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실제 이 작품 집필을 마친 이후 톨스토이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소설 속에서 비판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참되게 살기로 결심한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앞선 삶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는 <참회록>을 써 이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잘 사는 법’에 대해 죽는 날까지 집요하게 설파해댔다. “톨스토이는 햄릿처럼 생각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란 평가가 절묘하다. ‘성자’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톨스토이의 ‘고행’은 그칠 줄 몰랐다. 16살 차이가 나는 톨스토이와 그의 부인 소피야 베르스는 1862년 결혼한 이래, 반세기 만에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끝없이 부부싸움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소피야를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에 버금가는 ‘악처’로 몰아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피야는 결혼 직후부터 27년 동안 무려 16차례 임신을 했고, 13명의 아이를 낳았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끊임없는 임신과 출산·수유로 보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악필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원고를 일일이 깔끔하게 정서해준 훌륭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물론 악다구니긴 했지만, ‘콩가루 집안’의 책임을 그에게만 들씌우는 건 부당해 보인다. 80대 대문호의 가출과 마지막 유언 1910년 10월28일 새벽 톨스토이는 ‘가출’을 감행했고, 20여 일 만에 그는 러시아 서부의 한적한 간이역 아스타포보의 역장 관사에서 생을 마쳤다. 행려 같은 쓸쓸한 죽음은 아니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전세계가 ‘80대 대문호의 가출’이란 희대의 사건을,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거의 실시간으로 전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순간에도 관사 밖은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간 소피야는 주변의 방해로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단다. 기막힌 삶이다. “진리를… 나는… 사랑한다.” 톨스토이가 숨지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가 실제 ‘진리’를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는 분명 그렇게 믿었을 터다. 어쩌면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는지 모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