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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청소년 책] 성장이란 아름다운 죄

왁자지껄한 청소년소설에 지친 이에게 권하는 ‘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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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7 18:48 수정 : 2009-10-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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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권하는 청소년 책 18]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김숨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9년 8월 출간, 9천원, 문지푸른책

“거울과 괘종시계는 서로 마주 보고 놓여 있었는데, 괘종시계가 데엥 데엥 울 때마다 거울은 주르륵 흘러내리기라도 하듯 흔들렸다. 거울 속 비뚤어지고 우굴쭈굴해진 괘종시계는, 사람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했다.”(58쪽) 일곱 살짜리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혹은 거울 안에서 내다보며) 그 시절을(혹은 먼 미래를) 회상한다. 모두들 공감하겠지만,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80년대는 아름답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지은 죄도 없이 죄인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이라니…. 소설에는 흑백사진처럼 오래된 마을과 금방이라도 폭삭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집들, 그리고 ‘목숨’을 가장 두렵게 여기는 오래된 사람들이 ‘자주·많이’ 등장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시골의 할머니에게 떠맡겨진 동화(冬花)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상처투성이로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가장 가까운 존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한 그 업보를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사랑의 상처, 인생의 좌절, 그리고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절망감들…. ‘마늘보다 더 독한 년’이라고 자부하며 그들 가난하고 불운한 사람들을 겪으며 지내는 동안, 동화는 어느덧 그 아름다운 풍경 속 ‘죄인들’을 가슴에 품은 아이로 성장해 있다. 흐린 거울처럼 아스라한 추억들을 읽다 보면, 어린 시절 익히 보았던 누군가가 책장을 들추고 걸어나올 듯한 기시감을 겪을 것이다. 왁자지껄한 청소년소설엔 질렸고, 이젠 좀 진지한 ‘정통 성장소설’이 당기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고 여전히 우리는 죄인처럼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지만, ‘목숨’을 가장 두렵게 여기는 우리는, ‘목숨’ 앞에서 떳떳하지 않은가. 성장이란, ‘아름다운 죄’를 지어버리는 일이니까 말이다.

원종국 소설가·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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