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청소년 책] 개인의 기억을 화덕에서 꺼내다

질 좋은 효모로 빚은 호밀빵을 먹는 듯한 달콤하고 잔인한 성장소설

783
등록 : 2009-10-27 17:05 수정 : 2009-10-30 13:52

크게 작게

[전문가가 권하는 청소년 책 18]

〈위저드 베이커리〉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지음, 창비 펴냄, 2009년 3월 출간, 8500원,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책을 덮는 순간 빵이 먹고 싶어졌다. 책에 나온 것처럼 “얇게 썬 햄을 돌돌 말아넣은 크루아상이나 담백하다 못해 밋밋한 허브향 베이글”이 간절했다. 야밤 독서의 허기를 달래며 마술까지 부릴 수 있는 케이크 한 조각이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 문제는 집 근처 빵집들이 밤 10시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다. 책을 끝낸 시간은 밤 12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노트북을 열고 조심스레 자판을 두들겼다. Wizardbakey.com. 사실 이곳은 저자의 블로그다. 그러나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해주는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이나 원하는 시간만큼 되감아주는 타임 리와인더 머랭 쿠키 따위를 주문할 수는 없냐고 덧글을 남기려다가 관뒀다. 대신 방명록에 글을 하나 썼다가 지웠다. “사실 처음 절반은 오락가락했어요. 아동 성폭행과 유아 유기로 가득한 현대 한국의 현실과 마술 쿠키를 파는 마술사라는 판타지가 시작부터 입에 찰싹찰싹 달라붙는 건 아니었거든요. 주인공의 내면이 지나치게 어른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머랭 쿠키를 먹은 미래와 먹지 않은 미래의 챕터를 따로 분리해서 책을 끝맺은 것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단 한 번도 책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정말 달콤하고 잔인한 성장소설입니다. 그나저나 타임 리와인더 머랭 쿠키는 정말로 판매를 안 하시나요?”

<위저드 베이커리>는 화덕에서 빵 꺼내듯 개인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책이다.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망치느냐 혹은 껴안느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오래된 기억을 환유한다. 달콤한 케이크의 단맛을 기대했다가 질 좋은 효모로 빚은 호밀빵을 목으로 삼킨 기분이다.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는 소리다.

김도훈 <씨네21> 기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