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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청소년 책] 아픈 시대에도 소년은 자라고

읽는 내내 인간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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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7 18:44 수정 : 2009-10-3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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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권하는 청소년 책 18]

〈똥깅이〉 〈대통령이 죽었다〉
<대통령이 죽었다>
박영희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2009년 7월 출간, 9500원, 담쟁이문고

<똥깅이>
현기영 지음, 박재동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 2009년 1월 출간, 9800원, 담쟁이 문고

역사를 길게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짧은 단위로 나누어보면 역사는 늘 뒷걸음질친다. 어렵사리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나 싶으면 금세 두 발짝 뒤로 물러나고, 두 발짝 나아갔나 싶으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거나 제자리걸음을 할 때마다 절망스럽다. 개인적으론 역사의 진보를 믿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은 퇴행인 것이다.

작금의 정치·사회·경제 상황을 보라. 지난한 1970~80년대를 건너온 사람 눈으로 보면 이미 숱하게 보고 겪은, 너무나 익숙한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 있고, 책상에 컴퓨터가 놓였다고 달라진 세상일까? 저 불량한 시대의 보존 가치 없는 유물들이 그간 다 사라졌으리라고 여기진 않았지만, 21세기라는 첨단의 시대에 흘러간 시대의 유물들이 이토록 완벽하게 살아날 줄은 몰랐다.


실천문학사에서 청소년 독자를 의식하고 펴내는 ‘담쟁이 문고’에 들어 있는 소설 두 권을 보는 내내 인간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떠올린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박영희의 <대통령이 죽었다>와 현기영의 <똥깅이>. 얼핏 보면 두 권 다 개인의 성장담으로 읽힌다. 그러나 사회와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개인이 있을 수 있을까?

개인의 행불행은 그가 속한 사회의 조건에서 결정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이 죽었다>의 인물을 보라. 신문배달원 일을 하는 ‘고학생’은 왜 그 시기에 학교에 있지 않고, 집을 나와 살까? 작품 속에선 1970년대의 정치·사회·경제 상황 자체에 무게를 두지 않고 그저 시대 배경으로 깔았지만,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과연 시대와 무관한 삶을 사는 걸까? 개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바위 같은 시대의 벽, 사회의 벽! 등장인물들은 그 벽을 마주하고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삶을 산다. 열심히 신문배달 일을 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우정을 쌓고, 여학생을 두고선 어찌할 수 없는 청춘의 열병을 앓는다. 가난하다고 꿈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청춘의 피가 뜨겁지 않겠는가?

<똥깅이>는 <대통령이 죽었다>에 비해 시대의 조건이 훨씬 더 가혹하게 등장인물들의 삶에 파고든다. 제주 4·3 대참사의 그늘이 드리우지 않은 데가 없기 때문이다. 주변 이웃은 물론 일가붙이들도 4·3의 그늘에서 자유로운 이가 없다. 그러기에 전체적인 작품의 기조는 아무리 밝은 이야기를 내비쳐도 죽음의 냄새가 걷히지 않는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개구리를 잡아 죽을 끓여 먹거나 닭 모이로 주기도 했지만 그와 더불어 연상되는 풍경은 ‘가난’이다. 그런데 <똥깅이>에서는 개구리의 죽음조차도 예사롭지 않다. 뱀을 죽이는 소년의 행위는 거의 광기에 빠져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 그럴까? 바로 개인의 삶이 그가 사는 시대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 조건은 어린 소년들의 의식조차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두 작품 다 결국은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등장인물의 성장을 보여준다. 어떤 시대를 살든 아이들은 조금씩이나마 자란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칫 성장 강박증에 걸리면 성장의 모습을 아니 보여줌만 못할 수도 있다. 성장은 물리적인 시간이 흘렀다고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몸이 자라는 만치 자연스레 되는 것도 아니다. 소설은 성장의 서사를 태생적으로 바탕에 깔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의 성장은 무엇보다도 한 뼘 더 자란 영혼의 성장이다. 독자는 등장인물이 좌절하거나 패배하는 결말에서도 성장의 징후를 읽어내는 것이다.

박상률 시인·청소년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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