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성 행정의 표본 담양 가사문학관… 작가·전시물 선정 중구난방
발 아래 광주호가 흐르고 눈앞에는 무등산 자락이 한아름 안겨오는 전남 담양군의 지실마을.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일컬어지는 식영정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쇄원 사이에 큰 대리석 건물이 서 있다. 스스로 자연인 듯, 산과 물과 어울어지는 주변 정자들의 조화를 깨고 입성한 개선장군처럼 서 있는 이 건물은 지난 6월 완공된 가사문학관이다.
<상춘곡>도 없다니…
98년 4월, 전시성 행정의 표본이라는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첫 삽을 뜬 가사문학관은 총 83억원의 건축비를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의 541평 대형 규모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는 10월 말 개관을 목표로 내부 공사 마무리가 한창인 이 박물관이 다시 지역주민들의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문학관 내부를 채울 전시물 선정과 수집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가사문학관의 전시물 문제는 흙을 파기 시작하던 때부터 이미 예견됐다. 우선 ‘건물부터 짓고 보자’ 식의 발상이 지금의 결과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담양군은 지난 3월30일에야 개관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전시물 목록 작성과 수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담양군쪽에서 발표한 목록에 들어간 100여점의 전시물 가운데 상당부분은 개관을 앞두고 가사작품을 병풍에 옮기거나 당시의 누각 풍경을 재현한 그림들이다. 동강대학 관광과의 겸임교수 전고필씨는 “가사문학의 유물이라는 것이 전시공간에서 감상하기에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는데다 유물에 대한 사전 조사작업도 없이 건립을 추진하다보니 목록 작성과 수집 과정 자체가 임시방편 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 전씨는 “마치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의 개인 기념관이 된 듯한 인상”이라면서 “가사문학의 모든 것을 담는 곳이라면 마땅히 등장해야 할 정극인의 <상춘곡>이나 백광홍의 <관서별곡>은 없을뿐더러 식영정 사선인 기대승과 백광훈은 빠지면서 소쇄원이 들어간다는 것은 수집물 선정에 아무런 기준이 없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덧붙였다. 전시물 목록선정의 논란은 우선 가사문학이 지역의 정신적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적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호남인물 100>의 지은이 남성숙씨는 “가사문학이 담양지역을 중심으로 태어나고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 중기 사림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이르는 담양 특유의 저항적 정신문화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가사문학을 한시나 시조 등과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개관준비 실무위원진을 국문과 교수만으로 채웠다는 사실 자체가 가사문학이 탄생한 역사적 정신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고 비판했다. 넘쳐나는 비판에 사이트 폐쇄 진행상황에 대한 주민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담양군쪽의 태도는 가사문학관에 대한 불신의 골만 키우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비판과 질문은 지난 7월부터 담양군 홈페이지의 ‘군수에게 바란다’에 집중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7월 중순 지역 언론에서 ‘전시물 가운데 진품이 거의 없고 수집 현황도 10% 미만’이라는 고발성 기사가 나자 주민들의 분노가 더욱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자 담양군은 8월5일 비판글들을 일방적으로 삭제하고 이 난을 등록자와 관리자만 볼 수 있는 폐쇄 사이트로 바꿔버렸다. 개관준비위원장인 박준규 전남대 명예교수는 “보안상의 이유로 수집과정의 진척상황과 수집한 전시물을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담양군쪽은 병풍과 벽부 서예와 재현화를 그리게 되는 작가선정과정 역시 “작가들의 요구로 밝힐 수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화관광과의 한상규 계장은 “작가선정의 특별한 기준은 없으나 원로작가들이 하게 될 것”이라는 모호한 선정기준을 설명했다. 주민들은 지금이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시인물과 전시물 선정을 궤도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국고 20억원과 담양군 주민들에게 거둬들인 58억원으로 ‘거대한 창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담양군이 귀에 끼고 있는 솜을 이제라도 빼내야 할 것 같다. 담양=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지실마을 주변의 정자들의 조화를 깨고 들어선 대리석 건물.가사문학관은 '건물부터 짓고 보자'는 전시성 행정이 낳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98년 4월, 전시성 행정의 표본이라는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첫 삽을 뜬 가사문학관은 총 83억원의 건축비를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의 541평 대형 규모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는 10월 말 개관을 목표로 내부 공사 마무리가 한창인 이 박물관이 다시 지역주민들의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문학관 내부를 채울 전시물 선정과 수집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가사문학관의 전시물 문제는 흙을 파기 시작하던 때부터 이미 예견됐다. 우선 ‘건물부터 짓고 보자’ 식의 발상이 지금의 결과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담양군은 지난 3월30일에야 개관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전시물 목록 작성과 수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담양군쪽에서 발표한 목록에 들어간 100여점의 전시물 가운데 상당부분은 개관을 앞두고 가사작품을 병풍에 옮기거나 당시의 누각 풍경을 재현한 그림들이다. 동강대학 관광과의 겸임교수 전고필씨는 “가사문학의 유물이라는 것이 전시공간에서 감상하기에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는데다 유물에 대한 사전 조사작업도 없이 건립을 추진하다보니 목록 작성과 수집 과정 자체가 임시방편 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 전씨는 “마치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의 개인 기념관이 된 듯한 인상”이라면서 “가사문학의 모든 것을 담는 곳이라면 마땅히 등장해야 할 정극인의 <상춘곡>이나 백광홍의 <관서별곡>은 없을뿐더러 식영정 사선인 기대승과 백광훈은 빠지면서 소쇄원이 들어간다는 것은 수집물 선정에 아무런 기준이 없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덧붙였다. 전시물 목록선정의 논란은 우선 가사문학이 지역의 정신적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적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호남인물 100>의 지은이 남성숙씨는 “가사문학이 담양지역을 중심으로 태어나고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 중기 사림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이르는 담양 특유의 저항적 정신문화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가사문학을 한시나 시조 등과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개관준비 실무위원진을 국문과 교수만으로 채웠다는 사실 자체가 가사문학이 탄생한 역사적 정신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고 비판했다. 넘쳐나는 비판에 사이트 폐쇄 진행상황에 대한 주민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담양군쪽의 태도는 가사문학관에 대한 불신의 골만 키우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비판과 질문은 지난 7월부터 담양군 홈페이지의 ‘군수에게 바란다’에 집중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7월 중순 지역 언론에서 ‘전시물 가운데 진품이 거의 없고 수집 현황도 10% 미만’이라는 고발성 기사가 나자 주민들의 분노가 더욱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자 담양군은 8월5일 비판글들을 일방적으로 삭제하고 이 난을 등록자와 관리자만 볼 수 있는 폐쇄 사이트로 바꿔버렸다. 개관준비위원장인 박준규 전남대 명예교수는 “보안상의 이유로 수집과정의 진척상황과 수집한 전시물을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담양군쪽은 병풍과 벽부 서예와 재현화를 그리게 되는 작가선정과정 역시 “작가들의 요구로 밝힐 수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화관광과의 한상규 계장은 “작가선정의 특별한 기준은 없으나 원로작가들이 하게 될 것”이라는 모호한 선정기준을 설명했다. 주민들은 지금이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시인물과 전시물 선정을 궤도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국고 20억원과 담양군 주민들에게 거둬들인 58억원으로 ‘거대한 창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담양군이 귀에 끼고 있는 솜을 이제라도 빼내야 할 것 같다. 담양=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