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퍼포먼스
앱스토어 ‘봄 샷 레시피’ 개발자
등록 : 2009-10-27 15:11 수정 : 2009-10-29 18:25
잔 속에 회오리가 인다. 적당량을 배합한 맥주와 소주, 또는 맥주와 위스키를 손목 스냅을 이용해 잘 섞는다. 이렇게 ‘말아 먹는’ 게 가장 일반적인 폭탄주 제조법. 회오리의 각이 예리할수록, 거품이 예쁘게 생길수록 좌중의 반응은 뜨겁다. 내일이 오지 않을 듯 끝까지 ‘달리는’ 한국식 술문화에 대한 비판은 일단 접어두고. 맥주가 싱거워서 분위기가 서먹해서, 이유야 어쨌든 대한민국의 술집에선 매일 밤 폭탄이 제조된다.
폭탄주 제조법을 총망라한 결정판이 나왔다. 아이팟용 콘텐츠몰 앱스토어에서 1.99달러에 판매 중인 ‘봄 샷 레시피’(bomb shot recipes). 스물여섯 개의 화려한 폭탄주 제조 동영상이 들어 있다. 맥주잔 위에 나무젓가락을 얹고 그 위에 양주잔을 올린 다음 골프를 치듯 스윙해 젓가락을 쳐내는 ‘골프’, 테이블에 머리를 쿵 찧어 잔을 빠뜨리는 ‘헤드샷’, 맥주병을 거꾸로 잡고 그 위에 제조한 잔을 올린 채 먹는 ‘성화’(torch). 레시피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링크된 제작자의 블로그를 가보면 제이슨, 제프, 케빈 세 사람이 만들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폭탄’의 세계화? 제이슨, 제프, 케빈은 모두 한국인이다. 폭탄주 제조에 사용된 맥주잔에 선명한 초록색 ‘H’자를 보고 짐작한 대로. 이들은 “학연·혈연·지연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의 모임이다. 각자 직업은 따로 있는데, 앱스토어용 게임을 만들어보려 뭉쳤다.
게임 기획을 하려 모인 술자리에서 “우리가 술 마시는 문화를 콘텐츠로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선 자신들이 알고 있는 폭탄제조법을 모았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폭탄주 관련 책도 보고 논문도 살펴봤다. 일부는 직접 개발한 것도 있다. 그중 사회적 물의를 빚지 않을 비교적 건전한 것들만 남겼다. “평소엔 이렇게 건전하게 먹지 않아요. 진짜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들려면 이렇게 설정해서 찍지 말고 실제로 ×처럼 먹는 모습을 담아야 하는데, 심의에서 거절당할까봐 자제했어요.”
성과는? “각국에서 하루 100건 정도 다운받고 있어요. 미국이 가장 많긴 한데, 이름을 자주 못 들어본 국가에서도 많이 받더라고요.” 마케팅을 별로 하지 않은 걸 감안하면 괜찮은 성과다. “한국 폭탄주는 소주(영상에선 보드카로 대체했다)·맥주·위스키 등 간단한 재료만 가지고 엄청나게 많은 종류를 만들 수 있는데다,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어 외국인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모여서 술만 마시나? 일도 한다. “앱스토어는 콘텐츠를 구매하는 데 심리적 저항이 적은, 매력적인 시장이에요. 지금은 재미로 하지만 대박이 난다면 당연히 사업화할 계획입니다.” 곧 게임 세 가지를 추가로 론칭할 예정이다.
초심자가 할 만한 폭탄주 제조법을 물었다. 맥주를 채운 잔에 소주잔을 띄우고 소주나 양주를 부어 가라앉히는 ‘타이타닉’이나 ‘헤드샷’을 추천했다. 옷과 이미지를 버려도 상관없다면 와인에 양주를 섞어 한 모금 마신 다음 입술 사이로 피처럼 줄줄 흘리는 ‘뱀파이어샷’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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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은 월간만화잡지 <팝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