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러브 어게인>의 펄과 조,<룸메리트>의 고집불통 노인 로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삶의 한 시기를 마감하고 다음 시기로 나아갈 때마다 적잖은 스트레스를 감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노년의 문턱도 위화감과 욕구불만으로 인해 힘든 시절이라는 점에서는 사춘기와 다를 게 없을 테지요. 다만 사춘기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다다르지 못한 시기인 까닭에 노년에 베풀어지는 관심은 상대적으로 인색합니다. ‘질풍노도’니 뭐니 하는 식의 근사한 별칭도 좀체 따라붙지 않지요
비반 키드론 감독의 <러브 어게인>(Used People)은 ‘용도가 다한 사람들’이라는 원제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겼을 때 새로운 삶의 동기를 발견하는 노년을 보여줍니다. 배경은 1969년 뉴욕. 유대계 부인 펄 버만(셜리 매클레인)은 37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을 묻은 장례식 날, 생전 처음 보는 이탈리아 남자의 문상을 받습니다. 조 멜레단드리(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라는 이름의 이 신사는 놀랍게도 23년 전 부엌 창문으로 남편과 춤추는 펄을 언뜻 본 이후 줄곧 그녀를 사모하며 기다려왔다면서 데이트를 청하지요. 난센스를 용납 않는 단단한 성격의 여장부 펄은 이 느닷없는 로미오의 출현에 화가 치밀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처음에는 당혹스러워 하지만 결국 즐거운 항복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펄이 재혼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무미건조했던 첫 결혼의 불행을 뒤늦게 온 참사랑으로 만회한다는 흔한 공식을 벗어납니다. 펄은 남편의 숨은 친구였던 조를 통해 오히려 죽은 남편의 초상에서 빠진 그림 조각을 메우게 되지요. 남편은 술기운이 오르면 시를 읊는 투로 그녀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는 것을, 사랑하면서도 아내와 대화하지 못하는 현실이 괴로워 가족을 떠날 결심까지 했다는 사실을 들으며 펄은 울고 웃습니다. 그러면서 조를 가까이 느끼게 되고요. 노년의 인간관계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젊은 날에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멋진 신세계로 데려가 줄 상대를 기다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흔들어놓는 사람에게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되지만, 인생의 황혼녘에 필요한 것은 분주한 아침과 뜨거운 한낮의 기억을 나란히 돌아볼 친구일 터입니다.
노년은 등에 짊어진 경험의 중량 탓에 완고해지기도 쉽지만, 거꾸로 바로 그 체험의 폭으로 인해 다양한 세대와 이해의 눈빛을 나눌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지요. <룸메이트>의 70대 노인 로키(피터 포크)는 “이제 여섯살인데 아버지랑 정이라도 들면 어떡해요”라고 반대하는 자식들에 맞서 부모 잃은 손자 마이클의 양육을 맡습니다. 확실히 편견덩어리 고집불통 노인이지만, 팔순이 넘고도 쉼없이 구인난을 뒤지는 로키는 노동과 삶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그렇기에 그는 손자에게 슬플 때 부는 휘파람부터 연애에 이르기까지 들을 만한 가르침을 선사하는 좋은 ‘룸메이트’가 됩니다.
인간 발달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죽음이 올 때까지 계속 성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서글픈 것 투성이처럼 보이는 노화의 징후 속에서도 한 사람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 만한 요소들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감각의 둔화를 슬퍼하기보다 고통에 대해서는 의연해질 수 있음을 기뻐하고, 건망증을 한탄하기보다 갈수록 또렷해지는 먼 기억들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면 우리는 노년이라는 이름의 한적한 소로에서 황금 연못을 찾을 수도 있겠지요.
필름누에verme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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