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꾸준한 ‘참견의 달인’
등록 : 2009-08-05 11:48 수정 : 2009-08-06 23:34
까놓고 말해서 생활이란 건 참 구질구질하다. 입에 풀칠 좀 하려고 이리저리 굽실거려야 하고, 내 돈으로 뭣 좀 사는데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남의 살과 부비부비라도 해보려면 지구 정복에 버금가는 작전을 짜야 한다. 벗어나려 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고, 싸우려고 용을 써봤자 제풀에 쓰러진다. 방법은 단 하나. 웃어버리는 거다. 남의 속 좁음을 비웃고, 친구의 약점을 들춰내서 깔보고, 나의 실수까지 제물로 내놓는다.
이처럼 구차한 생활을 요리하는 일에서 김양수만큼 꾸준한 사람이 있을까. 박광수와 강풀이 ‘생활 개그’로 처음 이름을 얻어가던 그때나, 메가쇼킹과 조석이 웹을 휘젓고 있는 지금이나, 그는 꾸준히 자기 가게를 지키고 있다. 언제나 그 동글동글 소박한 그림체로 자신과 친구의 이야기를 꼬치꼬치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사이를 톡톡 치고 나가며 깐죽대는 솜씨에 경륜이 붙어왔다. 이제 그는 참견의 달인이 되어 있다.
<생활의 참견- 뉴시즌>으로 묶여 나온 그의 생활 웹툰을 보면 꽤나 안심이 된다. 이 세상에 나만 바보가 아니구나. 그의 만화를 통해 이 세상에는 참 ‘치’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음치, 박치, 미각치 등은 전통의 바보들이고 요즘은 기계치들이 활개를 친다. 외장하드를 뺄 때 ‘안전하게 제거하기’를 하라고 했더니, 지극 정성으로 10분간 서서히 코드를 빼는 여성이 있어 다행이다. 나도 한때는 매뉴얼 읽기가 취미였지만, 지금은 누군가 휴대전화로 컬러메일인지 숏메일인지 따위를 보내오면 짜증이 난다.
예전엔 어른들이 어떻게 굴러도 나이를 먹으면 머리에 알이 찬다고 하셨지만, 말짱 다 거짓말이다. 오히려 어른이 되는 건 바보의 행렬에 엉거주춤 동참하는 일이다. 친구 동생에게 “어른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해” 어쩌고 하며 어쭙잖은 충고를 늘어놓고는 화장실에서 벌거벗고 걸어나오는 모습을 들킨다. 사회생활은 적당한 아부도 필요하다는 충고에 직장 상사에게 “부장님 아빠라고 불러도 될까요?”라고 말한다. 거기에 덧붙여 “겉치레는 부족하니 진심으로 좋아해보라”고 말하는 선배는 또 무언가.
세상이 교과서처럼 굴러갈 리는 없지만. 온갖 어처구니없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신입사원이 상사의 집들이에 갔는데, 음식이 너무 매워 눈물을 흘린다. 맛에 감동한 줄 아는 사모님 때문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매운 갈비찜을 좋아하셔서”. 그 말이 마음에 든 상사가 알코올 40도의 양주를 권하니 역시 눈물이 찔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코냑을 좋아하셔서.”
김양수는 우리에게 놀라운 진리를 확인하게 해준다. ‘누군가 울 때 우리는 웃는다.’ 너무 이기적이라는 질책은 마시라. 가끔은 나 스스로 크게 넘어져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니까. 적당한 자학과 적절한 피학이 이 사회에 기름을 쳐준다. 가끔은 구라인 걸 뻔히 알면서도 속아준다.
이명석 저술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