림, 사용된 컬러 배색 정보까지 촘촘하게 수록돼 있다.

클로버문고는 1972년부터 1984년까지 어문각에서 발행한 어린이교양총서로, 429권 가운데 389권이 만화로 구성된 사실상 만화총서였다. 길창덕의 <신판 보물섬>, 윤승운의 <요철 발명왕>, 고우영 <대야망> 등 쟁쟁한 국내 만화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바벨 2세> <유리의 성>과 같은 일본 만화도 포함돼 있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던 1970~80년대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당연한 일.

편저자로 이름을 올린 ‘클로버문고의 향수 카페’(이하 클향)는 이름 그대로 클로버문고를 추억하는 동호회다. “클로버문고는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와 더불어 4대 어린이 교양서였어요. 기존의 대여점용 만화와는 달리 수준이 높아 만화책 보는 걸 싫어하는 부모님들도 사주시곤 했죠.” ‘클향’의 운영자 임재헌(41)씨는 클로버문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용돈을 아껴 클로버문고를 직접 구입하고, <바벨 2세>의 저자로 이름을 올렸던 김동명 선생에게 엽서를 보내는 어린이였던 그는 어른이 되어 클로버문고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보를 검색하던 중 ‘클향’을 발견했다.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스태프가 되었고, “외모와 인품”을 인정받아 62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이 카페의 운영자가 되었다.

임재헌씨의 전화번호 뒷자리는 1968이다. 카페 아이디 뒤에는 숫자 87이 붙어 있다. 짐작대로 그는 1968년생, 87학번이다. 세대 의식이 유난히 강하다고 해야 할까. 그처럼 386세대가 대부분인 이 카페 회원들은, 추억을 공유하고 복원하는 것도 세대 특성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여느 동호회처럼 클로버문고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가끔 오프라인 모임을 하면서 추억을 공유하다가 이럴 게 아니라 우리의 기억을 모아 책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1984년 총서 발간이 중단되고 남아 있는 책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회원들은 조각난 기억에 의지해야 했다. 한 회원이 어떤 만화책에 대한 기억을 남기면, 줄줄이 댓글이 달리면서 책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이 속속 불어났다. 기억이 달라 옥신각신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면서 클로버문고에 대한 기억을 모자이크처럼 복원해갔다. 이렇게 방울방울 모인 추억이 753쪽, 필자 42명, 기획, 자료 제공자까지 합치면 60여 명이 참여한 거대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기획부터 편집까지 1년3개월이 걸렸다.

편집에 참여한 회원들 대다수가 직장인이라 평일엔 퇴근 뒤에, 주말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고생 끝에 책이 나왔고, 지난 11월17일에는 신문수·윤승운 등 만화가들을 모시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책을 준비하면서도 정말 나올까 싶었는데, 이렇게 나왔네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클로버문고 복간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옛날 판형,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서요.” 40대 아저씨 안의 어린아이가 신명을 냈다. 추억은 어른의 새로운 놀이가 되었다.

김송은 월간만화잡지 <팝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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