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청소년 책] 경고를 무시하는 ‘지구호’ 탑승객에게

환경적 재앙 앞에서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는 한 소녀의 기록

783
등록 : 2009-10-27 17:01 수정 : 2009-10-30 13:52

크게 작게

[전문가가 권하는 청소년 책 18]

〈카본 다이어리 2015〉
<카본 다이어리 2015>
새시 로이드 지음, 고정아 옮김, 살림Friends 펴냄, 2009년 10월 출간, 9천원

과도한 에너지 사용에 기댈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을 고수한다면 언젠가 지구는 타이타닉처럼 침몰할 것이라는 경고방송이 나오지만 ‘지구호’에 승선한 승객들은 방송을 무시한다. 참혹한 비극을 눈앞에 두고도 오직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이라고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경고하지만 물질적 성장을 위한 인간의 안간힘에는 휴일이 없다.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빌딩과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도 ‘지구호’는 멈춤을 모른다. 오직 성장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지구호의 승객들.

<카본 다이어리 2015>는 성장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참혹한 비극을 부를 것임을 강력하게 충고한다. 2015년 영국 정부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 배급제를 시행한다는 기사문과 함께 시작되는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 로라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써내려간 로라의 일기장은 가족과 음악을 사랑하는 열여섯 살 소녀의 성장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일기장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암울한 지구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사춘기 소녀의 비밀스런 성장의 고백을 엿듣는 일이기도 하고, 인류 전체가 직면할 재앙의 한가운데서 ‘지구호’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안네의 일기>가 나치 점령하의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는 한 소녀의 기록이라면, <카본 다이어리 2015>는 환경적 재앙 앞에서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는 한 소녀의 기록이다.

김보일 배재고 국어교사·한국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위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