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토종문화 지킴이들의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삶의 모습, <꾼>과 <장이>
‘꾼’- 어떤 일을 직업적·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장이’- 수공업적인 기술로 물건을 만들거나 고치는 사람.
꾼과 장이는 모두 전문가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어딘가 얕잡아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지만, 이들은 모두 한 가지 특정분야에 정통한 이들이다. 그리고 이제는 좀처럼 쉽게 만나기 힘들어진 이들이다. 도시에선 이 낱말들조차 쉽게 쓰지 않을 정도가 돼버렸다. 하지만 지금도 이 땅에는 많은 꾼과 장이들이 자기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안분지족하는 삶이기도 하다. 더 많은 이윤과 더 편한 일을 찾아가는 도시사람들과는 달리 꾼과 장이들은 아직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다. 평생 해온 일이기에 이들은 마치 프로그램된 것처럼 자기의 자리와 일을 지키고 있고, 그래서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석이꾼, 석청꾼, 초막 농사꾼, 소금꾼…
도시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직도 많은 꾼과 장이들이 남아 있다. 꾼들은 발품을 팔아가며 우리 토종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장이들은 솜씨를 내서 우리 전통문화를 전한다. 심마니라고도 흔히 말하는 심마니와 약초꾼, 석이꾼, 석청꾼, 초막 농사꾼, 해녀, 소금꾼 등등이 바로 그런 꾼들이고 숯장이, 대장장이, 왕골장이, 짚신장이, 베장이, 모시장이, 쪽물장이, 옹기장이 들이 바로 그러한 장이들이다. 밀려든 서구의 문물과 장삿속에 밀리고 또 밀려 사라져가는, 그래서 더욱 그리운 우리 토종문화의 지킴이들이다.
최근 나온 책 <꾼>과 <장이>(실천문학사 펴냄/ 각권 1만2천원/ 문의: 02-322-2164)는 바로 이들 장이와 꾼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다큐멘터리 잡지 <지오>의 수석기자를 지낸 이용한씨가 글을 쓰고, 심병우씨가 사진을 찍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들은 두권 모두 지은이들의 발품이 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두 사람은 2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꾼과 장이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꼼꼼히 살폈다. 그래서 그 수고로움이 글과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다. 사투리도 그대로 옮긴 정감어린 글과 요즘 사람들은 본 적도 없을 법한 현장 분위기가 살아나는 깨끗한 사진들이 풍성하게 실렸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를 읽듯 쉽게 읽으면서 곁들여진 사진을 보다보면 금세 책 한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토종지기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14명의 장이와 13명의 꾼들은 모두 요즘 시각으로 보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동떨어져 과거의 시간관념과 시각을 그대로 간직하고 느리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구식처럼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멸절돼가는 우리 토종문화의 전통은 이제 그들에게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에서 자세하게 묘사하는 그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통문화이자 잃어버린 우리의 원형처럼 다가온다.
이 책 두권의 미덕은 그동안 전통문화 지킴이들을 다루는 책들이 인간문화재나 유명인사들 위주였던 것과는 달리 정말 평범하게 조상들로부터 배운 대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불과 한두 세대 이전의 우리 부모의 모습이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을 다뤘기 때문에 더욱 살갑게 느껴진다. 바로 초막 농사꾼, 그리고 짚신장이, 올챙이 국수장수 같은 이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정말 소수의 꾼과 장이들로 그동안 잘 소개되지 않은 인물들이어서 호기심을 더한다.
팔아서 살아갈 만큼만 자연에게 빌려온다
책들에 등장하는 꾼과 장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다. 가령 <꾼>에서 소개하는 석이꾼 박성진(57)씨의 경우 흔치 않은 석이꾼이다. 흔치 않은 낱말인 석이가 뭔가 싶은데, 석이란 버섯처럼 생겼지만 바위에 자라는 지의류, 즉 이끼의 한 가지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에서 줄 한 가닥에 목숨을 건 채 박씨는 정성껏 석이를 따서 판 것으로 살아간다. 무엇보다도 바위타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 석이꾼이었고 그게 평생의 업이 됐다고 한다. 바위에서 떨어져 1년을 요양하기도 했고, 하도 오랜 세월 바위를 붙잡고 살다보니 손모양도 기형적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한번 석이를 딴 바위는 10년 이상 지나야 다시 석이가 돋기 때문에 늘 바위를 바꿔가며 따야 해서 그야말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목숨을 걸고 따는 석이의 값은 1kg에 3만원 정도. 값보다는 그저 업이려니, 그리고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그는 바위를 탈 뿐이다. 그런 박씨의 삶을 도시문명의 눈으로 제대로 가치를 매길 수 있을까.
충북 단양의 두메에 사는 농사꾼 고황용 할아버지도 그렇다. 올해 여든여덟 미수를 맞은 이 할아버지는 농번기에 농사를 위해 논밭가에 지었던 가건물인 농막을 짓고 농사짓는 전통농법을 고수하는 이다. 마치 선사시대 움집처럼 생긴 이 초막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비를 피하기도 하면서 고씨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처음 이곳으로 이주했던 즈음에만 해도 더러 남아 있었던 초막은 이제 단양땅에서 고씨 할아버지의 것만 남았다고 한다. 굴참나무 껍질인 굴피로 지붕을 얹은 굴피집에서 살아가는 농부 정상홍씨, 바다에 돌섬인 독살을 쌓아 고기를 잡는 독살어부 임용주씨나 대나무통발을 바다에 놓고 고리를 잡는 전통죽방렴 어부 임권택씨의 이야기도 살아가는 방식과 지역이 다를 뿐, 자연 속에서 자연을 해치지 않고 먹을 만큼, 팔아서 살아갈 만큼만 자연에게 빌려오는 삶의 모습은 모두 본질적으로 매한가지다.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장이와 꾼들은 달관한 것처럼 보인다. 편리한 것과 새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들처럼 산다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이 편할라카는 세월에 누가 이거 하겠습니꺼. 돈도 안 되지, 하기도 어렵지. 그래도 마 이게 내는 재밌어서 이래 하고 있어요.” 무명장이 백문기씨의 말처럼 그렇게 살아왔고 그게 재미있다는 말로만 그들은 넌지시 자신의 삶을 정의한다.
우리것에 대한 상식 짭짤
글쓴이와 찍은이는 느낀 대로, 살아온 대로 말하는 이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들의 가치를 전한다. 역설하지 않고 보여주기에 이들의 모습은 은은하면서도 강렬하다. 책의 형식은 온전히 다큐멘터리라기보다 참고서처럼 다양한 곁가지 지식을 덧붙였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건지는 우리것과 우리문화에 대한 상식이 짭짤하다. 숯장이 이야기를 마치는 단락에서는 숯을 만들 때 나오는 목초액 이야기를 곁들이고, 짚풀장이 부분에서는 토종짚문화와 짚으로 만든 소멍이며 짚무덤인 초분 등을 알려주는 식이다.
사라진 뒤에야 사람들은 사라진 것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들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에, 그리고 이들이 사라지면 이들이 간직했던 우리 전통토종문화의 맥도 자취를 감추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이런 교훈을 책은 전한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굴참나무 껍데기로 지붕을 얹은 굴피집에서 사는 굴피집지기 정상홍씨가 지붕에 올라가 굴피를 덧덮고 있다.(위)석이꾼 박성진씨가 절벽을 올라가 석이를 캐는 모습. 박씨는 30여년 동안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내리며 석이를 캐온 마지막 석이꾼이다.(아래)

사진/ 옹기장이 이문남씨가 물가죽으로 한번 더 매끄럽게 전을 잡고 있다. 옹기 허리에 무늬까지 넣으면 만들기 과정은 여기서 끝이다.(위)짚신장이 문복선씨. 올해로 짚신을 삼은 지 얼추 30년이 넘었다. 짚신을 하루 서너죽(열 켤레가 한죽)을 삼을 정도로 기술이 뛰어

사진/ 무명장이 백문기씨가 솜고치에서 실마리를 뽑아 물레를 돌리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