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중간필자로 성공하려면 학계에서 ‘경계성 혼란’을 겪거나 매체 기자로서 가외의 심각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한 서점의 인문학 코너.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가외의 심각한 노력이 요구되는 매체 구조 언론도 마찬가지다. 최근 우연히 한 블로그를 알게 됐는데, 어떤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문헌을 근거로 파고들어 역사상식의 뒤통수를 치는 글을 연재하는 개인 블로그였다. 글마다 참고 문헌이 붙어 있는데 많을 경우 10편이 넘어갔고, 그중에는 해외 석학의 최신 저작이나 논문도 포함돼 있었다. 글을 잘 쓴다기보다 질문을 잘했고, 역사적 맥락을 따져보는 품새가 아마추어적인 듯하면서도 꼼꼼하고 알찼다. 그런 글이 100편 넘게 올라와 있었다. 원고지 매수로는 3천 매 정도였다. 당장 연락을 취해 책을 내자는 제안을 했고 현재 계약을 맺은 상태다. 그런데 그 사람은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한 한 경제신문 국제부 기자였다. 그는 직장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이 짬을 내어 성실하게 그런 글들을 써나갔던 것이다. 나는 지금 허랑한 글들의 바다에서 괜찮은 글 하나를 발견한 기쁨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글이 나오는 구조가 글쓰는 이에게 가외의 심각한 노력을 요구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다수의 대중을 훌륭하게 설득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한 사람의 저자가 탄생하기까지는 적어도 5권 이상의 전작이 필요하다. 적어도 책을 5권은 내야 5천 부 팔리는 저자에 도달한다는 출판계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인 저술 작업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포털이 중계하는 환경이 구축된 최근 5년 사이에 매체는 ‘빅뱅’이라고 할 만한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표현 욕구를 블로그 등에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인문학’이란 간판을 달고 책으로 펴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에세이·잡기류거나 재테크·다이어트 같은 실용류다. 역사·예술·문화비평 등도 간혹 있지만 체계성이 부족하거나 콘셉트가 부여되지 않은 리뷰, 세상 읽기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금 우리 인문저술계에 필요한 것은 ‘아이템’이 아니라 ‘콘셉트’다. 조선시대 역사교양서만 예를 들어보자. 기생, 하층민, 양반, 무기류, 살인사건, 연애사건, 왕, 후궁, 2인자 등 아이템이 널려 있다. 이들을 매개로 역사의 빈곳을 채워나가는 건데, 나도 이런 책들을 내긴 하지만 과연 이걸 인문학적 역사물이라 할 수 있는가? 나는 순수한 인문학 독자로서 왜 18~19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하나같이 갑자기 백과전서 짓기에 몰두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밝히는 다큐멘터리를 내고 싶다. 또한 조선 지식인들이 ‘중국’이라는 원전을 어떻게 이 땅에 ‘번역’하고 어떤 경우는 ‘베껴먹었는지’ 그 체계적인 커넥션과 계보학이 궁금하다. 게다가 동인·서인도 모자라 남인·북인·소론·노론·벽파·시파·노론청류까지 뻗어나가 나라가 망한 판국에, 그들의 다양한 역학관계라는 주제 하나만 가지고 온전하게 알아듣기 쉽게 정리해놓은 책 한 권 없는 현실이다. 과연 이런 것들이 변화된 매체의 양적 팽창이라는 환경을 등에 업고 이뤄질 수 있을까? 번역하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길? 앞으로는 출판도 해외로 수출해야 영세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얼마나 시장이 큰가. 10년 전만 해도 중국 책들은 공무원이 쓰는 도덕 교과서처럼 재미가 없었다지만, 요즘은 대륙도 상업출판이 불붙어서 얕잡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글발’에 물이 올랐다. 거기에 ‘대표선수’로 내보내려면 최소한 소재의 특수성(특수한 보편성), 콘셉트(관점)의 확실성, 자료조사의 성실성, 논술 구조의 정합성은 담보돼야 한다. 그런데 문학이나 다른 실용·경제 분야라면 몰라도 인문학 분야에서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해외로 판권을 수출하려면 실용서나 경제경영서를 잘 세팅해보는 게 오히려 빠르겠다는 판단이 자꾸 앞선다. 어차피 그쪽은 내용보다는 콘셉트 싸움이니 말이다.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랬다”고 가벼운 책으로 돈을 벌어 정말 중요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책을 ‘번역’하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책 읽고 ‘외국어는 안 돼도 콘셉트는 되는’ 진짜 엘리트 중간필자가 많이 생기게 말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