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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진이 꿈꾸는 나라

늙은·젊은·여성 세 명의 대통령이 나오는 <굿모닝 프레지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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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2 18:1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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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프레지던트〉
아름다운 대한민국. 여야 아니 좌우를 막론하고 쓰는 말이 됐지만, 같은 말에 대한 저마다의 상상은 다르다. 한나라당의 ‘아름다운’과 진보신당의 ‘아름다운’은 어쩌면 반대말에 가깝다. 정당뿐 아니라 개인이 꿈꾸는 아름다운 나라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대통령이라는 대명사를 통해서 장진 감독이 꿈꾸는 나라를 그리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의 욕망 가운데 하나는 ‘정상국가’ 대한민국. 그것은 대중의 욕망이기도 해서 이런 욕망을 담은 영화에 관객은 뜨겁게 호응했다. 이렇게 보면, 1천만 관객 시대를 열었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역사의 상처를 꺼내서 영사기의 빛으로 말리는 제의였다. 미국 문제를 건드리는 <괴물>의 흥행에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최근의 <해운대> 등에 이르면 양상이 달라지지만, ‘역사+가족’은 1천만 관객 영화로 가는 비밀코드였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장진식 코미디에 ‘정치+가족’의 코드를 버무려 홈런을 노린다.

장진식 코미디+정치+가족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세 명의 대통령 얘기가 이어지는 형식이다. 늙은 대통령, 젊은 대통령, 여성 대통령. 나이와 성별은 달라도 한결같이 인간적인 대통령이다. 전·현직 대통령들이 (최소한 국민의 절반에겐) 문제적 인간이었으니, 소재의 폭발력은 만만찮다. 여기에 영리한 감독은 ‘짐작과는 다른’ 청와대 생활에 포커스를 맞춘다. 퇴임을 앞둔 늙은 대통령 김정호(이순재)는 244억원 로또 복권에 당첨된다. 어디에 쓸까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 아뿔싸 “당첨되면 모두 기부한다”고 했던 약속이 떠오른다. 이렇게 일확천금을 맞은 대통령의 행복하고 당황스런 상황을 통해 대통령도 똑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설득력 있게 영화는 묘사한다.

그리고 싱글 꽃미남 대통령 차지욱(장동건). 그의 캐릭터에 장진이 꿈꾸는 대통령의 면모가 가장 진하게 녹아 있다. 차지욱은 반일적·반미적·친북적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종합하면 자주적인 외교정책을 펴는 인물이다. 미국과 일본에 “노”라고 말하고, 북한과 물밑으로 협력하는 대통령. 그러나 영화가 더 가치를 두는 면은 국민 한 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는 인간 차지욱이다. 더구나 전·현직 대통령은 당은 다르지만 가족 같은 사이다. 김정호 대통령이 야당 대표인 차지욱에게 “내가 니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아줬는데”라고 말한다. 그리고 김정호 대통령의 외동딸(한채영)을 차지욱 대통령이 가슴에 담아두는 것으로 ‘가족 드라마’의 윤곽이 쳐진다.

마지막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 한경자(고두심)가 나온다. 그는 남편이 땅투기꾼으로 몰려서 탄핵 위기에 처하고, 남편은 자신을 탓하며 이혼을 청한다. 남성 대통령을 다룬 부분이 대통령 자신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면, 여성 대통령 부분은 대통령의 남편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여기에 여성 대통령은 이혼이란 더 사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통령 캐릭터를 다루면서도, 남성은 공적인 영역, 여성은 사적인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단 비판도 가능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진담엔 진심이 느껴지지 않네

무엇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문제는 웃음엔 진심이 있는데, 진담엔 진심이 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쉴 새 없이 웃다가 서민 경제를 운운하거나 세금 인하를 언급하면 분위기가 급랭한다. 따로따로 별점을 매기면, 늙은 대통령 부분 별 세 개, 젊은 대통령 별 세 개 반, 여성 대통령 별 두 개 반. 10년 만에 정장을 입고 나와 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을 쓰는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장동건이 기대 이상으로 매력 있다. 10월22일 개봉.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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